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생, 나쁜 인생

이라는 판단

by 구도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거나 좋지도 않은 거네요.'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지금 나의 상황 때문이겠지 싶다.


애초에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 삶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동그라미와 세모 중에 뭐가 더 나은 것인지

빨간색과 노란색 중에 뭐가 더 좋은 것인지 따질 수 없는 것처럼.


얼마 오래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다음 차수의 항암을 기다리며

나는 인생이란 여러 가지 사건들의 연속된 집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좋고 안 좋고 가치판단을 내리고 더 나아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내가 통과해 가는 과정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무슨 일이든 나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


그 과정 속에 내가 잠시 좋다고 생각한 것이 안 좋은 것을 끌어올 수도 있고,

안 좋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을 함께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나에게 닥친 일들은 아무런 의도가 없으니까.

나 역시 의도 없이 그것들을 겪어내면 되지 않을까.


요즘 나는 나 인생 어느 때보다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한다.


그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할까 방법인 how를 물었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what과 why를 묻는다.


처음엔 다소 어색했다.


이런 자유시간 아닌 자유시간이 주어진 적도,

해야 하는 일 투성인 삶 속에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자문해적도 없었으니까.


나 스스로와 어느 때보다 친해진 느낌이 든다.


집에만 울적하게 있지 말라고 친구가 등록해 준 미술 학원에 가서,

모작 작품을 그리고 있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나는 학생일 때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걸 꽤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 내가 이런 일을 좋아했었구나 문득 깨닫는다.


오늘은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보려고 한다.


항암이라는 상황을 속상해하기보다,

속상한 감정 원천에 있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더욱 값지게 보내기 위해

내가 어쩌면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좋아할 수도 있는 일을 또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는 다행히 항암 중에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글을 쓰는 활동들은 무리가 없어 이 또한 참 감사하다.


목표와 효율만을 좇았던 나를

돌아보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 이 상황을 나는 충분히 그리고 또 온전히 즐긴다.


앞으로 또 예상치 못한 여러 부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이라는 배에,

파도를 좀 더 편하게 넘어갈 수 있는 하얗고 깨끗한 하나의 돛을 펼쳐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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