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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an 03. 2023

'의미'를 '부여'하다.





하늘에 큰 무지개가 떴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보는 무지개였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그 무지개를 보고 길가에 서서 소원을 빌었다.


우린 가끔 '의미 부여'를 한다.


아침에 설거지를 하다 손이 미끄러지며 접시를 깨게 되면,

기분이 갑자기 싸~해지며...

좋지 않은 기분에 쌓이게 된다.

그날 하루는 예민하게 뭔들 조심하게 됐다. 걷는 것 조차도...


얼마 전 길을 가다 어깨에 뭔가 떨어져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니 하얀 새똥이 떨어져 내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길을 가다 새 똥을 맞을 확률이 얼마나 있나?

그때, 기분이 좋아져야 할까?

기분이 나빠져야 할까?


우린 예전부터 응가 꿈을 꾸며 돈이 들어온다고 좋아했다. 비둘기 응가에다 하늘에서 정확히 내 어깨를 때린 응가를 대충 물티슈로 닦아내고 로또 복권을 산적이 있었다.


새해에 받는 우리는 어른들께 절을 하며 세뱃돈을 받는다.

돈이야 다 좋지만,

구겨짐 없는 새 돈을 받으면 그 기분은 배가 된다.

그 돈을 쓰면 뭔가 복이 나가는 거 같아 두고두고 지갑에 담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종교야 어떻든,

절에서는 염주를 한다. 목에 하는 것도 있지만, 팔에 차는 팔찌 염주가 있었다.

손목이 허전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면 빼서 하나하나 돌리기 간편해서 작은 염주팔찌를 손목에 차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사슬로 만들지 않는 이상 항상 나와 함께 했던 염주는 어느 순간 느슨해지고 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맘이 편치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해했던 적이 있었다.

끊어진 염주를 숫자를 세어가며 찾아 다시 고무줄로 엮어 찼던 나는,

여수 돌산 '향일암'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요즘에야 다니기 좋게 길을 만들어 놨지만, 25년 전에는 길이 그렇게 좋지 못할 때였고, 올라가는 길 한쪽에 기념품 판매하는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그곳을 올라갈 때, 손에 오래 차고 있던 팔찌가 마침 '뚝'하고 끊어져 버렸다.

이곳에 왔으니 기념으로 하나 사 갖고 갈 겸 그 가계를 들어가 팔찌를 이것저것을 보고 있을 때, 그곳을 지키는 보살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팔찌를 찾으세요?"

"네. 이곳에 올라오다 팔찌가 끊어져서..."


뭔가 민망해서 말을 흐리고 있을 때,


"그럼 소원이 이뤄지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고 있던 팔찌가 자연스럽게 끊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요. 항상 나와 함께했던 팔찌의 기운이 좋은 일로 끊어지니 소원이 이뤄지겠네요."


만년의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는 보살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뭔가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팔찌가 끊어지면 안 좋을 거라는 내 짐작과 다르게, 자연스럽게 끊어진 팔찌가 좋은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정 반대의 말씀에 내 행동은 다르게 변했다.

끊어진 팔찌는 행운의 의미가 됐고,

그런 기운을 더욱 불어넣기 위해 팔에 차는 염주를 돌리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안녕을 빌기도 했다.

그러다 끊어지면 미련스럽게 고무줄로 엮으려 하지 않고, 떨어진 염주를 박스에 잘 넣어두고 다시 새 염주를 샀다.


'의미부여'

어떻게 보면 마음가짐의 차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미신을 믿는 마음 갖기도 하다.


설거지하다 접시가 깨져서 하루를 조심하며 보냈다.

신호준수를 잘하고, 남과 다투려 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면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새 응가가 떨어졌다.

외출하는 길에 뜻하지 않는 옷에 묻은 오물로 인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운이 좋은 기운이라 여기며 복권한장을 구매했다.

꽝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을 기대하게 했다.


항상 차고 다니던 팔찌가 끊어져 묘한 기분인데,

그걸 행운으로 여기며 새 팔찌를 고르는 기분이 좋으면 되는 것이지.


기도란 다른 것이 없다.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1년을 잘 보내고, 10년을 잘~ 보내면 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기원하는 것이고,

깨진 접시로 조심하는 것이고,

새 응가로 기분이 좋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팔찌에 내 기원을 담아 기도하면 그것이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불가사의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달나라의 토끼는 아직도 방아를 찧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고,

외계인의 존재는 아직도 'nasa'의 비밀문서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며,

단 1분 1초 뒤의 일도 알지 못해 우리는 타로를 보고, 주간 운세를 보며, 별자리 운세를 펼쳐 들어 봅니다.


새해가 밝아

'토정비결'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불안한 삶에 조금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보물과 에피소드를 늘여가는 소소한 행복으로 사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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