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을 바라보는 절, 세종이 잠든 능

늙기 전에 다시 걷는 우리 땅 (7) - 여주, 신륵사와 영릉

by 늘푸른 노병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강이 넓게 흐르는 도시가 나온다.


남한강.


그리고 그 강을 품은 도시, 여주시다.


도자기와 쌀로 이름난 고장이지만 이곳에는 한 왕이 잠들어 있다.


대부분의 절은 산속에 있다. 하지만 강을 바라보고 앉은 절 하나.


신륵사(神勒寺)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본 신륵사 전경
은행나무 부처상 - 구룡루


그래서 풍경이 조금 다르다. 산사의 고요와 강물의 흐름이 함께 머무는 곳이다.


절 마당에 서면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한강은 서두르지 않는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흐른다.


강가 바위 위에는 오래된 탑 하나가 서 있다.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수백 년을 이 자리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다층 전탑


신륵사는 고려 시대에 창건된 절이라고 전해진다. 특히 고려 말의 고승 나옹 혜근 스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스님의 부도와 탑도 이 절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절 마당에 서서 강을 바라보면 생각이 조금 느려진다.


도시는 늘 서둘러 살게 만든다. 하지만 강물 앞에서는 괜히 걸음을 늦추게 된다. 사람의 시간은 짧지만 강의 시간은 길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서 있으면 내 삶도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신륵사를 나와 여주의 또 다른 시간을 찾아간다.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 가운데 한 사람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바로 영릉(英陵)이다.


이곳은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가 함께 잠든 능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과 문화를 꽃피운 왕.


세종대왕 영릉(英陵)


우리는 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가장 먼저 배운다. 능으로 오르는 길은 소나무 숲 사이로 조용히 이어진다.


왕의 무덤 앞에 서면 화려함보다 단정함이 먼저 느껴진다. 조선의 왕릉들은 대체로 자연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권력의 흔적보다 시간의 흐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세종대왕이 살던 시대는 이미 수백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한글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왕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글자는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다.




여주는 생각보다 조용한 도시다. 하지만 강과 왕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곳이다.


남한강을 바라보던 신륵사의 오후와 소나무 숲 속에 잠든 왕의 능. 그 두 풍경 사이에서 나는 잠시 시간을 생각했다.


사람의 삶은 짧다.


하지만 어떤 시간은 오래 남는다. 남한강처럼 흐르되 서두르지 않고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 하나쯤은 남기며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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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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