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히려 외계인이었다.

- 낯설지만 배울 것이 많은 세대

by 늘푸른 노병


나는 지금 외계인과 동거 중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내가 오히려 외계인이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갑다. 출근길 지하철은 러시아워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모두가 말없이 자신의 하루를 품고 이동한다.


내가 일하는 곳은 굴뚝 없는 공장, 지식산업센터 안의 작은 스타트업이다. 같은 사무실 안에 앉아 있지만, 그 안의 풍경은 내가 익숙했던 직장과는 사뭇 다르다.


출근길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


빨간 비니를 쓴 친구, 통이 넓은 플럼바지에 크록스를 신은 친구, 모자를 뒤로 눌러쓴 친구, 커다란 헤드셋을 낀 채 자기 세계에 먼저 접속한 친구.


어느 날은 애완견 ‘콩이’를 캐리어에 메고 들어오는 여자 사원도 있었다. 다들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들려 있다. 아직 아침 공기가 서늘한데도, 신기하게 그들의 손에는 늘 얼음이 가득한 커피가 있다.


내게 그 풍경은 조금 낯설었다. 아니, 사실은 꽤 낯설었다.


업무 시작까지 몇 분 남았다고 자리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이는 친구도 있다. 그 옆을 지나갈 때면 괜히 발소리마저 조심하게 된다.


잠깐의 시간도 효율적으로 쓰는 저 태도가 낯설면서도, 어딘가 배울 점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외계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 적은 사무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일


회의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사무실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업무를 공유하는 일도, 모두를 불러 세워 회의를 여는 일도 드물다.


대부분의 소통은 메신저 안에서 이루어지고, 프로젝트 관리와 개인 일정은 노션(Notion) 안에서 정리된다.


누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무엇이 남아 있는지, 모든 것이 그 안에서 보인다.


사무실에 남는 소리는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뿐이다. 타닥타닥, 각자의 손끝에서 하루가 빠르게 조립된다.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아침 회의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표정을 보고, 말의 속도를 듣고, 서로의 분위기를 확인해야 비로소 일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말은 적지만, 일은 더 빠르다. 조용하지만, 흐름은 분명하다. 짧지만, 정확하다.


해외 바이어에게 전화가 오면 누군가는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고, 잠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해외 업체와 메일을 주고받고, 제품을 찾고, 접수된 일을 처리하고, 필요한 내용을 즉시 공유한다.


게다가 요즘은 AI를 두세 명의 비서처럼 곁에 두고 일한다. ChatGPT, Gemini, Claude, Genspark...


누가 어떤 상황에서 더 쓸 만한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더 나은 답을 얻는지, 그들끼리 자연스럽게 후기를 나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회의를 하면 나는 자꾸 설명이 길어진다.


나는 늘 결론에 이르기 전에 충분한 배경을 깔아 두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짧았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처음엔 그 말이 조금 서운했다. 내 방식이 잘리는 것 같았고, 정성껏 설명한 맥락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설명이 길다고 해서 전달이 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맥락이 많다고 해서 메시지가 선명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길고 친절한 설명보다,


짧고 분명한 결론이 더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에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기도 하고, 각자 흩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쌀국수를 먹고, 누군가는 햄버거를 먹고, 누군가는 편의점 컵라면과 김밥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또 누군가는 가성비 좋은 함바집으로 향한다.


짧게 웃고, 짧게 이야기하고, 다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붙어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얽히지 않는 거리감. 그 적당한 간격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예전의 나는 함께 밥을 먹어야 정이 쌓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꼭 같은 메뉴를 먹지 않아도, 꼭 오래 같이 있지 않아도, 충분히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까움의 방식도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인지 모른다.


퇴근 무렵, 내가 배우게 된 것들


퇴근 시간도 유연하다. 일찍 출근한 사람은 일찍 퇴근하고, 늦게 시작한 사람은 그만큼 늦게 마무리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가 아니라, 오늘 무엇을 해냈는가이다.


나는 종종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며 조용히 감탄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직접 손대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속도도 다르고, 도구를 다루는 감각도 다르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조금 달라졌다.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 경험을 보태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방향을 더해주는 사람.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다름 속에서 효율은 더 높아졌고, 자율은 더 넓어졌으며, 생산성은 더 커졌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기준과 감각으로 살아왔다.


그들에게 내 방식은 낡은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그들의 방식은 단지 낯선 방식이었다.


그래서 더 자주 부딪혔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주 조용히 깨달았다.


어쩌면 외계인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오래된 방식과 익숙한 질서를 들고 이곳에 서 있었고, 그들은 이미 새로운 언어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 언어를 늦게 배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보였다. 내가 낯설어하던 것들 속에 배울 것이 참 많았다는 것을.


그들이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세계였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한다. 여전히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쉽게 판단하지는 않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상을 살던 우리는 이제 조금씩 서로의 행성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자주 깨닫는다. 내가 오히려 외계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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