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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Nov 29. 2022

책임감에 대한 무게




우린 자라면서 부모님께, 선생님께, 친구들에게 책임 있게 행동을 해야 한다.


놀던 장난감을 정리하는 책임,

질서를 배우며 주어진 숙제에 대한 책임,

친구들과의 약속에 대한 책임.

부모님과 약속한 일에 대한 책임.

.

.

.

간단하게는 이렇다.


우린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작은 선택도 있지만, 삶을 뒤흔드는 큰 선택도 있다.

그 선택에 대해 하나하나 잘잘못을 따져 든다면 자신의 정신상태는 피폐해져 갈 것이다.

그만큼 선택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도, 깊게 생각할 수도 있는 순간이,

순간순간 다가온다.

마음 가짐을 하며 선택의 순간이 노크할 때를 기다리는 그런 선택은 없다.


멀리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파란불이다.

빨리 걸으면 닿을 수 있을 거 같았지만 막상 다다르니 몇 초가 남지 않은 상황에 우리는 선택을 한다.


'다음 신호에 천천히 가야겠다.'

'달리면 건널 수 있겠는데, 달릴까?'


건너는가..

기다리는가...


그건 작은 선택의 문제인 것 같지만, 아무 탈 없이 빨간불로 바뀌고 사고가 나지 않으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로 이어졌을 땐 큰 후회를 하며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잘 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

나에 관한 선택은 자신 스스로가 지면 되는 것이지만, 주위에, 가족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땐 압박으로 온다.



오래전 들은 얘기 중 이런 얘기가 있다.

어머니는 오랜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자식들은 누구도 나서서 생명에 대한 책임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숨에 대한 결정을 누구도 하지 못할 때, 딸은 자신이 나서서 사인을 하겠다며 앞으로 나왔다.

그때, 감겨있던 어머니의 눈이 떠지며, 어머니는 딸을 바라봤다.

딸은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평생 가슴속에 짐을 지고 살았다고 한다.



1년을 더 사신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그 시간이 생각이 났고,

딸은 그때 사인했더라면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빠졌다.

그만큼 책임감은 무겁고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


자식이 어릴 땐, 부모의 책임으로 산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부모님의 모든 걸 책임을 진다.

책임감의 무게는 혼자일수록 더욱 무겁다.

그리고 책임지는 자는 항상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니면 말고~'



"이런 말 너한테만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절대~ 하면 안된다."

입에서 나가는 순간 그 말에 대한 책임.


"걸어~ 걸어! 지면 내가 책임질게"

남을 끌어들이는 행동에 대한 책임.


그러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한다. 실없는 사람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뭘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나만 믿어.' 그러다 '아니면 말고~' '어쩔 수 없었잖아.'


연애에 관해서도 그렇다.

'나만 믿고 와~'

'당신만 믿고 살게'


일에 관해서도 그렇다.

'내가 그것에 대해 잘 알아. 나만 믿어.'

'그런 일은 일도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한다'는 말이 왜 나왔겠나.


말을 했으면 정말 죽을힘을 다해 책임을 져야 하고,

행동했으면 정말 죽을힘을 다해 책임을 져야 한다.


내 말 한마디에 누군 죽을 수도

내 행동 하나에 누군 피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임에 대한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태산처럼 무거울 수도 있다.

그만큼 내 말, 내 행동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 앉았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무게에 대해

무겁다.

버겁다.

그러다 이해해달라.

실수였다.


책임에 대한 무게는 나중을 보는 게 아니라, 지금을 보는 것이다.

지금으로 앞으로를 이끄는 것이다.










 


시리고, 차가운 겨울이 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겨울이겠고,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겨울이겠죠.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이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 찾아오길...

잔혹한 겨울을 보내는 이에게는 작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따뜻한 온기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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