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몫
30살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종종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말들이 있다.
중학생 어드매에 친구에게 꽤 값비싼 선물을 받아온 것을 보고
아빠가 나에게 한말.
'니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의 어원을 찾아보면,
나눌 분(分), 셈 수(數)의 단어로 나의 몫, 나에게 할당된 양이라 한다.
누가 나의 몫을 정해주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몫이 정해진 걸까.
나에게 정해진 몫이란 게 얼마큼일까.
성인이 되어 몇 번의 심리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부모가 너무 작아 힘든 것'이라 했다.
마음의 크기든 사랑의 크기든
나의 부모는 분수가 작은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본인들이 줄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작기에
내가 받을 몫의 그릇도 작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싶다.
하지만 나는
하늘에 무심히 떠가는 구름으로부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로부터,
계절이 바뀔 때 나는 공기의 내음으로부터,
그리고 몇백 권의 책으로부터,
또 나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받아
내 분수의 그릇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 그릇이 미어터져 늘어나 커질 때까지.
나는 그렇게 분수를 키우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지금의 나는
중학생 때의 나보다,
그리고 나에게 작은 그릇을 넘겨준 그들보다 가진 게 훨씬 많기에.
그들보다 큰 사람이 되었기에.
나의 딸에게는 스스로의 분수의 크기를 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혹은 분수를 생각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