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 봉정사

더 늙기 전에 다시 걷는 우리 땅 (5) - 안동 봉정사

by 늘푸른 노병


학창 시절,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교과서에서 시험공부하듯 외우던 그 이름이다. 서너 해 만에 다시 그 절을 찾아간다.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도시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


서울은 그렇게 부산스럽게 살아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는 곳이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묵직했다.


기차 창밖으로 중앙선의 산간 도시들이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두물머리, 양평, 원주, 제천, 단양, 풍기, 영주…그리고 안동.


흑백사진처럼 잠잠한 풍경들이 차분히 창밖으로 흐른다.


제천을 지나 단양과 풍기 즈음에 이르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실개천에는 철새들이 내려앉아 아침 먹이를 찾고 있었다.


안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천등산 자락의 봉정사에 도착했다.


절 입구 진입로와 일주문


사찰의 아침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했다.


오늘 내가 첫 손님인 듯했다. 산사의 아침은 거의 소리가 없다.


입구의 소나무 길은 초봄의 찬 기운 속에서도 차분히 아침 햇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봉정사 극락전에 이르자 단아한 선과 낮은 기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봉정사는 천년 세월을 품은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극락전을 안고 있다.


천년 묵은 최고(最古) 목조 건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봉정사.
천등산 자락에 천 년의 시간을 품고 서 있다.


고요는 소리를 지우는 대신 마음을 또렷하게 만든다.


차분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본다.


이 절은 신라 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천등산 자락에 자리 잡은 뒤, 오랜 역사와 전설을 함께 품어 왔다.


이곳의 건물들은 세월을 버텨낸 것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숨 쉬어온 모습이다.


절 뒤편 천등산 정상에는 능인대사가 수행했다는 바위굴도 남아 있다.


깨달음을 시험하던 여인의 설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몰라도 괜찮다.


산의 바위들은 이미 오랜 침묵 속에서 세월을 견뎌온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람은 조용하고 엄숙하다. 고즈넉한 산사의 멋이 그대로 느껴진다.


가람 배치(뒤에서 본모습)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절 뒤편처럼 깨끗하게.” 절 뒤편은 늘 조용하고 정갈하다.


그래서 청결은 절 뒤편처럼 하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가람 배치를 한눈에 보려고 뒤쪽 능선에 잠시 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봉정사는 작지만 어머니 품처럼 아늑했다.


천 년 가까이 버텨온 극락전의 나무 기둥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세월이 스며든 기둥.
나무도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천년을 버텨온 극락전 기둥


인간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래서일까. 더 성실히 살아야겠다는 조용한 다짐이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세월 앞에 서 보는 일. 그리고 내 시간을 돌아보는 일.


학문도, 건축도, 삶도 결국은 ‘버팀’ 위에 세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맑아지는 아침 산사. 숨 쉴 틈 없는 세상 속에서 쉼표 하나 얻어 가는 느낌이다.


절 입구에서 꽃샘추위 이겨, 갓 피어낸 홍매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산사를 권하고 싶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 건네는 울림이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채워줄 것 같아서다.


고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날 아침 산사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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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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