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안 Jan 03. 2024

젠장 서른이 되고 말았다

나를 잃고 있다

직장을 또 잃었다.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서, 스타트업에서 두 번째 실직이다. 첫 번째 가족 같은 패션회사는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정말 열심히 사랑해서 다닌 회사였다. 1년 가까이 다닌 곳을 나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뭐 집중을 못하고 어쩌고저쩌고 기미는 있었지만 이렇게 나오게 될 줄은 몰랐던 거다.


11월 초의 일이었다. 그 이후에 혼자서, 프리랜서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 꽤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유튜브나 책도 하루종일 봤다. 2달 정도의 시간에서 며칠을 빼고는 그래도 노트북을 들고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시도했다.


1. AI 활용 쇼츠

예전부터 쇼츠, 유튜브를 하고 싶었는데 요즘 워낙 툴이 잘 나와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3개의 방향정도 2~3개씩 해보고 반응이 안 나오면 계속 바꿨다. 이것마저도 꾸준히 했어야 했겠지만 옛날처럼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자막이나 사운드, 효과음 등 2~3시간씩 투자해서 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방향이나 주제를 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보류. 이렇게 만든 영상들은 효율은 좋아도 나 자체의 개성은 없어서 결국 그 이상은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2. 프랜차이즈

내 일을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부딪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00 업종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창업설명회에도 갔고, 100만 원을 입금해야 입지나 대출가능금액도 봐준다고 해서 입금도 했다. 다만 초기 인테리어 비용이 너무 비싸서 당황했다. 반 정도는 대출이 나오고 나머지는 부모님을 사업자 등록시켜서 어쩌고 아파트 대출을 끌었으라는데, 아무리 불효자라도 그거까지는 못하겠다 싶었다. 입금했던 돈은 무사히 돌려받았다. 나름 시장조사랍시고 여러 어플을 깔고, 직접 메인지역, 개인가게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창업설명회에서 말했던 미래 방향이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랑 비슷했고, 개인 가게 중에서도 프랜차이즈만큼 잘 갖춰둔 곳이 꽤 있어 프랜차이즈로 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3. 정부지원사업

하고 싶던 분야의 일 중에 몇몇을 알람 걸어두고 소식을 받아보는 중이다.


4. 아웃스탠딩

사실 제일 시간을 많이 쓴 건 아웃스탠딩 기사 읽기다. 스타트업을 주제로 하는 미디어고, 예전의 비즈니스 어쩌고 아티클을 작성할 때도 가끔 참고했던 곳이다. 한 달 넘게 아웃스탠딩의 기사를 3년 치, 몇 천 개는 읽은 거 같다. 왜 읽었냐면, 아직 미련이 남았던 거 같다. 학생 때부터 스타트업, 기업가 그 무엇을 동경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회사에서 나가게 됐다고 갑자기 흥미를 잃긴 쉽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벅찬 감동이 생기기도 했고, 잘됐던 곳이 지금은 안 보일 때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몇천 개의 글을 눈이 빠지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길의 가능성이 생각보다 너무 낮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아웃스탠딩에는 1년이나 반년 주기로 '2021년 기업 총정리' '3년 전 투자받았던 기업들 지금은 뭐 할까?' 이런 글이 올라온다. 수치를 낱낱이 적어 정리하지 않아도 보인다. 그중 70%는 망하거나 답보 상태다. 폭발 성장 어쩌고를 이야기했지만 시장 상황이든 투자든 어떤 이유에서든 잘 안 된 거다. 당시에는 몇십, 몇백억을 투자받았다는 데도 그렇다. 올해는 특히 시장이 어렵다고 꽤 유명했던 곳들도 감원하거나 서비스를 폐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대표에게 정부지원사업을 받았던 곳들이 6개월을 못 버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짐작은 했다. 그렇지만 투자를 받은 곳이라면 흐름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뽕이 많이 빠졌던 거 같다. 물론 성공해 엑싯하고 어쩌고의 이야기도 많지만 그건 정말 0.001%의 이야기였다.


5. 스타트업 재도전

취업도 알아봤다. 스타트업 뽕이 살짝 남아있어서 뭐가 있나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리 공고를 봐도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뭔가를 했나 싶다. 업계가 마음에 들어서? 그건 아니었다. 사람들도 좋았고. 내 글을 읽고 먼저 다가와준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업계 따위는 상관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왜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평생을 바쳤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회사에 도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엄청난 리소스를 투자하라니. 겁이 난다. 성공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재미있고 일이 재미있으면 나를 투자할만하다. 그렇지만 그곳이 망하지 않을 곳인가? 나를 하루 만에 내보내진 않을 곳인가? 처음에 스타트업이라고 도전했을 때는 28살 9월이었다. 지금은 서른이다.


물론 최초라는 어쩌고 타이틀을 붙여서 채용하는 곳도 있었다. 확실히 그곳은 최초 어쩌고를 붙일 만했다. 브런치에서도 가끔 봤던 사람이었다. 꽤 구미가 당겼다. 기업 블로그라고 운영하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도 꽤 잘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마케터라고 적힌 글에 너무 많은 내용이 적혀있어 과연 그 정도의 열정을 쏟을까 겁부터 났다. 뭐 그렇게 적어둬야 나 같은 애매한 사람을 거를 수 있을 테니 효과 있는 필터링이었다.


6. 팔리는 글쓰기?

브런치 말고 네이버 블로그를 적고 있다. 개인 이야기기도 하고, 일기장이기도 하다. 다행히 브런치 정도의 조회수는 나오고 있다. 예약 발행이 있는 점도 편리하다. 체험단이랍시고 받는 것도 몇 개 있다. 나를 팔아보려고 몇 개 시도 중인데 아직 잘 안 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팔리는 글쓰기를 해보려는 중인데 잘 안 된다.


7. 대기업에 가면 달라질까

대기업에 가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배우면 나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잘 못하고 잘 모르고, 내가 성과를 안 내는 무언가를 관리하는 그 무언가만으로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고위직으로 갈수록 관리자가 되는 건 당연하다.


공기업에서도 그랬다. 내가 블로그를 작성하지 않았고 내가 영상을 만들지 않았다. 천만 원 가까운 영상 프로젝트였지만 사람들을 취합하고 일정을 미리 잡는 게 다였다. 그렇게 1년 반을 일하고 나오니 1년 반 전이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 그대로였다. 그래도 맞다는 건가? 어렵다.


8.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일이나 해

애인은 꽤 일정한 길을 걷고 있다. 그것도 꽤 세밀한 분야를 타깃으로 삼는다. 예전부터 길이 좁아서 고민하는 애인에게 다른 분야도 지원해서 해보면 어떻겠냐 말했는데 어떻게 울면서 힘들어하면서 버티는 거 같다. 나는 그렇진 않다. 글이라는 걸 써와서 비슷해 보이는 길을 걸었지만 겪기엔 다 다른 길이었다. 한편으론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20대였기에 통하는 열정이자 사회에서도 용인해 주는 선이지 않았을까.


애인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한다. 하루는 지난 한 달 동안 했던 것들과 고민했던 것들을 말했다. 그랬더니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라고 했다. 안 맞는 거 같으면서도 덕분에 나와 다른 시각들을 접할 수 있다. 꽤 충격이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고민이다. 다시 그 1년 반을 일해도 아무것도 못하던 그때로 가라는 건가? 네가 매일매일 한 시간씩 회사일과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직할까 퇴사할까 마라탕 먹을까 떠드는 그 삶을 나도 같이 살자는 건가?


9. 친구를 만나러 갔다.

성향은 정반대지만 대화가 잘 통해 졸업하고도 5년 넘게 잘 지내는 친구가 있다. MBTI라는 것도 정반대다. 가끔 깊게 이야기하면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는 게 실감 날 정도다. 지방에 설계직으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는 나와 다르게 낭만이 가득했다. 같이 해외봉사를 가고 나서 금방 또 일상으로 돌아온 나와 다르게 친구는 2달 가까이 외로웠다고 한다. 제주도의 낭만을 즐기러 게스트하우스에서 반년 정도 일하기도 했다. 그만큼 취업이 늦어진 편이었다. 서른에 취업을 했으니까. 내가 문과 스물여섯에 취업한 걸 생각하면 다른 시작이긴 했다. 친구도 빨리 취업한 다른 친구들을 보며 꽤 불안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친구는 행복해 보인다. 좋은 애인을 만났고, 이제는 정말 결혼이라는 걸 입에 담을 정도로 재산이나 소득을 쌓아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작과 끝은 정말 모르는 거다.


10. 문이 좁아지고 있다

기사도 그렇고, 주변도 그렇고, 본능적으로도 느껴진다. 잘하는 기업이 더 확장하고, 잘하는 사람이 더 커지고 있다. 새로 시작해서 무언가를 성공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금 두렵다.


11. 나는 내가 성공할 줄 알았던 거다

군대 때 가장 친했던 친구는 트레이더로 성공하고

군대 때 가장 친했던 형은 유튜버도 하면서 네이버에도 들어갔다.

같이 무언가를 만들자고 했던 형도 투자자로 성공했었다.


나는 내가 성공할 줄 알았었다. 20대에는 뭔가를 이룰 줄 알았다. 굳이 많은 콘텐츠에 20대 생존기라며 20대를 붙인 건 20대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조급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한다는 다른 애들이 부럽지 않고 26살에 취업한 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도, 이것보다 더 큰 성공과 성취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했던, 살아왔던 것들이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었다.


12. 토익

당장 이삼백의 돈이 없이는 생계가 어렵기에 취업을 준비해야겠다. 모의토익을 풀었는데 500점 중반이 나왔다. 7년 전엔 900, 5년 전에 800은 나왔는데 한 번 안 하니 엉망이다.


13. 형의 출판

블로그를 하면서 형이 책을 냈다. 나도 브런치 출판이라는 걸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기획서를 쓰고, 원고를 좀 다듬어 수십 개의 출판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긍정의 답은 없다.


백만 조회수, 1300 구독자 등 내가 했던 것들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평범하고 평범했던 삶이었다. 많은 걸 잃어버린 기분이다. 이 기분이 뭐 때문인지 모르겠다. 회사 때문일까. 애인 때문일까. 그냥 피곤한 탓일까.


서른이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탕후루 같은 유행, SNS에도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