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은 우리 땅(6) - 서울, 남산
남산을 수십 년 동안 바라보며 살았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차창 너머로도 자주 스쳤다.
늘 거기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오른 적은 손에 꼽힌다. 너무 가까이 있는 것들은 쉽게 지나친다.
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다.
서울에서 남산은 묘한 자리다.
북악산이 등이었다면, 남산은 얼굴이다. 등이 든든해야 바로 서고, 얼굴이 온화해야 사람이 모인다.
한양을 품던 안산(案山)으로, 조선은 이 산을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렀다.
정상 아래 국사당은 나라의 안녕을 빌던 자리였다. 백성들은 이 산을 향해 마음을 모았던 곳이다.
해발 270미터. 인왕산보다 낮지만, 높이로 도시를 지키는 것은 아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산의 역할이다.
정상에는 전국의 불빛을 모아 임금에게 위급함과 안부가 궁궐로 전달하는 봉수대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봉수대 대신 N서울타워가 그 자리에 서 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산은 여전히 사방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산은 한 번 깊이 상처 입었다. 1925년, 일제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워 조선의 정신이 깃든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긴 것이다.
비워진 자리에 일본의 신을 올려놓고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
산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광복 이후 신궁은 사라지고, 지금 그 자리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서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 해다오.”
서른한 살의 마지막 말이다. 국권은 회복되었지만,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
산은 그 시간을 다 보았을 것이다.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니 인왕산보다 나무가 많아 숲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올 때는 서울이 보였지만, 내려갈 때는 역사가 보였다.
서울역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앞에 잠시 섰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이오.”
그 말을 남긴 사람은 동포의 손에 쓰러졌다. 이 산은 그 총성도 들었을까.
역사는 때로 슬프다. 그러나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젊을 때 이 산을 오를 때면 서울의 스카이라인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오늘은 남산만이 간직하고 있는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보인다.
조선의 국사당이 있었던 자리. 일제의 신궁이 들어섰던 자리. 독립을 외치던 이름이 새겨진 자리. 남산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래도 산은 변하지 않았다. 아프면서도 서 있다.
오늘도 서울을 우뚝히 지키는 남산.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더 늙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남산이 그것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산은 늘 거기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 산을 바라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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