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에 오른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파서 병원에 가니 티눈이란다.
발바닥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처음엔 각질을 바깥으로 두껍게 만들다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섬유질이 안으로도 뾰족하게 자라 신경을 건드려 아픈 것이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너무 단단해지고 오래되면
오히려 스스로를 공격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나 역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쌓아놓은 규율과 규칙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옭아매고 나를 통제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한다.
우울증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그저 덮어둬야 할 때가 많았다.
매번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에 나는 어렸고, 약했고, 버거웠다.
슬픔과 절망, 두려움뿐만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도 그러했다.
모든 감정은 같은 회로를 타고 흐르기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 둔감해지려면,
기쁨을 느끼는 것도 둔감해져야만 했다.
나에게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닌 통제의 대상이었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지금 기분 어때? 편안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 어떠한 질문도 일절 하지 않았다.
단지 지시했다.
'잊어야 해, 넘어가야 해, 나아가야만 해.'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다른 이의 감정, 나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 그리고 아이들.
어느 때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감이 심연에 깔려있다.
처음으로 자문한다.
'대체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무엇을 위해 나는 지금 불안해하고 있지?'
내가 쌓아놓은 '통제하기'라는 성벽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
티눈과 같이
내면으로 쏟아져 내려와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벽 바깥 풍경을 좀 봐.
이제 바깥은 더 이상 네가 겪었던 그 폭풍우가 아니야.
아름다운 들판에 나비가 날아다니고 산들바람이 부는, 바로 네가 꿈꾸던 이 풍경을 느껴봐.
티눈이 그랬듯,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너를 그만 보호해도 괜찮아.'
'너는 할 만큼 했어.'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는 성벽 쌓기를 그만하고,
여태 나를 지켜줬던 성벽 위에 오른다.
성벽 위 망루에 올라 내가 꿈꾸던 그 풍경을 마음껏 바라본다.
그간 성벽을 높게 쌓아놨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
성벽을 부정하지 않아 본다.
성벽의 근사함을 찬찬히 바라보며 탄복해 본다.
성벽에게 고마워해본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