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죽음에 약간 무덤덤하게 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큰 사고로 인해 인명피해를 뉴스에서 보게 되면 놀라고, 큰 이슈가 됐는데,
이제는 뉴스 자막에 '어제 하루 사망자'하며 숫자를 띄운다.
물론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건 안다.
하지만, 하루하루 2년이란 시간을 지나오면서 사망자수에 눈이 가면
놀라거나, 큰 이슈로 몰고 가지 않는다.
죽음에서 준비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세상의 만물은 태어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 시간의 공간이 때와 장소를 결정할 뿐...
사람도 마찬가지,
태어났으니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 공포를 잘 이해하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행동
"데스 클리닝"
스웨덴에선 자신의 유품을 50세부터 정리한다고 한다.
자신이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할 가족의 수고를 덜기 위해 조금씩 자신의 물건을 정리한다고 한다.
tv에서 한 여인이 자신의 물건을 정리한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며, 추억을 기억하며 행복에 젖기도 한다고 한다.
어떤 물건을 정리해야 좋은지 물어보니
"나이가 든 뒤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물건은 남겨두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세요."
그 말을 곱씹어 생각해 봤다.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물건...
우선 주위의 물건을 하나, 하나 바라봤다.
'저건 어디서, 언제 샀더라.'
기억력이 좋은 건지, 머리가 좋은 건지 대부분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10에 6~7은 필요에 의해서, 이뻐서 샀던 물건들이다.
'지금 이 물건이 없어진다면 서운할까?'를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정도...
필요 없는 물건을 쌓아두고서 짐 위에 살고 있던 건 아닐까...
고령화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는 직업이 있다.
'유품 정리사'
생전 예약을 해 놓거나, 죽은 뒤 남은 가족이 신청하면 2~3일 동안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한다고 한다.
2002년 일본에서 시작됐고, 한국에는 2011년 도입됐다고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독사가 많다 보니 가족이 정리하는걸 버거워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유품 정리사가 가서 고인의 물건을 정리한다.
죽는 것도 서러운데,
뒷정리까지 걱정하며 죽어야 하나...
스웨덴도, 일본도, 우리나라도 죽어 남은 가족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에
'데스 클리닝'이 생기고, '유품 정리사'라는 직업이 생기는 것같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깨끗하게 간다는....
유품 정리사에게 모든 걸 맡기기보다는 '데스 클리닝'으로 하나하나 내 추억과 시간을 생각하고 회상하며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다 이젠 남의 손을 빌려도 되겠다가 했을 때, 유품 정리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6년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픈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아버지의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했야 했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사무실도 정리해야 하다 보니, 일이 제법 많았다.
또 옷을 좋아하셨던 분이라 옷 박스만도 많이 나왔다.
처음엔 물건을 하나하나, 옷을 하나하나 접어 박스에 넣을 때는 아빠를 생각하느라 울다 넋 놓고 있었지만,
계속 나오는 옷에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던게 기억이 난다.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저자
법정스님은 2010년 입적하셨다.
작은 오두막에서 쓰러져 가는 나무 의자를 고쳐가며, 손수 아궁이 불 피우고, 해진 옷을 덧대가며 입으셨던 법정스님의 유품은 아주 간소했다.
사는데, 그것이면 족할까? 했지만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남기셨다.
조금 불편하면 됐지, 불편한게 싫어 또 사고, 또 사고...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산다.
죽어서 갖고 갈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는 건, 가족과, 내 이름...
그리고 사는 동안 내 행동에 대한 평가뿐...
'준비하는 죽음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내 살아온 세월의 추억을 생각하고 남기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