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지만 벌써부터 트리를 보고 싶다는 너의 말에,
어제저녁 트리를 꺼내 오너먼트를 함께 달고 전구를 감았어.
크리스마스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니 엄마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어.
엄마는 어린 시절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엄마가 어린 시절 너의 외할머니와 시장에 가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면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사주지 않았어.
어린 나는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여느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금방 잊고 시장에서 살아있는 생선이며 갓 쪄 나온 떡을 구경하는 것에 혼이 빠져
재잘재잘 떠들며 즐거워했지.
집에서 값비싼 소고기를 구워 먹진 못했지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아 버너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삼겹살이 얼마나 맛있던지,
어느 날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먹는다고 하면 하루 종일 그 식사 시간만 기다렸어.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면 네 가족이 한 방에 이불을 깔고 다 같이 자더라도
딱 엄마 머리맡에 작은 선물이 놓여 있었어.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보석함이었지.
나무로 만든 그 보석함에는 작은 거울과 더 작은 서랍이 달려있었단다.
그 보석함이 얼마나 좋았던지 엄마는 그걸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썼어.
큰 박스 안에 들어있는 레고나 긴 머리를 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인형은 아니어도
엄마는 그 보석함이 참 소중했다.
너의 외할머니도 어린 엄마에게
백화점에서 파는 예쁜 드레스, 고급진 인형 같은 여자아이라면 당연히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주고 싶으셨겠지?
하지만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가져오는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생활비를 빼고 나면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문방구에 가서 8살 엄마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몇천 원짜리 나무 조각으로 만든 보석함을 샀어.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그 선물을 작은 손으로 뜯어보며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며
외할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는 사춘기를 지날 무렵 집 근처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 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을 보며
우리 집이 여유가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어.
그 뒤로 엄마는 더 이상 외할머니에게 어떤 것도 사달라고 먼저 얘기하지 못했지.
장녀였던 엄마는 외할머니가 좀 안쓰러웠던 것 같기도 해.
항상 어두운 외할머니의 얼굴, 지친 외할아버지의 얼굴.
녹록하지 않은 삶에 찌든 어른의 표정을 보며 자란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는
결핍이라는 그늘이 어느 순간부터 드리우기 시작했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부를 잘했던 엄마는 좋은 대학에 갔고,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들어갔어.
지금 너는 서울의 넓은 아파트에 살며 1년에도 몇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고 있지.
네가 갖고 싶은 것을 말하면
당일배송, 새벽배송을 통해 바로 다음날 눈앞에 대령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네가 먼저 얘기하지 않아도
엄마가 먼저 '우리 딸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며 손목시계며 옷이며 장난감 등을 꽤나 많이
사주기도 했지.
엄마의 어린 시절보다 지금 너를 키우는 우리 집이 훨씬 여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쩌면 엄마의 가슴 한 구석에 있던 결핍이라는 그늘이
혹여나 햇살처럼 밝게 빛나는 너에게 가닿지는 않을까 하는
엄마의 열등감 아닌 열등감에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요즘 네가 물건을 잘 잊어버리고 '다시 사면되잖아.'라는 말을 할 때
문득 엄마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
가진 것이 없었기에, 가진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행복을 얻던 시간들.
네가 지금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소중함을 모르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조금 우려가 된다.
엄마의 결핍이 너에게 닿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너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었는데,
오히려 엄마의 그런 태도가 너에게 또 다른 종류의 결핍을 만들어준 건 아닐까.
엄마의 결핍이 경제적 결핍이었다면,
넘치도록 풍족한 너에게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는' 결핍이라는 게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요 근래 '꼭 필요한 물건만 사자.', '숙제를 마쳐야 가지고 싶은 걸 사줄 수 있어.'라고
너에게 말하고 있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든 그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네가 꼭 알았으면 해.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만족을 찾아야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네가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새기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의 결핍이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너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는 오늘도 글을 쓰며 고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