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과 어퍼머티브 액션

절차적 공정과 목적적 정의

by 페넌트레이스

최근 한미 양국에서 교육 이슈가 톱뉴스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가, 미국에서는 대법원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이 도화선이 됐다.

두 이슈는 '공정'이라는 카테고리로도 함께 묶인다. 윤 대통령은 킬러 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다며 "불공정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사교육 수준을 결정하는 만큼 학생들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경쟁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끌어낸 단체는 그 이름에부터 '공정'이 들어가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은 아시아계, 백인 학생이 흑인, 히스패닉보다 SAT 점수가 높은데도 대학에 불합격하는 역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일견 수긍이 된다. '좋은 대학'은 한정적이고 지원 학생은 넘쳐나는 상황에서 절차적 공정을 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탈락자도 결과에 승복할 수 있고 전체 시스템이 유지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절차적 공정뿐 아니라 목적적 공정도 추구해야 한다.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기준의 목적이 단순히 '분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분배를 통해 그 자원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선 그 재화의 목적(텔로스)을 고려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의 목적은 현재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킬러 문항 배제는 '공정 입시'의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되지 못한다. 애초에 기형적인 킬러 문항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풍토는 건들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1994년에 시작한 현 수능 시스템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는 징조일 수 있다. 좋은 인재를 골라내는 선별기 역할은 이제 수행하지 못한 채 인위적인 줄 세우기에만 급급하게 돼버린 것이다. 19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올해 서른을 맞은 수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는 '좋은 인재 배출'이라는 목적 자체를 저해할 위험까지 내포한다. 어퍼머티브 액션의 지지 근거로 '다양성 확보'가 있는데, 이는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학생들이 한데 모이면 개개인의 창의성과 포용력이 높아지고 결국 현대 사회 인재상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애플, 구글, 메타 등 80여개 미국 기업은 지난해 "미국이 현대 경제와 노동력의 필요에 부합하는 뛰어난 자격의 미래 일꾼과 기업 리더를 꾸준히 배출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어퍼머티브 액션 지지 의견서를 연방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물론 교육의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차적 공정을 배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쪽에 매몰돼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진 말자는 것이다. 한국은 킬러 문항 배제와 함께 현 수능 시스템에 대한 거시적인 고민이 필요하고, 미국은 어퍼머티브 액션의 사회적 효용을 따져보고 대법원의 판단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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