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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Oct 26. 2020

사후세계

사후 49제 1편-


사후세계는

        

-갔다 돌아온 사람이 없는 미지의 세계

-인간의 상상, 추측으로 만들어진 세계

-종교의 영향이 큰 세계

-나도 언젠가는 가야 하는 세계


-태어난 인간은 늙지 않을 수 없고,

 늙은 인간은 죽지 않을 수 없고,

 죽은 인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적인 이치다. 

어느 누구도 갔다 돌아오지 못한 세계라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종교를 배제하고 다 비슷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후세계가 있느냐 없느냐는 아직도 설왕설래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우리에게 판타지를 준다.

사람이 죽어 어디를 가느냐.. 어떻게 되느냐…

믿는 종교에 따라가는 곳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죄를 지으면 댓가를 치른다는 거…

사후세계의 대표적인 세계관은 티벳에서 많이 유래되고 지금도 그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윤회의 반복이 되지 않기를 빈다. 

1500년 전 티벳에서 나온‘사자의 서’에도 환생을 얘기하는 대표적인 서적중의 하나고, 티벳인들의 믿음이고, 역사다. 


본인은 종교에 대해 절실하게 믿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 각자 맞는 종교가 있고 믿음이 존재하기에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내 종교가 맞고 상대 종교가 틀리다는 논리로 정쟁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뭔가를 이루고 싶고, 매달리고 싶을 때 

우리는 종교를 찾게 된다. 9남매 큰딸인 어머니의 종교는 불교.

다리가 아파 절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기도하고 싶을땐 집에서 염주를 돌리시며 자식에 대한 염원을 빌고비신다. 9형제 중에 어디 다 불교만 있겠나. 기독교도 있고, 천주교도 있게 마련.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마음 가는 곳에 가서 기도하면 된다고…

하느님을 믿는 동생에게

“몸이 아프면 교회 가다 말다 하지 말고 기도 많이 해라.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 하신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과, 절에서 108번, 1000번의 절을 하며 기도하는 것은 신념에 따라 각자 다르고,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찰이지만 주지스님의 인자함과 꼼꼼함으로 세월을 함께 보낸 절에 

20년이 다되어가도록 다니다 보니, 못 보는게 없고 들리지 않는게 없을 정도가 됐다. 

절은 49제를 지내주기도 한다. 

신도들의 가족이 찾아와 49제를 부탁하면 스님은 흔쾌히 허락함에 정성스레 49일 동안 영가의 평안과 극락왕생을 기도해 주신다. 그러다 보니 믿지 못한 일들도 생기게 마련…





그 대표적인 얘기3가지를 하려한다. 

그저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 중의 하나라 생각하고 불편 없었으면…

(전해 들은 얘기, 가족에 직접 들은 얘기를 썼습니다.)






제1편


일요일 아침

OO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배웅하려 장롱 면허증을 꺼내 운전대에 손을 얹고 차시동을 걸었다. 얼마 전부터 운전 연수를 다시 받았지만 그래도 떨리는 맘은 어쩔수 없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행동에 더 걱정이된 남편은

“전방주시. 좌, 우 확인”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이며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집에서 현장의 거리는 15분.

새로 난 도로는 넓고 주말 이른 아침이라 차가 많지 않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가 잡은 운전대에 어느새 몸이 앞으로 나와 운전대와 가슴이 맞닿을 정도가 됐다. 그 모습에 남편은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 놓친 신호나 차가 있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15분이 1시간이 되는 시간마냥 심장이 뛰고 땀이 송글송글 났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운전을 하지 않으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힘들어 시간을 쪼개고 쪼개 겨우 운전연수를 마쳤다. 


“조심히가. 집에 애들 깨기 전에 바로 가고, 도착하면 전화해…”

차에서 내린 남편은, 잔뜩 힘이 들어가 운전을 한 부인이 걱정스러웠지만 어려운 도로도 아니고, 자신 있어하는 아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 두딸을 재워놓고 여기까지 데려다준다고 떼쓰는 아내를 매몰차게 대하기 어려워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건 어쩔수없다. 젊어 몇년 운전을 한 아내말을 믿을 수밖에...조심히 잘 돌아가겠지... 

코너를 돌아 차가 사라질 때까지 남편은 그 차를 눈으로 쫓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봤다.

못 미더워 차가 사라진 그 자리에 1분여 서성이다 회사로 들어갔다.

.

.

.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잔잔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역번호와 함께 일반 전화번호가 찍혔고, 처음 보는 번호지만 이근처 지역번호였다. 광고성 전화번호인가? 

전화를 받아 듣기만 했다. 

“000 씨 보호 자세요?”

수화기 넘어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내 와이프의 이름을 대고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다. 


차사고…

근처 종합병원… 지금 응급실로 와달란 소리였다. 

다리가 떨리고, 지금 들리는 심장소리가 내 심장인지도 모른체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못했다.

코너를 돌아가던 아내의 차가 떠올랐다. 집까지 크게 어려운 도로는 없었는데... 차사고, 어디 많이 다치지는 않았겠지? 다리나 팔정도 깁스를 했나? 

회사 지인과 함께 병원을 찾았을때 남편은 그대로 쓰러졌다. 


겨우 숨만 붙어 있을뿐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있고,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었다. 

겨우 몇시간 전에 웃으며 헤어진 아내가 지금 저렇게 누워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산소호흡기에 숨을 의지하고 있을뿐... 살아도 사는게 아닌듯 보였다.

집에 혼자 있을 아이들 걱정에 어머니께 부탁하려 전화를 했다. 뭐라 설명을 드려야 할지…

전화기를 잡은 손이 떨려 자꾸 다른번호를 눌러 버렸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지도 몰라 심호흡을 몇번... 진정한 다음 다시 전화를 했다. 

놀라실까 가벼운 교통 사고라 설명을 하며 아이들께 가달라고 부탁하고,

병실밖 의자에 앉아 고개를 묻었다. 무서운 생각이 났지만 제발 살아만 달라고 신께 기도를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만 있어다오.

그리 혼자 보내 이사달이 난것처럼 자책하길 여러번…

응급실로 담당 과장님이 내려와 아내의 촬영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의 ‘괜찮다.걱정마라.’라는 말을 소원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의사선생님은 

“더 이상 가망이 없습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그래도 선생님! 살려주세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선생님께 살려달라 매달렸다.

마지막 한번 얼굴이라도 봤으면, 

제발 어떻게 돼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고...


그로부터 여러가지 기계가 병실안으로 들어갔고 심폐소생술의 시행...  한참 뒤.... 담당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

아이들은 1살과 6살이고, 아내 나이 고작 33살이었다.





꺼이꺼이 눈물이 났다. 이 믿기지않은 현실이 내것이라는게…

숨을 쉴수가 없었다. 

“저 어린아이들을 두고 어찌 그리 눈을 감을 수가 있어! 일어나! 다시 일어나라고!”

.

.

.

어머니는 발인을 끝내고 바로 절로 향해 며느리의 위폐를 모시고 집으로와 아들의 밥을 차려주며

“스님께 부탁하고 왔다. 아이 그렇게 보낼수 없잖니. 최선을 다해서 보내주자.”

식탁에 앉아서도 수저를 들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억지로 손사이로 수저를 밀어 넣었다.

“니 자식들 보고 입에 뭐라도 넣어라.”

돌도 안치른 막내 손녀를 없고 뒤돌아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다.

장례식 내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1제 (7일)

절에선 과일이며 밥과 국, 나물을 상에 차리고 우리를 기다렸고, 스님의 기도가 시작됐다. 

머릿속에는 불경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왜 내아내가 이렇게 죽어야 했는가…

저 어린 자식들은 어떻게 이세상에 엄마없이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였다.

일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기도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렇게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는것 밖에 아무것도 없다. 

땀인지, 눈물인지 앉아있던 방석이 서서히 젖어가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고 모두가 조심스럽다. 이렇게 49제로 가족을 보내는 마음이 어떤맘인줄 알기에 스님은 말을 많이 아낀다.


“스님, 우리 며느리 좋은 곳에 가겠죠? 그 불쌍한거... 아까운 인생 어쩔까요…”


기도 내내 울던 어머니는 스님 앞에서 또 한번 눈물을 흘리신다.

그 모습에 불효자식으로서 한숨이 나왔다. 

스님은 나즈막히 말씀을 하신다. 


“자신의 병을 알고 죽은 영가는 죽음을 준비하며 죽음을 인지하는데, 아이 엄마처럼 갑자기 죽은 영가는 지금 자신이 죽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로 영가를 천도시키려 불공을 하는 겁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됩니다." 

“오죽하면 사자없는 죽음이라고 하겠어요. 며느리나, 우리나 이런 갑작스런 일이 생긴다는게…”

아침부터 업고 다닌 1살된 손녀를 다독이며 또다시 눈물을 훔친다.



2제 (14일)

14일이 되었을땐 마음이 어느정도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려자의 죽음, 아내의 자리는 너무 컷고 남은 자들의 숙제는어렵고 힘들다. 

기도 시작부터 염주 하나하나를 밀어가며 몸을 움직였다. 절에 오지 않는 날도 열심히 기도했다. 제발 좋은 곳으로 가길… 불쌍한 내아내…

1제때는 친정 큰올케가 오더니 오늘은 오지 않았다. 조금 서운한 마음은 어쩔수 없다.


“스님 지금도 자신이 죽은 지 모르나요?”

“알죠. 이제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자신이 왜 죽었는가. 억울하기도 하고, 화를 내는 영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가는 사람보다 깨달음도 금방 하게 되니 불경을 많이 읽어줘야해요.”


1살된 딸을 업고 기도내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보니 지금의 내고통은 나만의 고통이 아님을 느낀다. 


“애들 집에 가서 손녀들 필요한거 조금 챙겨 온다고 갔는데,,,,”

어머니의 울음이 터졌다. 스님은 그런 어머니의 말을 조용히 기다려줬다.

“지가 그리 갈줄 모르고 먹는물 끓여놓고, 빨래해서 널어놓고... 그리 갔어요.”

스님은 어머니의 울음이 어떤 울음인지 아는듯 가만히 가만히 염주만 돌리시며 어머니의 울음이 잦아들때까지 가만히 계셨다.   

“며느리, 그 아가 불쌍해서 어째요. 그  짧은명 어째요. 스님”





3제 (21일)

20일이 넘어가면서  마음의 계획이 서지고 현실에 조금씩 인정하게 되는 시기이다. 그러기에 영가천도에 대한 간절함이 더해진다. 그러면서 같이 살아온 세월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 인간은 못해준 일만 생각이 난다. 조금만 더 잘해줄걸.. 조금만 참을걸...

기도가 끝나고 스님이 말씀하신다.


“처사님, 영가 친정집에 전화를 좀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왜요?”


놀라서 얘기한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애기들 못 키우네'라는 장모님의 말이 서운해 그뒤 연락안하다 얼마전 연락드렸더니 큰형님, 아내의 큰오빠가  

'어머니, 아버지 연세도 있으신데 전화하면 자꾸 동생 생각날까 걱정이니, 연락하지 말게.'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만 아이들까지 없는 사람취급에, 너무 서운해 전화번호를 지우려고 했다.  

근데 지금 처가댁에 전화해 보라니…


“처가댁에서 말을 조금 하는거 같습니다.”

“무슨 말이요?” 

“죽기 전에 형제들한테 돈을 좀 갖다 쓴모양인데 그 얘기를 모여서 하는걸 들은거 같습니다. 와서는 듣기 싫다고 얼마 안되는 돈이니 줘 버리라고 영가가 얘기하는데... 알아보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저는 모르는 얘기인데 알아보겠습니다.”


놀란 식구들은 반신반의 했다. 

그래도 대기업 건설회사 다니는데 그월급이 모자라서 왜 남편 모르게 친정에서 돈을 얻었는지... 그 돈이 어디 있는지...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4제 (28일)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스님께 물었다.


“스님 맞습니다. 제가 전화해 봤더니 오빠한테 돈을 어느정도 꿨더라고요. 근데 영가가 그얘기를 한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만 기도하는게 아니라 새벽마다 기도할때 영가를 불러서 천도를 시키려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와서는 친정식구들이 그돈 받아야 한다고 저마다 시끄럽게 얘기하니 줘 버렸으면 하더이다. 그래서 49일 안에는 영가에 대해선 좋은말만 해야 하는겁니다. 죽었다고 험담이나 나쁜말은 삼가하시는게 좋습니다. 영가는 다듣고 있습니다.”

“영가가 돌아다녀요?”

“심판도 받지만 자신이 이제껏 태어나고 다녔던 곳, 좋아했던 곳, 보고싶은 사람도 보고 그렇습니다. 아마 친정식구들 보고 싶어 갔는데 그 얘길 들은거 같습니다.”

웃으시며 말씀하시는데 소름이 끼쳤다. 

"스님, 영가랑 대화를 하세요?"

"기도를 하게 되면 영가의 영으로 보여지기도하고, 귀에서 들리기도 합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영혼의 세계란 정말 있는 것일까?




5제 (35일)

5번의 제를 지내면서 믿지 못할일도 경험하게되니 스님을 통해서 말못한 일이 뭐가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아니라 다를까 기도가 끝나고 스님이 1살배기 딸을 업고있는 어머니께 말씀했다.


“보살님 막내손녀 아프다고 며느리 찾아 부르며 아기낳게 해달라고 했지요?”

스님말씀에 놀란 토끼눈이 되어 어머니가 업고있던 딸을 가르키며

“어찌 아셨어요? 며칠 전얘가 머리에 열나고 밤새 울어서 그랬죠. ‘아가 아가 니새끼 살려다오. 니새끼 이렇게 아프니 니가 좀 낫게해다오’ 이렇게 빌었습니다..”

스님이 웃으시며 얘기하신다.


-스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머님이 저를 찾아 00 낳게 해달라고 하시는데 죽은 제가 뭘할수가 있겠어요. 


“라고 영가가 얘기합니다. 이제 자기 갈길이 바빠 심판도 받으며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런얘기 하지마십시오. 보살님 이제 영가는 좋은 곳으로 가야 하니깐 그것만 기도해주세요.”

스님은 평온하게 말씀하시는데,

언제 왔다갔는지 모를 며느리의 등장에 놀랄 수밖에...




6제 (42일)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빌고빈 시간, 6제가 끝나고 7제면 보내줘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고싶은 얘기도 많고, 듣고싶은 얘기도 있다. 


-스님 저는 하나님께 가야 하나요? 부처님께 가야 하나요?-


“원하는 곳 가고싶은 곳으로 가면 되는데 영가는 뭐가 걱정인가?”


-오빠는 천당 가라고 기도하고 남편은 부천님전에 가라고 기도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새벽기도에 영가가 와서 한얘기인데 친정 식구중에 어떤 오빠가 그렇게 기도하며 울면서 천국 가라고 기도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스님 말씀에 남편은

“처바로 위오빠가 그렇게 절실한 기독교신데 장례식때도 내내 앉아 울면서 기도 하는걸 봤습니다. 아마 그오빠인거 같습니다.”

이제 스님이 무슨 말을 하든 반신반의는 없었다. 그저 소름이 조금 돋을뿐…

이제껏 모든 일이 스님은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스님만이 전해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에 조용히, 기원하며 영가의 왕생극락 상품상생을 기원한다. 








7제 (49일)

마지막 제인만큼 절에서도 상이 크고 준비할게 많다. 

영가를 보내는 의식은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스님을 계속 말씀하신다. 

가족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작 죽음에 헤어짐을 경험하지만 영혼이라도 잡고싶은 가족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몇시간에 걸친 마지막제를 지내고서 스님이 말씀하신다.


“잘 보내 드렸습니다. 처사님(절에서는 여자를 보살, 남자를 처사라고 부른다.) 결혼 시절에 누구하나 죽어도 절대 재가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한적 있지요?”

“네... 결혼초에 둘이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그 얘길 합니까? 스님?”

“네. 아이들을 생각해서는 그러면 안되는데 다른 사람과 행복한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고... 그리고 보살님께 감사하다고 합니다.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했는데 아이들을 이리 잘돌봐 주시니 감사하다고 하고 갔습니다.”

“스님, 아내가 좋은 곳으로 잘갔으면.. 다시 환생할까요?”

“전생과 현생, 내생은 다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괴로움은 전생의 업이요. 현생의 죄는 내생의 괴로움으로 올 것입니다. 처사님께서 그리 1000배까지 하며 극락왕생을 빌지 않았습니까…” 

스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은 한결 마음이 편했다. 

좋은 곳으로 잘갔다는 말과 남겨진 아이들 때문에 눈도 못감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절을 나서는 그들의 얼굴엔 가족을 보낸 마음 아픈 심정과, 다시는 못볼 가족의 모습에 이렇게라도 정성을 다해 보냈다는 심정이 한켠에 남는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했다.”

-티벳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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