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백수로 맞는 생일이다. 취업이 막막하던 졸업 첫해에도 생일에 입사했으니 세이프. 그리고 번뇌의 비긴즈 늘 생일이면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이젠 무조건 재택이다. 다행히 코로나 덕분에 그럴싸 해. 아내는 새벽부터 일 보러 나갔고, 고양이들은 집사 생일 따위 관심 있을 리 없다. 미아옹, 울어 본다.
이불에 돌돌 말려 호기롭게 해충으로 변신하려는데, 백수의 아침답지 않게 전화기가 소란하다. 생일 축하 메시지. 카톡 생일 알람 기능은 오래 연락이 닿지 않던 지인까지 소환했다. 이것 참, 고맙다. 사무실 대신 카페서 죽치는 요즘, 커피 쿠폰 쏴 주신 분께는 아프리카TV BJ처럼 행님, 행님, 하며 요란스럽게 그랜절을 올렸다.
카톡 아래 못 보던 알람이 눈에 띈다. 얼마 안 되는 주식 배당금이 들어왔다. 히히 초밥 사 먹어야지, 하는데 그 아래 또 뭐가 잔뜩. 우오오오옷, 전날 올린 브런치 글(여의도에서 가장 빠른 패스트푸드)이 밤새 1만 뷰를 돌파했단 소식이다. 다음 메인에 걸렸다. 첫 글이 다음에 올랐을 때는 그저 스타터 버프이거나 초심자의 행운이겠거니 했다.
조회수는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2만, 3만, 4만, 5만. 콩국수 먹기에 아직 서늘하지 않나, 왜들 이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주집에서 블로거지 코스프레하면서 쿠폰이라도 챙겨 둘 걸. 진주집 형님이 진주회관인데 거기라도 가볼까. 이러는 와중에 다음 여행맛집 베스트 글 2위에 올랐다.
다음날도 버프가 계속됐다. 숨어 있던 글들을 차곡차곡 꺼내 올려 주더니 브런치는 오픈 일주일 만에 10만 뷰를 돌파했다. 때론 눈물을 흘리며 미니미와 BGM을 치장하던 자의식 리즈 시절 싸이월드 총 방문자보다 많다. 카카오가 나한테 왜 이러나. 이 정도면 카카오의 숨겨 둔 자식 아닌가. 곧 검은 리무진의 검은 정장 사내들이 허리를 접으며 외칠 것만 같다, 도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생일 오후, 장모님의 택배가 도착했다. 아니 이거슨, 생일상이었다. 언택트 생일잔치라니. 부산에서 곱게 포장된 음식들 사이로 손편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마니 마니 사랑해, 마미가. 라임 쩌는 장모는 아직 사위가 백수가 된 걸 모른다. 그렇다. 사람은 다 알아 버리면 차마 사랑할 수 없다. 퇴근한 듯, 밤에 답장해야지.
찬에는 장모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갈비는 뼈를 발라내 식히고 기름까지 걷어냈다. 전은 12월 쟁여둔 햇굴을 갖은 채소와 송화버섯과 다지고, 키토식지망생들을 위해 밀가루 대신 감자 전분으로 부쳤단다. 굴은 미역국에도 들어가 어제 술 먹지 않은 게 후회될 만큼 깊은 바다의 길을 냈다. 가자미 무침은 잔가시를 모두 발라 꿀과 물엿을 입혀 새콤하면서도 깊은 단맛이었다. 음식을 삼키며 깨달았다. 아아, 나는ㅡ
카카오가 아니라 당신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감동은 금세 잊고 브런치 삼매경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따금 창 밖에 검은 리무진이 없나 흘끗댔다. 리무진은 오지 않았지만 오늘 처음 브런치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원고 청탁. 어머, 이게 된다면 백수 이후 첫 소득이 될 것이었다.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카카오 브런치는 전어 같구나. 집 나간 백수도 돌아오게 만드는. 이불에 말려 해충으로 변신하려는 꿈이 가로막혔다.
무튼그렇게, 아직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백수 생활로 잠잠하던 카톡과 다시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까지 혼자일 수는 없는 거니까함께, 보폭을 맞춰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