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암환자

통제하는 삶과 흘러가는 삶의 그 어느 경계에서

by 구도

병원에서 종양센터 진료를 기다릴때면 내가 있어서는 안되는 곳에 있는 있는 것처럼


이방인이 된 듯 하다.



숨이 가쁘고 어지러워 비좁은 대기실 가운데 겨우 난 한자리 의자에 앉는다.



주변 모두에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괜히 눈치를 주는 것 같다.



'저도 환자라구요, 아프고 죽는 것에 순서 있나요?'




나는 38살에 신장암의 췌장 전이 진단을 받았다.



사실 병원과 질병은 어색하지만은 않다.



나는 희귀유전병을 어릴적부터 앓았고,


여러차례의 수술과 입원을 겪었다.



지금이 과거의 그것들과 다른 이유는,


수술이 불가하여 항암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내가 받아왔던 치료들은 모두 결과가 예측가능했다.


그말인 즉슨, 물리적 제거 즉 수술을 통해 병변을 제거하면 완치가 되는 상황이었다.



수술 후 병변의 조직검사 결과가 암 또는 경계성 종양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100% 제거, 100% 완치, 즉 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므로,


수술과 회복의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나는 꽤나 잘 견뎌냈다.



잘 견뎌내야만 했다.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은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얼마든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나는 살아내야만 했다.



그러므로 생명에 지장이 없는 그런 사소한 일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야만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몇차례 진단을 받았던 신장암과 달리, 이번에는 신장암의 췌장 전이란다.



전이된 암은 무조건 4기로 진단을 내리고,


혈액을 타고 전이되는 것이므로 다른 곳에도 전이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먼저 아이들 생각이 났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아이들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내가 죽는것은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난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내가 꿈꿨던 많은 것을 이뤘고, 더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떠나고 나서 남겨질 아이들과 남편 생각에 목이 메었다.



그리고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안고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나는 여기 두발을 딛고 서있고 숨을 쉴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아이들을 안을 수 있고


남편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 일 말고 다른건 생각하지 말자.'



얼마나 더 살아야 아쉽지 않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여기서 질문을 바꿔,



어떻게 살아야 아쉽지 않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여전히 나의 몸을 움직이고 세상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꿈꾸고 실행에 옮길수 있다.



나는 지금 이순간 살아있다.






‘25.6.9 첫 항암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