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투병 가방과 기쁨의 상관관계

by 구도

어떻게든 치열하게 기쁨을 찾아내고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

내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한 달 뒤 프라하로 떠나는 항공권을 결제하고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관건은 여행기간 동안 항암치료 중의 부작용을 잘 관리하고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것이었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아주 다양한데,

내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부작용은 바로 수족증후군이었다.


항암제의 반감기는 몇 달까지도 걸려서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남은 항암제가 비교적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손끝과 발끝에 계속 쌓여

이 부분의 피부를 약하게 만든다.

이 상태에서 손과 발에 압력이 가해지면 수포가 올라오는 부작용이 바로 수족증후군이다.


손에 수포가 생기면 젓가락질도 할 수 없고,

발에 수포가 생기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항암제를 휴약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적도 있다.)


아무리 렌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알프스 만년설 위를 걷고 유럽의 아름다운 성당과 고성을 둘러보려면

불가피하게 많이 걸어야하는 경우가 있으니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암환우들을 위한 네이버 카페를 뒤져 족저근막염 환자용 양말이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발바닥 중 땅에 디디는 부분의 양말 두께가 아주 도톰해서

오래 걷더라도 발바닥에 가해지는 부담이 확실히 덜했다.


또한 항암제 부작용으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 정수리가 하얘져서

외출 할 때 항상 모자를 쓰고 나갔었는데,

기왕 가는 여행에서는

아픈 내가 아닌 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나로 지내고 싶었기에

고민고민하다 비건 염색을 할 수 있다는 샵을 찾아가 뿌리염색도 했다.


이 외에도 항암 부작용 중 하나인 구내염을 예방하는 가글액,

간 수치와 갑상선 수치 유지를 위해 매끼 식사 후 먹어야 하는 약들,

수족증후군 예방을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발라야 하는 보습제 등등

항암 관련 용품으로만 작은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워 넣었다.


캐리어 여러 개를 거실에 펼쳐놓고 짐을 싸고

거울에 비친 검은 머리의 나를 보니

암 진단 전의 삶으로 돌아간 듯해 기분이 묘했다,

아니 그저 좋았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으니.


불과 4달 전 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웃으며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어쩌면 모든 인간은

어떻게든 치열하게 기쁨을 찾아내고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

내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출국 당일 이른 아침,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출국날은 추석 연휴라 공항에 사람이 많았다.

오래간만에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 있자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암진단 후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병원과 집만 오가며 간단한 취미생활도 집 근처에서만 했었는데,


간편한 여행복 차림으로 기대감에 들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그중 한 명으로 섞여 있으니

'나도 이들처럼 떠나는구나, 건강한 사람처럼 떠날 수 있는 거였구나!' 실감이 났다.


예정된 탑승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이동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허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나의 유럽여행은 출국하는 비행기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사진 출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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