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국밥, 그리고 봄

산다는 건 어쩌면 국밥 한 그릇 같은 게 아닐까.

by 구도연



겨울 초입이었다. 하쿠가 폐렴 증상을 보인다는 아내의 말에 병원을 찾았다. 고양이 폐렴은 치료가 쉽지 않다. 그저 감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의사의 대답은 무거웠다. 폐렴 또는 폐염전이 의심됩니다. 폐가 꼬이는 폐염전은 폐 절제 수술이 필요하다. 이젠 그저 폐렴이기만을 바랐다. 몇 주간 약을 먹이고 네뷸라이져 치료를 병행했지만 엑스레이 결과는 그대로였다. 바로 2차 병원을 향했다.


CT 촬영 결과 폐염전 진단. 고양이 폐염전 발생 확률은 극히 낮다. 그 낮은 확률이, 한창인 다섯 살 고양이에게, 내 옆의 하쿠에게 찾아왔다. 내 어떤 선택이 하쿠를 아프게 했을까. 지난 몇 년을 속성으로 돌아봤다. 딱히 답은 찾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아직 어려서 예후도 좋을 테고, 수술 경험도 많은 병원이니까. 집에는 전에 없던 침묵이 흘렀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입밖으로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수술 당일. 원장 면담 중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애써 누르던 걱정 반, 작은 아이 하나에 의사 여럿이 함께 집도한다는 얘기에 고마운 마음 반. 하쿠를 수술대로 보내고, 국밥집에 들어갔다. 이틀 밤을 새고 종일 빈 속이었다. 김이 폴폴 나는 국밥 한 그릇이 왠지 위로가 됐다. 뜨끈한 국물이 얼어붙은 몸 곳곳을 녹이며 괜찮다, 괜찮다 속을 쓸어내려 주는 기분이었다. 하쿠 수술은 밤 늦게 끝났다.


와중에 집사는 목 디스크가 왔다. 콘티를 그리는데 팔이 마비돼 올라가지 않았다. 너까지 왜 그러니. 그림 못 그리면 뭐 먹고 살지. 잠시 고민했다. 하긴, 지금도 딱히 밥벌이는 안 된다. MRI 터널로 들어가며 기도했다. 하쿠도, 나도, 이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집사는 부목을, 하쿠는 넥카라를 두르고 생활했다. 동병상련. 헛헛한 웃음이 났다. 그래,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았겠지.


아니었다. 물리치료 중에 아내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는 목소리. 하쿠 수술 전 진행한 조직검사 결과였다. 악성 림프종. 뜻하지 않게 종양 부위를 절제한 결과가 됐지만, 완전절제 판정은 어려웠다. 항암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누구에게나 끝은 있다. 하지만 그 끝이 생각보다 빠르고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는 체감. 성큼 두려워졌다. 일에 집중 못하고 멍하니 모니터만 보는 날이 늘었다.


누구보다 힘든 건 하쿠였을 거다. 매일 알약을 억지로 삼키고, 주말마다 차를 타고 병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으니까. 그마저도 컨디션이 나쁘면 항암이 밀려 다시 내원해야 했다. 병원 가는 날이면 하쿠는 진작부터 이불로 숨어들었다. 괴로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도록, 다른 고통과 마주치지 않도록.


무심하게도 시간은 흘렀다. 다행히 좋은 방향이었다. 하쿠는 마지막 항암까지 무사히 마쳤다. 집사 디스크도 호전됐다. 이젠 하쿠도, 나도,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1년간 추적 관찰이 필요하지만, 절제 수술에 항암까지 했으니 조건이 나쁘진 않다. 하쿠는 발랄함을 되찾았다. 없던 식탐도 생겼다. 밤이 되면 집사에게 백만서른두 번의 박치기를 하고 품에 안겨 잠든다. 집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마침 다른 좋은 소식도 들리기 시작했다. 출발이 험난했던 웹툰은 독자가 늘면서 금요일 30위권에 진입했고, 태국, 대만에 이어 일본 론칭이 확정됐다. 차기작 제안도 들어왔다. 집은 전세 연장이 되지 않아 난감했는데, 아내의 안목 덕분에 현재 반값 수준에 더 좋은 곳을 찾았다. 고깃집을 시작한 동생은 일이 적성에 맞는지 전보다 씩씩해졌다. 유독 길고 추웠던 겨울의 끝, 봄이 오고 있었다.


물론 일상은 여전히 힘겹게 굴러간다. 스토리를 푸는 건 매번 버겁기만 하고, 꾀죄죄한 몰골로 사흘 만에 집에 들어갈 때면, 마감의 기쁨보다는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죄책감에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어쩌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와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 아닐까. 하쿠가 아픈 이후로 더 잦아진 고민이다. 하지만 당장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기도 하거니와, 다시 마감의 압박이 마음을 깔아뭉갰다.


문득 하쿠 수술날 먹은 국밥이 떠올랐다. 산다는 건 어쩌면 국밥 한 그릇 같은 게 아닐까. 새벽부터 물건을 떼 와 오래도록 재료를 다듬고 육수를 고아 상에 올리지만, 순식간에 후루룩 사라져 버리는 일. 금세 왔다 떠나는 신기루 같은 손님들을 위해 매일, 매끼, 수지가 맞지 않아 보이는 수고를 거듭해야 하는 일. 그러다 가끔 뜨겁게 위로 받은 누군가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잠시 안도하게 되는 일.


마감도, 가족을 지키는 일도, 사는 것도

다들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뜻대로 끝이 정해지는 일은 드물다. 의도와 상관 없이 때론 겨울이, 때론 봄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웃을 때도, 울 때도 있지만, 훗날 돌이켜 보면 비단 하나의 감정, 하나의 처지만 담긴 시절은 없다. 그저 매일, 매끼, 내 자리에서 꾸역꾸역 국밥을 말다 보면, 다양한 군상들과 마주치게 되고, 무심히도 계속 흐르는 시간 앞에서, 그저 그들과 마주친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볼 뿐이다.


그저 오늘의 내가, 오늘의 너에게

최선의 위로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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