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순한 용이 있었다.
하지만,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누군가 건드리면 물어뜯어 죽였다.
'역린지화(逆鱗之禍)'
-거꾸로 난 비닐의 화-라고 한다.
누구나 건드리면 안 되는 비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숨기고 싶고, 남이 알면 안 되는 일.
나만의 비밀로 남기고 싶은 일...
헌데 왜 사람들은 그 비밀을 지켜주지 못하고 캐내려고 할까?
자꾸 건드려 화를 내게 만드는 걸까?
그런 사람이 있다.
상대의 단점을 들춰내서 그 상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쁜 듯이 즐기는 이.
하지만,
절대 그 사람은 자신보다 더 잘나거나, 돈이 더 많거나, 힘이 좋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왜?
그 사람들을 건드리면 다치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자신보다 돈이 없다고, 자신보다 힘이 없는 사람들만을 골라 그렇게 괴롭히는 것이다.
참 못됐다.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려도 유분수지.'
사람은 잘나든, 못나든,
돈이 많든, 돈이 적든,
힘이 좋던, 힘이 좋지 않던
'성질'이란 것이 있다.
그 성질을 건드리면 끝까지 싸우길 각오해야 한다.
사람은 처음부터 잘나지도,
돈이 많지도,
힘이 좋지도 않게 태어난다.
점차 환경에 의해 잘나게 되기도, 돈이 많기도, 힘이 좋게도 되는 것이다.
같은 출발선상에 있던 사람들이란 얘기다.
그런데 잘나고 못나고를 따져서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괴롭히면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용도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면 물어뜯어 죽여 버리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순하고, 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서운 법.
집안의 식구들 중 여자, 즉 엄마와 언니는 쌍꺼풀이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지만, 난 성인이 되어서도 쌍꺼풀이 생기지 않았다.
"엄마도 20살이 되어서야 쌍꺼풀이 생겼어. 그때도 생기지 않으면 수술시켜 줄게."
난 20살이 되어 엄마 따라 안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여기 선생님이 쌍꺼풀 수술을 그렇게 잘하신단다."
"여긴 안과잖아?"
그 한마디와 함께 후다닥 날짜를 잡고 수술을 했다.
모양이나 크기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선생님 취향에 따라 눈이 갈라졌다.
오래전 은행에서 볼일이 있어 차례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뒤에서
"저기..."
"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쌍꺼풀 수술 하신 거죠? 너무 잘된 거 같아서요."
(아니 수술이 잘 된거 같다면 못 알아봐야 정상 아냐?)
"네? 아네..."
그러고 돌아서려는데 그 여자분의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수술 한지 한 달 됐어요?"
말문이 막히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직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15년 됐어요."
내 한마디에 '어버버'그녀는 말이 없었다. 난 자리를 피해 다른 쪽으로 가서 기다려야 했다.
용의 턱에 거꾸로 난 털.
내 쌍꺼풀.
둘 다 '역린지화'다.
쌍꺼풀 수술 한건 맞다. 그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에 톡 쏴줄까도 생각했다.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죠?"
"당신 나 알아?"
"예의 없네."
그저 바라만 봐도 되는걸, 왜 굳이 어깨를 툭툭 치며 쌍꺼풀의 행방을, 자신의 생각 따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하며 물어봐야 했을까...
그때의 일이 나에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왜? 남에게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님.
상처란 걸 알면서도 상처받으라고 하는 말일까?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덤빈다'는 얘기가 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상대가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면 당연히 죽자고 덤빌 수 있다.
아니 덤벼야 한다.
처음은 거창하게 용의 비닐을 얘기하며
'역린지화'를 꺼냈지만, 어디 용의 비닐과 내 쌍꺼풀을 비교하며 얘기할 수 있겠나.
비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키고 싶은 비밀은 누구나에게 있다. 한 가지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개가 될 수도 있다.
비밀이란 것은 지켜지길 바래서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절대 누구한테 얘기하면 안 된다."
그 순간부터 그 얘기는 비밀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돌던 얘기는 비밀이 아니라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의 일이라고, 남의 이야기라고 내가 함부로 떠들어 대면 안 되는 것이다.
'비밀이야기 해줄까?'
그 얘기에 호기심이 작동해 들어버리면 내 입이 가만히 있을까?
다물지 못할 거면 차라리 듣지 않는 게 낫다.
나 자신의 상처, 아픔만 보지 말고,
상대의 상처, 아픔도 봐야 한다.
내 한마디가 칼이 되고 방패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으로써 예(禮)를 지켜야 한다.
맹자-공경하는 마음이 예이다.
주자-예는 공경함과 겸손함을 본질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