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과 한화 이야기 -
감사하게도 전역 후,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5개째 지나고 있다.
겨울산 나목裸木 같은 현장의
소리를 2부작으로 나눠보고 싶다.
군軍 전역 직후,
바늘구멍 같은 자리를 뚫고
삼성테크윈 강남 역삼동 시절.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 시절 삼성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던 이름이었다.
나 역시 그 이름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꽤 오래 들떠 있었다.
에버랜드 '인재개발원'에서
신입사원들과 함께 입사 연수를
받았다.
첫인상은 분명했다.
입소문 그대로,
관리의 삼성,
시스템의 삼성이었다.
한 주 동안 이어진 연수는
촘촘했고 빈틈이 없었다.
교육 콘텐츠부터 영상, 음악,
심지어 쉬는 시간의 분위기까지도
사람을 '삼성맨'으로 만들어가는
정교한 설계처럼 느껴졌다.
무주리조트 신입 환영회까지
마치고 나니 '역시 삼성'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자 다른 감정이 따라왔다.
경력직 제도가 막 도입되던 시기,
나는 조직 안에서 어디쯤 서 있는
사람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같은 식구가 되었지만 비빔밥이
되기엔 아직 재료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시간도 종종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도
겪었다.
주차를 관리하는 분이었다.
삼성테크윈이 별도 용역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차량등록 서류가 미비하다고
내가 건네준 서류뭉치를 갓 입사한
직원들 보는 앞에서 땅바닥에
그냥 내동댕이를 치는 장면...
사소해 보이지만 그날의 기분은
오래 남았다. 나중에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지만,
그 순간 느꼈던 낯섦과 모멸감은
삼성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냉정한
시스템 위에 서 있는지 알게 해 준
하나의 장면이었다.
어쩌면 단순하고 작은 일로 치부
할 수도 있지만 당하는 당사자는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무렵,
삼성테크윈의 한화 인수가 전격
발표되었다.
사무실 공기는 한순간에 멈췄다.
누구도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기억.
그렇게 나는 푸른 피에서
주황색 피로 수혈을 받고,
종각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삼성이 차갑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사람을 단련시키는 곳이었다면,
한화는 사람의 체온으로 일을
움직이는 조직처럼 느껴졌다.
군과의 업무, 대관對官 업무를 하며
내게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국회 업무를 맡고 있던 어느 해,
특정사업 예산이 통째로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예산을 살리지 못하면 다음 해
일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나는 S대표님과 함께 며칠 동안
국회로 출근했다.
의원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기다렸다가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지금도 농담처럼 말한다.
내 인생 최고의 MBA는
'들이대大'였다고.
그때 나는 무작정 들이댔다.
논리로, 진정성으로,
그리고 절박함으로...
사흘째 되던 날,
담당 의원실에서 우리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예산이 살아났고,
그 순간 느꼈던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삼성과 한화,
닮은 듯 다른 두 거인 속에서
나는 12년을 보냈다.
삼성에서는
시스템 앞에 서는 법을 배웠고,
한화에서는
사람 앞에 먼저 나서는 법을 배웠다.
개개인의 감정들이 모여
조직문화가 되고 조직문화는
또다시 기업의 전략이란 말에
극極 공감한다.
두 조직의 색은 달랐지만
공통점도 분명했다.
성과 앞에서는 냉정했고,
조직은 개인보다 앞섰으며,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나는 두 거인을 지나오며
조금은 단단해졌고,
조금은 유연해졌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간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삼성과 한화의
후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담대하게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길 위에는 늘 배울 것이 있고,
사람은 조직을 지나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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