QR코드 앞에서 멈춰 선 인생

베이비부머 필살기 (4) - 사각형 격자 속에 갇힌 길 찾기

by 늘푸른 노병


도대체, 저 괴물 얼굴 같은 검은 네모 박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요즘은 어딜 가든 검은 사각형 조각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그것을 ‘QR코드’라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전화를 갖다 댄다.


내게 그것은 넘지 못할 성벽에 새겨진 상형문자 같았다.


카메라를 켜고 초점까지는 맞췄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하는 거지. 두리번거리다 뒷사람의 눈치가 보여 슬며시 자리를 비켜섰다.


그때 한 여학생이 다가와 말했다. “아버님, 그냥 여기 찍으시면 돼요.”


설명은 고마웠지만, 속으로 되물었다. '찍어서 그다음은 또 어떡하지?'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격자에 맞춰서 사진을 찍으니 바로 아래에 링크가 떴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미술관의 정보들이 빼곡했다.


그제야 알았다. 괴물같이 생긴 놈정보를 알리고 다음 세상을 이어주는 창구 역할을 하는구나.


“이 시대에는 모르면 바보니 무조건 들이대 봐야지.” 누가 들을까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증명해 온 세대다.


정갈한 글씨는 곧 그 사람의 얼굴이었고 신용이었다. 정성을 다해 눌러쓴 글자에는 책임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름도, 목소리도 필요 없다. 기계가 읽는 기호 하나면 모든 것이 통과된다. 도깨비 얼굴처럼 생긴 그 네모 안에는 종이쪽지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오늘의 문법이다. 이제는 숨을 고르고 카메라를 켠다. 사각형 틀 안에 코드를 맞추고, 연결되는 곳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세상이 바꾼 규칙에 나를 맞추는 일이다.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있다는 작은 확인이다.


느려도 괜찮다. 우리는 이보다 더 거센 파도도 온몸으로 건너왔다. IT는 모르면 절벽이고, 알고 나면 헛웃음 나온다. 두려움을 버리고 무조건 한 번 들이대 보는 것.


연필 세대와 자판 세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속도로, 천천히 건너가면 된다.


나도 IT나 AI 같은 건 모른다. 그저 낯선 기호 앞에서 당당히 카메라를 들이대 보는 용기 하나로 오늘의 문턱을 넘을 뿐이다.


우리 이제, 기계의 기호에 너무 주눅 들지 말자. 우리는 이미 인생이라는 거대한 지도를 몸소 그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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