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영화

by 구도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폴 토마스 앤더슨

생각보다 정치적인 영화라서 한 번, 전에 없이 친절한 영화라서 두 번 놀랐다. 자칫 경직될 수 있는 메시지는 밥이라는 인물의 아이러니와 뜨거운 부성애에 녹아 가슴을 흔드는 여운으로 남는다. 끝없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막의 추격 씬은 시체로 쌓아올린 굴곡의 역사와 감정의 운율을 담은 시 한 편 같기도 하고, 터미네이터2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쫓고 쫓기던 세 인물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루탄을 맞고 선글라스를 낀 밥은 터미네이터가 되지 못한 사내의 애잔함을 그린 것 같기도) 끈질기게 한 호흡처럼 긴장이 이어지면서도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 덕분에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 이틀 밤을 새고 쓰러지기 직전 극장을 찾았는데도 오랜만의 굵직한 영화적 경험 앞에서 한 눈 팔 틈이 없었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이경미, 돈 맥켈러, 이자혜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마자 든 생각. 평점이 과연 테러다. 재밌다. 초반 어지럽고 산만한 전개는 이 미친 사람들의 미친 이야기에 관객을 부르는 미친 초대장 같다. 헤어질 결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키17보다 충분하다.

[1승] 신연식, 조유진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유쾌한 한 끼. 신연식 이야기의 정점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편집점을 찾기 힘든 깔끔한 전개. 특히 송강호의 연기는 오랜만에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매력적이다. 주목 받지 못했지만 값진 1승을 올린 영화.

[승부] 김형주, 윤종빈

바둑판 위에서 돌 대신 이병헌과 유아인이 춤춘다. 전쟁은 치열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낱 돌놀이. 고독한 싸움의 여운을 담은 한 편의 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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