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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꿈조차 꾸지 말라고 했을까?

취업준비생, 아름다운 청춘들의 치열한 이야기

늦은 오후, 사무실에 한 학생이 찾아왔다. 학생이라 호칭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나이의 여학생이었다. 한참 아름다울 나이에도 그리 꾸미지 않고 수수한 차림이었다. 더운 날씨에 사무실을 찾아 종종거리며 걸어왔을 그 여학생을 위해 얼음을 잔뜩 넣은 시원한 커피를 한 잔 권했다. 빈손으로 찾아 왔다며  미안해하던 그 여학생은 목이 말랐던지 냉수를 마시듯 쓰디쓴 커피를 마셨다. 


늘 첫 물음은 어색하기만 하다. 짐짓 미소를 띠며 물었다. 

"상반기에 지원하셨던 곳은 다 안 되신 건가요?"


조금 주저하더니 이내 올 상반기에 지원했던 곳들과 자신의 형편없는 결과에 대해 늘어 놓는다. 어설펐던 내 첫 물음이 그렇게 아팠던 걸까? 아님 그 결과들이 새삼 서러웠던 것일까? 갑자기 소리 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린 그 여학생과 그 울음에 당황해 버린 나, 둘 다 잠시 말을 잃었다. 


화장지를 황급히 꺼내 건넸고 그 화장지로 눈물을 찍으며 그 여학생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집의 나이로 34살, 만으로는 33살. 적지 않은 나이이다. 이제 졸업을 앞둔 4학년 여학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시작한 직장생활은 아픔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작은 건축사무소에서 짧게 사무보조를 했고, 이름은 마치 멋진 연예기획사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2년 넘게 마트를 돌며 신제품 홍보 이벤트 행사에 다녔다. 일이 힘들고 지쳐 다시 찾은 직장은 돌잔치 전문점, 예약을 받고 행사업체와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사회를 배웠다. 적은 월급마저 갑자기 받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해야만 하는 계약직으로 말이다. 


무작정 직장을 관두고 집에 있기 미안해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서울시내를 헤매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하필 시청역 주변을 돌았다. 시청역 근처에 있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크고 멋진 건물들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 불 켜진 사무실마다 멋지고 능력 있는 신입직원들이 목에 신분증을 걸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이겠지 라는 생각에 그만 앞좌석에 머리를 묻고 소리 죽여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가슴마저 먹먹해져 왔다. 


그 여학생은 그제야 한국이란 사회에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서비스센터에 근무를 계속하면서 남보다 독하게 준비해서 대학에 편입할 수 있었다. 물론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직장을 관두고 늦깎이 대학생활을 즐겨보기도 전에 취업은  성큼 다가왔다. 남들처럼 부랴부랴 토익을 공부하고 지원할 곳을 찾았다. 하지만 서울 중하위권 대학의 전혀 인기없는 인문학과, 700중반을 겨우 넘는 토익점수, 전산회계 자격증 하나, 33살이라는 나이, 이것이 그 여학생이 가진 모든 것이었다. 취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계속 좌절하고  힘들어하다가 쓰러져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 지원할 기업을 찾는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 다니는 대학교의 취업지원센터의 상담사였다. 취업상담을 위해 찾은 취업지원센터, 불합격이 계속되면서 상담직원은 그 여학생에게 많은 나이를 이야기하며 중소기업 취업을 권했다. 그런 스펙을 가지고서는 절대 은행이나 대기업은 들어갈 수 없다며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에 화가 나서 찾아간 자칭 취업전문가의 취업상담. 그 취업전문가는 더 심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간 그 여학생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정도로 스펙을 이야기하며, 나이를 이야기하며 요즘 심각한 취업난을 이야기했고, 가진 것도 없이 눈만 높아 부모님 속을 썩이는 취업준비생으로 몰아갔다. 그 여학생의 울음이 터진 이유였다. 그 여학생이 눈물을 멈추지 않는 이유였다. 얼마나 서러웠기에 처음 보는 사람앞에서 그리도 눈물을 쏟았던 걸까?  


왜 우리는 젊은 이들에게 꿈조차 꾸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왜 그 여학생은 멋진 건물의 사무실에 찰랑거리는 신분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모습을 꿈꾸면 안 되는 걸까? 왜 매년 계약연장을 걱정하며, 사장님 눈치를 보며 밤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켜야만 하는 지긋지긋한 계약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마저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꿈조차 꾸지 말라고, 현실을 그냥 인정하고 살라는 저주를, 독설을 너무 쉽게 내뱉은 사람을 쫒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묻고 싶었다. 아니, 이 사회의 가진 자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왜 힘들게 버티고 있는 그 여학생에게 작은 꿈조차 허락하지 않는지를 말이다. 

 


그 여학생에게 물었다. 


꿈이 무엇인지? 


안정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것이 꿈이란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커리어우먼도 아니고,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협상 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정규직, 그저 안정된 곳.. 그게 그 여학생의 꿈이다.


눈물을 멈춘 그 여학생에게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염두에 두고 흔들리지 말고 공기업에 전력하도록 이야기했다. 스스로 공기업 취업이 가능한지 의심하는 그 여학생에게 공기업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 여학생의 눈빛이 눈물 때문인지 더 초롱초롱해졌다. 


올해부터 도입된 공기업의 NCS 능력중심 채용제도는 어쩌면 그 여학생에게는 새로운 기회일지 모른다. 흔히 스펙이라 부르는 학교와 학과, 영어성적, 공모전 수상경력을 기재하지 않고 지원자의 능력만을 평가한다는 NCS 능력중심 채용이라면, 그 여학생이  그동안 직장생활을 통해 쌓아온 실력만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정부가 생각하는대로 NCS 능력중심 채용이 제대로만 작동된다면 기회는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그 여학생으로부터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거의 포기했던 토익공부를 다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국 콘텐츠진흥원이란 곳에 지원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는데 조금 조언을 해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번은 그냥 연습 삼아 지원하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요."


나 역시 두려웠던 것일까? 전화를 끊고 씁쓸해진다. 


하지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그 여학생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나 역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여학생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일이 좋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꿈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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