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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기 Dec 10. 2018

[도시재생의 두 얼굴]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칼럼], 스타트업4, 2018-12-10

[칼럼] 『[도시재생의 두 얼굴]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스타트업4, 2018-12-10, https://bit.ly/2QLFZiY


곳곳에 도시재생을 '찬양'하는 말이 넘칩니다. 정부가 최고로 호들갑입니다. 마치 여태까지는 본 적 없었던 대단히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도시개발의 방식을, 지구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저 먼 행성에 사는 외계인한테서 사 온 것처럼 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세상에 완벽한 정책은 없습니다. 도시재생에 명(明)이 있다면, 암(暗)도 있습니다. 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일컫는 ‘원주민 내쫓김 현상’입니다.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살핍니다.


도시재생이란?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의 전면철거 방식이 아닌, 기존 환경을 손보는 방식, 이른바 ‘리모델링’ 방식의 도시개발을 일컬어 도시재생이라고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재생이란, ‘도시에 얽힌 거의 모든 이해관계(일자리, 교통, 교육, 주거복지 등)를 동시에 고려하는 도시개발’을 ‘다시 살린다(再生)’는 말로 포장한 일종의 ‘수사’입니다. 이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 「도시재생법」)을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도시재생법」은 '도시재생사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도시재생사업”이란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서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따라 시행하는 다음 각 목의 사업을 말한다.

가. 국가 차원에서 지역발전 및 도시재생을 위하여 추진하는 일련의 사업

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발전 및 도시재생을 위하여 추진하는 일련의 사업

다. 주민 제안에 따라 해당 지역의 물리적·사회적·인적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사업

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 및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재정비촉진사업

마. 「도시개발법」에 따른 도시개발 사업 및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역세권개발사업

(…하략…)


그렇습니다. 도시개발사업 각각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면 도시재생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위 항목 중 과거에 유행한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을 일컫는 부분은 ‘라’ 목(「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 및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재정비촉진사업)입니다. 용산참사를 일으킨 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 중, ‘도시환경정비사업’입니다. 모두 「도시재생법」상 도시재생사업으로 분류되는 것들입니다.


「도시재생법」은 201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2013년 이전의 한국에는, 도시재생(사업)이 없었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도시재생은 다만 수사입니다. 따라서 꼭 「도시재생법」에 근거한 도시개발만이 도시재생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이 있지는 않지만, 도시개발에 대한 ‘통합적 접근’만 취한다면, 어느 동네에 공용 화장실을 하나 지어도 도시재생, 마을 텃밭을 만들어도 도시재생, 낡은 저층 주택을 모두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세워도 도시재생입니다. 요컨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도시재생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도시재생은 전면철거 방식이 아닌, 기존 환경을 손보는 방식’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요? 도시재생이 기존 물리적 개발에만 치중하던(그래서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떨어지는 등의 많은 부작용을 낳던)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의 대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영향으로, 도시재생은 전면철거를 수반하는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깔린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신문 기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투박한 일반론’은 이렇습니다.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이하,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덜 투박한 설명'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전통적 중간계급을 뜻하는 단어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되었습니다. 1964년,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주거 환경이 개량되며 런던 주민들의 계급 구성이 변화하는 현상을 보고 고안한 용어입니다. 그는 그의 저서 『런던: 변화의 양상(London: Aspects of change)』에서 1960년대 런던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런던의 노동계급 지구가 하나둘씩 중간계급(중상계급 및 중하계급)의 침공을 받고 (…) 낡고 허름한 작은 집들이 (…) 우아하고 비싼 거주지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지역의 전체적인 사회적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애초에 주거 문제를 논하며 탄생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 관점 혹은 접근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가령 루스 글래스가 처음에 런던 주거 지역을 예로 들어 설명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은 보통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립니다. 상가 지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농촌 지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농촌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관광객들이 주거지역을 침범하여 소음 문제와 쓰레기 문제를 일으켜 원주민이 떠나는 현상은, 관광지화라는 뜻의 ‘touristify(투어리스티파이)’와 젠트리피케이션을 더하여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이 밖에도 관(정부)에 의해 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을 ‘관트리피케이션’, 인근 대학의 학생이 대거 유입되며 지역의 색이 변화하는 현상을 ‘스튜덴티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임대료가 올라 임차인이 내몰리는 현상만을 꼭 집어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물론 각 유형을 두부 자르듯이 명확히 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각 유형이 둘 이상 중첩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관광객이 일으키는 사생활 침해 문제 때문에 주민들이 이사를 하면, 이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기도 하지만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관이 주도하는 관광 사업 때문에 해당 거주지가 관광지로 변했다면, 이는 관트리피케이션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든, 문제의식 또는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다르게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현상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바로 ‘비(非)자발적 이주’입니다. 누군가 어쩔 수 없이 이사해야 한다면, 그것은 곧 젠트리피케이션인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비자발적 이주가 머릿속에서 잘 연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둥지 내몰림’으로 바꾸면 됩니다. 둥지 내몰림은 2016년 5월에 국립국어원이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체어로 제안한 용어입니다.


생색내기에 불과한 정부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책


현재 정부는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2가지 사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상생협약 체결'과 '공공임대상가 조성' 사업이 그것입니다. 둘 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관련된 대응책입니다(아직 정부는 주거 세입자의 2년 주기 내쫓김 현상 등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고 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두 사업 모두 실효성이 거의 없습니다.


먼저 '상생협약 체결 사업'부터 살핍니다. 상생협약서에는 상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상생협약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임대인이 약속(협약)을 어겨도, 달리 제재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상생협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출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정부가 ‘임대인 임차인 간의 상생협약 체결 그 자체’를 강제할 방도가 없습니다. 결국, 정부가 임대인을 어르고 달랜 후에야 겨우 체결되는 것이 상생협약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생협약서 안에 임대인 개개인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다음은 ‘공공임대상가 조성 사업’입니다. 공공임대상가는 정부가 직접 상가를 매입하여 세를 놓는 사업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모든 상권의 모든 상가를 매입할 수 없을뿐더러, 심사를 통해 선발된 몇몇 사업장만 특정 건물에 입주하는 형태이므로, 사업의 수혜자가 극히 적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수의 사업장만 특정 건물에 입주하는 공공임대상가의 특성상, 주변 상가의 임대료를 낮추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임대차 시장에서 공공임대상가를 일반 시장과 관계없다고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비용 대비 그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것입니다.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멈추는 방법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진짜 대응 방안'을 안내합니다. 전국에서 진행 중인 모든 도시재생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시점 이후로는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을 잠시 멈춘다고 해서 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누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시재생사업이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굽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도시재생사업을 멈춘 뒤에는 법률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간 시행되었던 도시재생사업을 전부 검토하여, 어떤 법률 어떤 조문의 빈틈에 의해 사람들이 내쫓겼는지를 추적한 뒤, 그 빈틈을 수선∙보완해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푸념으로 글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하기 전에 항상 안전장치부터 착용합니다. 가령 오토바이를 타기 전에는 꼭 헬멧을 씁니다. 그런데 정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설계하지 않는 채로 도시재생사업을 휘뚜루마뚜루 벌이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은 '상식파괴 사업', '안전불감증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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