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필살기 (5) - 가상 세계에 내 이름의 문패를 다는 법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갔을 때 우리는 핸드폰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모벌(Mobile)이라고 표현했다. 모바일을 지역언어로 편하게 발음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그 시간 이후로 외래어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피를 커피라고 하듯, 모바일을 모바일로.
이제는 지구촌이 되었으니 글로벌 언어로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바일'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았다.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물건 하나를 사거나, 궁금한 소식을 좀 들으려 해도 어김없이 '회원가입' 하도록 강요한다. 디지털 시대에 모든 일은 '회원가입이 우선이란다.
안내하는 대로 들어가서 이름과 전화번호 입력까지는 쉬운데, '본인 인증'을 하라고 또 안내한다. 이때부터 갑자기 길 잃은 난민이 되기 일쑤다.
문자로 번쩍하고 날아온 인증 번호를 제한 시간 안에 옮겨 적어야 할 때의 그 긴박함은 마치 전장에서 불발탄을 해체하는 기분인 것 같은 느낌. 혹시 잊을세라. 입으로 중얼거리며, 굳은 손가락으로 눌러댄다.
인증을 마치면 이번엔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문제다. 내가 평생 써온 이름 석 자면 충분할 것을, 디지털시대는 자꾸만 영어와 숫자, 특수문자를 섞어 나만의 '암호'를 만들라고 다그친다. 솔직히 짜증도 났다.
겨우겨우 절차를 마치면 이제야 회원가입이 완료된 거다. 마치 내 집에 문패를 달아 붙인 느낌이랄까?
여기저기 회원가입을 많이 해 놓아서 잊어버리는 경우를 대비하여 비밀번호를 수첩에 적어둔다.
다람쥐나 청설모가 겨울 먹이를 여기저기 숨겨놓았다가 못 찾듯이 꽁꽁 숨겨 놓은 비밀번호를 못 찾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둬야 한다. 이것이 내가 디지털 시대에 정착하기 위해 지불하는 최소한의 통행료다.
아이디는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의 조합. 비밀번호는 잊지 않기 위해 영문은 지명이나, 전회사 이름의 이니셜로 하고 숫자는 나와 가족생월을 조합하여 날짜를 섞는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조합일지 모르나, 이것은 디지털 시대라는 낯선 땅에 내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탄이다.
한글은 늘 써오던 터라 그냥저냥 입력하지만, 영타는 여전지 독수리 타법으로 이름을 입력한다. 조금 버벅대면 어떤가. 결국 나는 로그인에 성공했고, 이 세상의 문턱 하나를 또 넘었다.
그저 오늘 하루, 내 힘으로 앱 하나 깔고 회원가입 하나 마친 후 하고자 하는 일을 꾸역꾸역 해 냈다. 느리지만 이렇게 천천히 익혀가는 것이 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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