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정의하는 삶

by 구도

내 몸에는 큰 흉터가 3개 있다. 그중 하나는 왼쪽 귀 뒤부터 목 뒤까지 이어지는 10cm짜리 흉터다.

흉터가 생긴 건 2001년 여름.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한 달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시작한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음식을 섭취하면 바로 구토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다니다 차도가 없자 대학병원에 갔다. 여러 검사 후 받은 진단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뇌종양’. 종양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머리를 절개해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과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수술 후 정신을 차렸을 땐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신경외과 병동에 누워있었다. 신경외과 병동에는 고령의 환자가 많아서 10대인 나는 눈에 띄었다. 의사나 간호사는 나에게 유독 친절했고, 어린 나이에 왜 여기 있는지 대놓고 묻는 이도 있었다. 이틀이 지나자 매일 붕대를 풀고 상처를 소독했다. 두 번째 소독하는 날 겨우 용기를 내 거울로 뒤통수를 봤다. 손바닥 크기의 어색한 민머리. 깨끗하게 밀린 희끄무레한 머리 가운데 붉은 절개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아직 굽지 않은 도자기에 깊은 스크래치가 생겨 하자 있는 제품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상처는 잘 아물었다. 의사는 ‘나이가 어려 상처가 금방 아무네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내 질환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으니 평생 추적 관찰이 필요하며, 유전질환이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50%의 확률로 유전이 된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어차피 정상적인 인생은 글렀으니 결혼도, 출산도, 평범한 삶은 포기하겠다는 말을 치기 어리게 내뱉었다. 이에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훌륭한 어른이 되어 직접 질환을 고치는데 힘쓰면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 후 매일 밤 병상에 누워 ‘내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퇴원 후, 민머리를 다른 긴 머리로 가리고 등교를 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민머리를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목 뒤쪽에 바짝 묶었다. 치료기간 중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는데, 공부를 잘했던 나는 이전에 본시험 점수의 80%를 받아 시험을 보지 않았는데도 점수가 잘 나왔다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본인도 나처럼 병가로 시험을 안 보고 싶다는 몇몇 친구의 말에 수술부위가 욱신거려 마냥 따라 웃지 못했다.


일상생활에 다시 적응하면서 머리카락도 조금씩 자라났다. 하지만 남자아이의 까까머리 같은 짧은 머리의 까슬까슬한 감촉과 절개부위의 얼얼한 감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수시로 떠오르게 했다. ‘평범한 삶과 유전자 돌연변이라는 주홍글씨 중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것일까?’. 그러다 문득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질문이 잘못되어서는 아닐까 싶었다. ‘평범한 삶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그저 나일 지도 모른다. 애초에 경계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삶을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니 손에 잡히지 않던 눈앞의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지난 그해 가을 머리카락이 자라 민머리가 보이지 않았을 때쯤, 나는 현실에 충실히 임하는 법을 조금은 터득했다.


40을 바라보는 지금, 어린 나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이 보여주는 여러 기회를 통해 결혼을 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아 키운다. 평범한 삶이라는 경계 바깥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고립시켰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삶이다. 가끔 머리를 긁적이다 흉터가 만져지면 정의 내리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14살의 나를 기억한다. 평범한 삶과 평범하지 않는 삶, 그 어떤 삶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중간쯤 어딘 가에서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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