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行禪)

익숙한 일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by 구도

항암치료 부작용 중에 손발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다.


항암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말초신경인 손과 발에 항암제가 계속 쌓여 피부가 약해지고 수포가 생기는 증후군인데,

수포가 올라오면 항암제를 잠시 휴약을 하거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고통이 극심하다.


나의 경우 항암치료 시작 후 6주 후에 양쪽 발에 수포 큰 것이 3개가 생겼고,

집 안에서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조차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닐 만큼 몇 주 동안 고생했다.


사실 걷는 행위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너무나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걸으면서 대화도 하고, 걸으면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어디론가 이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한 수단이며 과정이지

발바닥을 번갈아가며 바닥에 붙였다 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의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이 타고 올라오니

내가 발바닥을 땅에 어떻게 디디는지에 집중하고 발끝의 감각을 오롯이 느끼며 걷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행선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행선이란 (다닐 행), (선 선) 자를 쓰며 다시 말하면 걷기 명상이다.

다른 목적 없이 걷는 행위와 발바닥의 감각에만 집중하는 명상의 한 종류이다.

오른발을 내밀자 하면 오른발을 내밀고, 왼발을 내밀자 하면 왼발을 내미는 것이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를 분절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급하게만 처리했던 일들을 하나씩 뜯어보고 찬찬히 해나간다.


익숙한 일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수행하며 현재 나의 의식의 회로에 집중한다.


발바닥을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과 허리를 펴며 한걸음 내디뎌 나의 체중을 싣는 이 행위가,

어쩌면 내가 지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에게 더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고통을 느끼는 이 순간 나는 내일, 한 달 뒤, 일 년 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고통과 함께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는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지지 못할까 두려워하던 그 소중한 하루 속에 내가 여전히 존재함을 충실히 느낀다.


손발증후군 발현 후 복용한 마약성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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