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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을 강요하는 잔인한 시대

취업준비생, 아름다운 청춘들의 치열한 이야기

공기업 인적자원개발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연례행사인 신입직원 채용을 마치고 팀원들끼리 가까운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내 옆자리에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는 똑똑한 막내가 앉았다. 별로 술을 좋아하는 후배가 아닌데 그 날따라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더니 제법 취했던 모양이다. 


"아휴~ 요즘 신입직원들 스펙을 보면 정말 장난이  아냐."라는 내 말에 그 후배의 대꾸는 당황스러웠다.  


"요즘 같으면 차장님도 아마 우리 회사에 못 들어오셨을 거예요."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술김에 내뱉은 말이긴 했지만 그 녀석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나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앞자리에 있던 또 다른 후배가 "야!, 우린 빽으로  들어왔어."라는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는 대충 수습됐지만 회식자리는 이내 파장 분위기였다.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후배한테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라는 생각에 잠시 화도 치밀었지만 이내, 그 후배 녀석의 당돌한 이야기가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란 점을 깨달았다. 사실 내 대학생활에서 스펙이란 단어는 없었다.


87 학번, 민주화 바람에 최루탄 가스가 캠퍼스 곳곳에 날리던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선배들의 호통에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중앙광장에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던 시절,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말리지 못하던 교수님들. 


변화의 시대였고 아픔과 갈등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를 사는  양심이라면.."라는 생각에 학업은 뒷전이었다. 가방 속에는 복사집 전공원서와 함께 선배가 조심스레 건네준 책들이 있었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짧은 머리로 돌아온 학교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모두들 토플책과 voca  22000을 들고 다녔고 오랜만에 들른 총학 사무실에도 반가운 선배들의 모습은 없었다. 나도 덩달아 영어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자릴 잡았다. 토플시험을 본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유학을 염두에 둔 건 더욱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그랬었다.   


4학년이 되자, 전혀 인기 없던 과대표에 지원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교수 추천서가 취업을 보장해 주던 시대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보험회사를 시작으로 멋진 양복을 입은 선배들이 찾아와 후배들을 이끌고 학교 앞 호프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각자의 손에는 입사지원서가 한 장씩 들려져 있었다. 과사무실 앞 게시판에는 기업에서 날아온 추천서가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지방국립대 경영학과, 그래도 꾸준히 추천서는 날아왔다. 조교선배와 함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서 회사 로고가 새겨진 서류봉투를 들고 가는 모습이 흔했다. 양복에 회사 배지를 달고 학교에 온 친구들이 늘어나도 모두들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연봉의 차이일 뿐, 어느 회사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나 역시, 대기업 면접에서 두어 번 떨어졌지만 다른 대기업에 입사했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막걸리를 마셔가며 핏대를 세우며 논쟁을 벌였던 시대였지만 그래도 취업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을 걱정하기 보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걱정하던 시대였다.   


시대가 변했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촌스럽게 느껴지고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특별한 날에만 먹었던 돈가스이지만, 내 아이들에게 먹이질 않는다. 그렇게 좋은 시절이 왔다. 하지만 오히려 생존을 걱정하는 세대들이 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30대이다. 별로 부족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원어민 발음을 배우며 자란 세대다. 우리가 자랐던 환경보다 훨씬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 세대들이 지독히 아파하고 있다. 꿈을  잃어버린 채,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아직도 원어민 발음을 흉내 내며 학원에 다니고 있다. 등록금 고지서를 꺼내놓기 미안해,  밤 늦게 편의점에서 빨개진 눈을 비비며 차가운 새벽에 쓰레기통을 비우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모두들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지쳐 버렸다.  


채용공고를 들여다 봐도 정규직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 인턴이고 계약직이다. 지난 정부부터 채용공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 인턴이다. 다시 계약직이 흔해졌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을 배우러 간 인턴, 고분고분해야 한다. 혹여 밉보일까 새로 산 구두는 늘 땀에 젖어 있다. 열정페이란다. 그렇게 몇 달을 고생해도 팀장님은 눈길을 피할 뿐이다. 인턴생활을 한 덕분에, 이제 사회란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배웠다. 운이 좋으면 모를까, 다시 채용공고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인턴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청춘들이 빼앗긴 시간과 기회에 대해서는 누구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정부와 가진 자들이 모여있는 재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쓸데없이 공부만 하지 말고 일손이 부족한 공장에 가서 일하라고. 그 곳에서 꿈을 만들라고.


그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 아들은 어디로 보냈는지를 말이다. 참, 뻔뻔하다. 눈높이를 낮추면 보이는 작은 직장에서 20년 넘게 일해도 손에 쥐는 것이 빠듯해서 늘 한숨을 짓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면 자란 청춘들에게 그런 선택을 권하고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을 이야기한다. 미국을 이야기한다. 그 나라에서는 공장에서 실력을 쌓고 일하는 것이 어설프게 공부한 것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 채, 그런 나라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다. 참 무책임하다. 하청업체를 쥐어짜서 남은 현금을 쌓아놓고 가로수길 건물을 사서 임대료를 올리고, 하청업체 사장은 직원 월급인상은 커녕 당장 도산을 걱정하게 만드는 그 들이 그런 소릴 지껄여 댄다.          


또, 정부와 재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한다. 스펙에 집착하지 말라고. 


묻고 싶다. 젊은 이들이 스펙에 목을 매는 이유를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말이다. 결국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부모들처럼 살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펙에 내달리는 아픔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스펙에 집착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미안함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 회사의 영화관에서 딸이 팝콘을 팔아 부를 대물림한다. 계약직과 알바를 써서 말이다. 돈을 너무나 쉽게 번다. 남들은 전기차 연구에, 무인차 연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모습은 애써 보질 않고 스펙 쌓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대충 공부하고도 취업을 했던 그 시절처럼, 능력 있고 돈 많은 당신들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눈높이를 낮춘 그 곳에서도 신바람 나게 일하고 좋은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이상 하청업체를 쥐어 짜지 않으면 좋겠다. 그것이 당신들이 우리에게서 벌어간 돈으로 의당 해야 할 일이며 힘든 청춘들이 스펙에서 빠져 나오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대통령의 사진을 큼지막히 넣은 홍보자료를 만들며 공기업 NCS 능력중심채용을 추진하고 있다. 나름 좋은 생각이고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NCS라는 이름의 새로운 스펙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든다. 


또 한편으론 이런 의심도 든다. 지난 정부부터 공기업에 고졸사원 채용을 강요하면서 대졸사원보다 낮은 고졸사원용 연봉 테이블을 새로 만들게 했던 것처럼, 가진 자들이 늘 이야기하던 대로 쓸데없이 공부하지 않고 적은 월급에도 군소리 없이 일 잘하는 사람들이 필요해서는 아닐까라는 의심 말이다.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꿈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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