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효율하고 이성화된 사회
정보성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고객을 끌어모으라는 건 보편적인 이야기다. 고객에게 정보를 주면서 느끼는 신뢰를 회사에까지 투영시키라는 의도도 있고, 체류시간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을 거다. 그러면 고객은 왜 정보성 콘텐츠에 끌리는가?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1. 그랜마코어, 그랜파코어, 이제는 긱시크란다. 각진 안경에 체크셔츠, 막 입은 듯한 옷과 부스스한 머리의 긱과 너드들의 패션이 유행이란다. 아니 솔직히 스포츠를 이용한 패션이야 이해 가능하지만 막 입은 게 유행이라는 건, 정말 막 나가자는 걸까? 이 이면에는 결국 분화되고 양극화된 패션의 결론이 결국 개개인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거지 같이 입었다고 생각하는 그 문화마저도 패션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제 패션에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어 진짜 찐따들의 옷마저 패션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악랄함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케아의 쇼핑백이 모티브가 되고, 알렉산더 맥퀸이 신화부터 학살까지 온갖 모티브로 패션쇼를 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야 약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2. 예전에는 메인스트림이라는 게 있었다. 2~30년 전만 해도 시청률 50%의 드라마가 있었고, 10년 전만 해도 개콘, 무한도전이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콘텐츠였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등 전 국민이 아는 그룹과 노래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있나. 이제 인터넷이 너무 편리해져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정보와 사람들과 접하게 됐다. 패션 정보를 얻으려 해외 잡지를 사고, 형들에게 삥 뜯길까 두려우면서도 동대문에 갔던 낭만과 패기의 시대는 사라졌다. 대신 편리함과 알고리즘은 우리를 비슷비슷한 것만 접하게 만들었다. 5만 원짜리 추천 아이템 영상을 보는 사람은 그런 영상만 보게 만든다. 우파는 우파 영상만, 좌파는 좌파 영상만 보게 만든다. 웹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웹드라마를 보게 만들고, 브이로그를 보는 사람은 브이로그만 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다른 콘텐츠와 세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산다. 정보의 홍수는 오히려 사람들을 더 좁은 강물에 밀어 넣어버렸다. 전 세계의 콘텐츠를 모으자는 넷플릭스의 OTT가 결국 자기 콘텐츠는 자기 OTT에 밀어 넣는 OTT대전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의도와 다르게 가고 있다.
3. 예전부터 커뮤니티는 있었고, 다들 그 안에서 놀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커뮤니티가 더 세밀해졌다. 인종이나 국가보다 콘텐츠나 문화가 그 사람을 정의하게 됐다. 양극화에 더해 다극화로까지 이어진다. 아이브를 좋아하는 한국 여중생과 버츄얼 아이돌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한국 여중생보다,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한국 여중생과 일본 여중생이 더 가까운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할 거다. 그 사람의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FBI 수사법처럼, 나도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와 구독, 재생목록을 보면 당신을 파악할 수 있을 거 같다.
4. 쉽고 편한 정보공유와 함께 취향과 커뮤니티가 협소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이제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다. 세상은 점점 합리적으로 변한다. 특히 한국은 비합리적일 정도로 합리적인 거에 집착한다. 해외 작가의 말처럼 자본주의와 유교의 안 좋은 점이 강화되고 융합되어서일까? 우리는 살짝이라도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거에 집착한다.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빚을 내고, 자사고 특목고, 인서울을 하기 위해 경쟁한다. 존경하는 인물은 페이커, 손흥민, 김연아, 유재석, 도티라면서 그렇게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길들은 실패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73%에 달하는 대학진학률과 20%에 달하는 대기업과 대기업 계열사 인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오, 그래도 이 정도면 0.0001%가 되어야 하는 축구선수, 프로게이머보단 할 만하다.
5. 콘텐츠도 비슷하다. 콘텐츠를 보는 건 결국 시간 소비다. 숏폼 콘텐츠와 요약, 리뷰가 많아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싶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주제와 정보를 보고 싶다. 유튜브만 해도 매분 500시간의 콘텐츠가 쏟아진다. 그뿐인가. 신작영화, 넷플릭스, 티빙, 공중파, 팟캐스트, 애인, 친구와의 만남 등 우리의 시간은 늘 부족하다. 영화관이 어렵다 하지만, <듄 2>의 아이맥스는 거의 매번 매진이다. 우리는 거지 같은 걸 애매하게 소비할 바에야, 좋은 걸 비싼 가격에 누리고 싶다.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6. 필자의 고민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보다 더 많은 카테고리가 궁금하다는 거였다. 뜬금없이 20살에 동의보감을 봤던 것도, 다 이해 못 하지만 철학책을 꾸역꾸역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유튜브 뮤직에서 50년대 히트송부터 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파 좌파 10대 20대 30대 40대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봤던 이유는,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호기심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한 세계에 갇히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누군가가 보기엔 실패에 가까울 거다.
7. 예전에 '녹기 전에'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다루면서 나무위키 페이지도 있고 마케팅을 열심히 한다고 적었다. 몇몇 인터뷰를 다시 보니 그건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적었다고 하더라. 그러면 왜 고객들은 어떤 이득도 없는 행위를 열심히 열심히 하는 걸까? 무용함에서 오는 어떤 쾌락과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이지 못한 시간 소비에서 오는 약간의 허무함과 충전이 있다. 성취에서 오는 자부심과 충만함이 있는 것과는 약간은 다른 행위다.
8. 커뮤니티 마케팅이 대세라는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건 성취와 무용 두 지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내에서의 성취감과 그 커뮤니티의 팬이 되는 거다. 전국민적 메인스트림이, 구심점이 없어진 지금 커뮤니티 마케팅이야말로 꼭 필요한 마케팅이 아닐까 싶다. 실패와 기회비용일 수 있는 당신의 투자와 시간이 우리 커뮤니티, 브랜드와 함께라면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종교와 기부가 쇠락한 시대에서 사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건 브랜드와 커뮤니티뿐이기 때문이다.
9. 반대로 무용함을 인정하는 브랜드도 인기를 끌 수 있을 거다. 성취 성장 성공 갓생 등은 이제는 포화된 키워드니까. 재밌는 건 무용함이 메인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움직일 거라는 거다. 필자는 회사원의 고충을 이해하면서 여유롭게 살자는 메시지를 파는 그들이 그 어떤 회사원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좀 재미있다. 메시지와 판매자와 상품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는 많지만, 기성 메시지와 미디어가 싫다면서 누구보다 기성적으로 일하는 모습은 약간 모순적이지 않나? 아무튼.
10. 사람들은 00 하면 하지 마라. 00 사람은 걸러라. 결혼하지 마라. 애 낳지 마라. 자신만의 실패철학을 설파하며 실패를 멀리하라고 한다. 약간은 조소하듯이 적었지만 사실 모든 선택과 미디어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실패를 거르려고 할수록 실패가 가까워지기에 나름의 선택과 의견을 내는 것들은 모두 가치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