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생산자
1. 꽤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20대 초반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6~7년은 됐을 거다. 20대 초반에는 열정과 꿈이 있었고, 중반에는 현실에 도전하기 시작했는데 30대가 되니 앞자리 떄문인지 약간의 패배의식까지 가지게 됐다.
2. 스스로가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서글픈 순간이다. 6년 글을 써온 브런치도 들인 시간이나 스트레스에 비하면 얻은 게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건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으려고 했다는 거다.
3. 글뿐 아니라 유튜브도 계속해서 무언가 만들었고, 스마트스토어도 하고, 모임도 하고 뭐 하고 잡다하게 무언가를 하긴 했다. 사업가들이 계속해서 실행하라는 건, 무언가를 만들러 나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4. 생산자의 삶은 고달프다. 독서와 비디오의 차이랄까. 스스로 주도적으로 생각하거나 만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웹툰이나 드라마를 뒤지게 많이 보는 사람은 있지만, 그 중에서 '이거 만들 수 있겠는데'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냥 재밌다면서 보는 사람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는 사람은 집중하는 농도부터가 다르다.
5. 생산자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일을 할 떄도 마찬가지지만, 생산자가 100을 이해해야 남들에게 7~80은 전달할 수 있다. 생산자가 70만큼 소화했다면 상대에겐 3~40만큼도 전달 안 될 거다. 우리가 접하는 별거 없어 보이는 수많은 홍보와 컨텐츠들도 뒷단에서는 '타겟' '비용' '배포처' '후속액션' '컬러칩' '부자재' '상세페이지' '전환율' 등 수많은 용어와 숫자로 분석하고 있다.
6. 의에 조금 있으면서 옷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주에 조금 있으면서 공간에 대한 흥미를 얻었다. 식도 중간중간 알바로 접하는데 엄청나게 끌리는 분야가 없긴 하다. 뭐든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까지 들어가면 질릴 때까지 접해야 하는 거 같다.
7. 대단하지 않은 생산자로 있으면서 재밌는 점은, 한 두개 잘 터진 컨텐츠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다음이나 카카오뷰 메인에 열댓번은 뜬 거 같은데, 전직장 동료가 필자의 글인지 모르고 봤다가 필자인 걸 알게 됐다고 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카카오뷰를 그렇게 열심히 보나 그때는 몰랐다. 얼굴이나 이름을 모르는 분들의 응원이나 좋아요를 받는 것도 꽤 즐겁고, 얼굴이나 이름이 가물가물한 사람이 필자의 글을 본 적 있다고 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약간 셀럽이 된 느낌이랄까..
8. 소비만 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 건, 위에서 적었듯 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하나 다 보는 20시간과, 드라마를 하나 구상하는 20시간을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더 기억에 남을 거다. 필자는 워낙 보는 속도가 빨라 만화나, 책을 하루에 몇권씩 해치우는데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런데 오히려 몇백페이지 책을 읽는 3시간보다 글을 썼던 1시간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농도가 다르기 떄문이다.
9. 예전부터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노력하고 투자하는 만큼 소중해진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미드센츄리의 수납장보다, 20년 전 동네 아울렛에서 산 가구를 우리 아버지는 소중히 여기신다. 전자에는 어떤 이야기도 없지만 후자에는 아버지의 희노애락이 담겨있기 떄문일 거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조금 더 가치있게 쓰는 법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행이나 생산으로 농도 깊은 시간을 만들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