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필살기 (6) - 기억의 한계를 시험하는 디지털 문고리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하루에도 몇 번씩, 디지털 문 앞에서 머리 긁적인다. 열쇠는 사라졌고, 숫자와 기호가 열쇠가 된 세상.
내 기억 속에 할머니의 쇳대는 굵은 철사를 둥글게 말아 만든 것이었고, 어머니의 쇳대는 묵직한 자물통에 달린 큼직한 쇠붙이 열쇠였다. 혹여 열쇠를 잃어버려도 동네 열쇠방 아저씨를 부르면 그만이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디지털 세상의 쇳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복잡하다. 어디를 들어가려 해도 어김없이 요구하는 그놈의 '비밀번호'. 게다가 규칙은 또 어찌나 까다로운지.
숫자만 넣어서도 안 되고, 영어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야 하며, 듣도 보도 못한 특수문자까지 끼워 넣으란다. 고심해서 정한 번호조차 '보안 취약'이라며 거절당하기 일쑤. 기계가 나에게 "당신은 아직 안전할 자격이 없다"라고 꾸짖는 것만 같았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 자물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유효기간이 끝났다며 바꾸길 종용하는 순간이다. 석 달마다 뜨는 비밀번호 변경 알림. "아이, 벌써!" 하며 짜증부터 솟구친다.
바꾼 번호를 잊지 않으려 수첩에 적어두지만, 정작 필요할 때 그 수첩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되고, 몇 번을 틀리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냉정한 문구.
'계정이 잠겼습니다.' ~이런 젠장!
그때부터는 내 집 문 앞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처량한 나그네 신세가 되고 만다.
비밀번호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지만, 가끔은 나를 가두는 창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은데, 세상은 자꾸만 더 정교하고 더 많은 기억을 요구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자물쇠 앞에서 주저앉지는 않으련다. 이 번거로운 과정이 결국 내 소중한 정보와 땀으로 일군 성과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지갑 속에 꼬깃꼬깃 넣어둔 비밀번호 종잇조각을 꺼낸다. 그리고 새로운 자물쇠의 조합을 고민한다. 주말도 아닌데 마치 로또 번호 조합하듯 신중해지는 시간.
대문자 'A'를 쓸지, 느낌표 '!'를 넣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문을 여는 행위를 넘어, 내 삶의 영토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현역의 다짐이다.
비록 기억은 조금씩 흐릿해져 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끈기.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단단하다.
[이어지는 연재] 베이비부머 필살기 (7) - 햄버거 하나 주문하는 데 6분
#디지털 시대 #현역의 삶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