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7살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 둘레길을 찾았다. ‘운동을 하려면 제대로 된 등산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리니 어쩔 수 없지. 둘레길이라도 최대한 많이 걸어야겠다. 그래야 운동한 보람이 있지. 가 볼만한 곳이 있는지도 미리 찾아봐야겠다’. 미리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출발할 예정인 곳에서 2km 떨어진 곳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나왔다. 국립극장 주차장에 주차 후 둘레길 초입에 들어섰다.
시원한 바람이 뺨에 와닿고 가을 햇볕이 밝게 빛났다. 아이들은 둘레길 주변의 가을꽃,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신이 났다. ‘이 꽃 예쁘다, 저 풀 좀 봐!’ 아이들이 가을 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얘들아 빨리 와, 여기로 1시간 정도 가면 도착할 것 같아.’ 나는 아이들을 재촉한다. 30분 정도 걸었을 때쯤, 아이들이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얼마 안 왔어, 아직 30분밖에 안 걸었는걸, 조금 더 가야 해.’ 아이들을 다독이며 밀어붙인다. 10분 정도 더 걸었을까, 업어달라는 말이 나온다. 잠시 쉬었다가 가기로 한다. ‘엄마 목말라.’ 가방에 집에서 가져온 주스가 있었지만 카페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와 달콤한 디저트를 먹자고 회유했다. 그렇게 10분쯤 더 갔을 때 한 발자국도 더 걸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성화에 발걸음을 돌렸다. 가려고 했던 카페도 가지 못하고 제대로 된 운동도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봄, 건강이 안 좋아져 13년간 다닌 직장을 휴직했다. 건강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니 복직 시점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조용한 집안에 혼자 있으니 주변의 공기가 어색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여태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가 뒤쳐지고 실패한 사람이 된 듯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받은 것이 많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살아야 했다. 나는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을 고민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고등학생 때도 재수나 삼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현역으로 대학 입학 후 졸업 전까지 끊임없이 과외를 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의 과외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가는 방학 동안 나는 과외를 4개까지 늘렸다. 대학 전공 역시 취업하기 가장 편한 경영학과였고, 취업은 내 적성이나 관심사 보다 당연히 연봉을 고려해 입사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강박적으로 효율을 추구했다. 어딘가에 갈 때 무조건 가장 빠른 길로 가야 직성이 풀렸고,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게 되면 몇 시간 동안 분에 못 이겨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 주말에 늦잠 한번 잔 적이 없었고, 여행을 갈 때는 시간 단위별로 엑셀에 계획표를 만들었다. 실패를 병적으로 두려워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유행한 인형 뽑기를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인형 뽑기 기계는 보통 여러 번 실패하다가 낮은 확률로 성공하는데, 나는 그런 사소한 실패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목표 설정과 극한의 효율 추구는 내 인생 전반에 자리 잡은 오랜 습관이 되어있었다. 쉼이나 여유를 누릴 사치는 없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이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휴직 후 어느 아침, 답답한 마음에 걷기라도 할까 싶어 남산 둘레길을 찾았다. 특별히 가야 하는 지점도, 돌아와야 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걸음이 느려진다. 평일 오전 한산한 남산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다. 주변도 두리번거려 본다. 지난가을 아이들과 왔을 때 아이들이 살펴보던 꽃 길이 보인다. 계절이 바뀌니 새로운 꽃들이 자라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스마트렌즈로 꽃 사진을 찍어 이름을 검색한다. ‘노루오줌’, ‘산수국’, ‘옥잠화’와 같은 꽃 이름을 소리 내 읽었다. ‘이름 참 예쁘다. 아이들한테도 얘기해 주면 좋아할 텐데. 그때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걸 그랬네.’ 길가에 핀 꽃과 나무를 살피며 걷다 보니 2시간이 훌쩍 흐른다.
그 뒤로도 최근까지 여러 번 남산 둘레길을 찾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광화문 방향의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 서면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내 회사가 잘 보였다. 휴직 후 처음 그 전망대에 섰을 때는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낙오되어야 있어야 할까.’ 회사를 멀리서 보는 것이 속이 쓰렸다. 휴직 후 몇 달이 지난 지금은 같은 곳에서 회사를 바라보면 그 안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앞만 보고 달릴 때 생각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입사하자마자 첫 결산을 하며 밤을 새우고 새벽에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던 날, 쌍둥이를 임신해 책상에 배가 닿을 때까지 일했던 때,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미안함에 눈물을 삼키며 출근한 날. 13년을 지나온 길 위에 애썼던 그날들이 하나씩 남아있었다. 그 기억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조금은 안쓰럽게도 또 한편으로는 기특하게도 여겨졌다. ‘나 열심히 살았다, 고생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둘레길은 한참을 걸어도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높은 곳에 올라 정복해야 하는 정상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 그 여정은 어떠했나 돌아보면 많은 것을 보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 삶이란 산 정상이라는 목표에 오르는 것이 아닌 둘레길을 걷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아진 요즘, 아이들과 둘레길을 걷는다. 이제 목표는 정하지 않는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낀다. 꼭 가야 하는 곳은 없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난가을과 달리 이번 가을은 한결 마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