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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Oct 28. 2020

사후세계

사후 49제 2편





-본인은 종교에 대해 절실하게 믿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 각자맞는 종교가 있고 믿음이 존재하기에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내 종교가 맞고 상대 종교가 틀리다는 논리로 정쟁을 하지 않는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것과, 절에서 108번, 1000번의 절을 하며 기도하는것은 신념에 따라 각자다르고, 같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찰이지만 주지스님의 인자함과 꼼꼼함으로 세월을 함께 보낸 절에

20년이 다 되가도록 다니다보니 못보는게 없고 들리지 않는게 없을 정도가 됐다.

절은 49제를 지내주기도 한다.

신도들의 가족이 찾아와 49제를 부탁하면 스님은 흔쾌히 허락함에 정성스레 49일동안 영가의 평안과 극락왕생을 기도해 주신다. 그러다 보니 믿지못할 일들도 생기게 마련…

그 대표적인 얘기 3가지를 하려한다.

그저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중의 하나라 생각하고 불편없었으면…

(전해 들은 얘기, 가족에 직접 들은 얘기를 썼습니다.)













“스님 애 아빠가…”

신도의 전화에 스님은 병원으로 향했다.

지병을 앓고 있던 보살의 남편이 병원 병상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기계가 돌고 있으니 살아도 사는것일까... 보살님은 잘알고 있지만 남편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스님 오늘을 넘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인은 남편의 병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0년을 넘게 해로하며 자식을 얻어 가정을 꾸리고 모진 풍파를 겪어온 부부의 정은 어떨까?


온 시간이 다르듯이 가는 시간도 다름에 허망함을 느끼며 같이 산세월을 되뇌어본다.

스님은 조용히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숨이 끊어지는 그시간까지 고통이없길... 부디 관세음보살님의 가호로 그품에 안기기를…





기도가 끝나고 복도 의자에 앉아 남은 기도를 계속한다.

그러기를 1시간…

병실에선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스님은 일어서 환자를 향해 마지막 기도를 했다.

그렇게 발인을 끝내고 가족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절에 도착했다.









1제 (7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49제가 시작되면 가족은 긴장된 모습으로 절을 찾기 마련이다.

부모님을 보내는 마음에 자식들은 예를 갖추고, 온가족이 총출동한다.

70이 넘어 힘든 병으로 병원에 있기를 몇달,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고했던 영가는 영 자체에서도 신이나 있었다.

스님의 기도를 눈치껏 잘따라 하는 자식들과, 항상 다니던 보살님은 눈빛부터 좀 다르다.

자식 4명에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대 식구가 왔지만 그들의 눈은 뭔가 못미더워하기도 하고, 진짜 죽으면 영혼이 있을지 믿지않는 눈빛과 스님께 무슨 얘기라도 들을까 궁금해하는 눈빛…


“영가님이 흥이 아주 많으신 분이네요.”

스님이 가족을 향해 한 말씀하셨다.


남편을 얘기하는 스님말씀에

“네, 스님 맞아요. 아주 차를 타고가도 음악을 빵빵하게 틀고 그렇게 노는걸 좋아했어요. 아주 자기 치장은 대한민국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얼마나 멋쟁이였는데요”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핸드폰처럼 생긴건데 음악이 많이 나오고 하는거 그걸 다음번에 좀 갖다 주시죠.”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핸드폰은 2g 폴더폰. 음악도 나오지 않고 할줄도 몰랐다. 전화오는 거와 받는거 딱두 개만 할줄아는 사람이라 핸드폰에 음악을 튼다는것도 알지 못할텐데...

뭘 말씀하는지 몰라 서로 ‘뭐야? 뭐지?’ 하고 있을때 작은아들네 손자가 얘기했다.

“할머니 그거 아니에요? 할아버지 라디오. 노래 나오는 라디오요.”

아이의 얘기에 다들 얼굴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디오?”

스님이 물었다.

“네, 할아버지 밭에 가실 때마다 갖고 가시는 라디오 있어요.”

“맞아. 그게 얼핏 보면 핸드폰처럼 생겼지…”

며느리가 말했다.

지금은 흔했지만 그 49제를 할때는 노래 1000곡 나오는 라디오가 흔치 않을 때여서 스님은 그 모양을 핸드폰으로 생각하셨다.

"스님 이사람이 그걸 갖다 달래요? 딸애가 하나사다 줬는데 그걸 너무 좋아했어요. 남들 있건없건 산에 갈때도 밭에 갈때도 그걸틀고 다녔어요"

"네, 아마 그걸 얘기하는걸 겁니다. 다음 오실때 가져다주시겠습니까?"








2제 (14일)

첫1제와 달리 2제부터는 가족은 다 오지 못하고 시간이 되는 가족만이 방문한다.

각자 제일을 해야 하기에 오는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한주 걸러 오기도 하고, 첫제와 마지막제만 오는 가족도 있다. 그런것에 영가는 개의치 않는다.

남은 49안에 심판도 받아야 하고 이 생의 모든 것을 다보고 가야 하기에 바쁘다.


“영감님이 음악크게 트는것도 좋아하시고, 노래 하시는것도 좋아하시네요. 죽었어도 그런거 개의치 않고 막 돌아다니시네요."

“갈때 아프지않고 가는것도 복이라는데 병원서 그렇게 누워있다 갔으니 얼마나 한이 있겠어요.”

"원래 성정이 화끈하세요?"

"맞아요! 성질도 얼마나 불같은데요. 자기 성질에 안맞으면 눈에 보이는거 없이 행동하죠. 어찌 그세월을 살아나 몰라요."

“그래서 할아버지 옷을 그렇게 찢으셨어요?”

스님의 말에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는 듯했다.

“영가가 그리 말씀하시네요.” 

스님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마누라 성질이 어찌나 불같은지 세상에 내 옷을 다 찢어서 마당에다 버렸지 뭐예요.


한참을 웃었다.

“스님께 그말을 해요?”

“네... 그러시네요.”

스님도 웃었다.

“아니 예전에 낚시갔는데 연락 한통화 없어 얼마나 화가 나요. 그래서 와이셔츠니 잠바니해서 다찢어 마당에다 던졌는데 그걸 얘기하니 정말 신기하네요.”

"영가님이 다른 영가님보다 이해가 빠르세요."

"아이고, 아이고, 스님 정말 잘도 아시네요. 저 사람이 머리가 어찌나 좋은지 형편이 좋아 공부좀 했으면 변호사 됐을 거라고, 말을 어찌나 청산유수로 하는지 말도 그리 잘했으니 여자들 만나고 다녔죠."

말끝에 화가 났다. 그때 그속을 썩고 살았던 세월에 어깃장이 무너졌다.

그래서 더욱 이렇게 스님께 49제를 하는 것이다.

살아생전 가족은 나 몰라라 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면서 외도를 그렇게 하고, 병원서 몇 달을 누워있으면서 죽어서 원망이라도 있으면 어쩌겠나. 자식이 저리 있는데 좋은 곳은 아니더라도 한이라도없이 가게...




3제 (21일)

“도대체 왜 그렇게 이혼한다고 얘기하세요. 아빠가 속상해 하시잖습니까!.”

절로 들어서는데 스님이 딸아이를 보고 무섭게 얘기한다.

"네?"

둘째 딸은 공양이라도 올리려 힘겹게 들고있던 쌀을 잠시 내려놓고 스님을 바라봤다.

“아빠는 사위가 너무 좋은데 딸이 맨날 이혼 얘기한다고 딸한테 뭐라 하시잖습니까.”

그 얘기에 딸은 눈물을 흘렸다.

“스님! 정말 애 아빠가와서 그래요? 그렇잖아도 지신랑이랑 아빠49제 끝나면 이혼하고 싶다고… 좀 싸웠나 보더라고요.”

“죽으면 영혼이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49제 안에는 다돌아다녀요. 딸이 보고싶어 가셨는데 이혼 얘기에 영가가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딸좀 말려달라고 하십니다. 영혼이 어떻게 미련 버리고 저승으로 가겠습니까...”







딸은 그날 눈물로 참회의 기도를했다. 살아계실땐 엄마 속상하게하지 말라며 싸우고, 누워계실땐 가정 버리고 그렇게 돌아다니시다 저리 되신거같아 밉기도 했지만 부모와 자식의 연이라는게 그리 모질겠나. 

돌아가시기까지 엄마와 번갈아 가며 간병을 했는데 자신으로 인해 아빠가 이승에 미련을 두실까 마음이 아팠다.  

돌아가셔도 걱정하신다는 말에 자식된 도리가 어찌이리 무정할까...


딸로서 살갑게 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으니 살아생전엔 그 생각을 못하다가 돌아가시니 고마운것도 많고, 못해 드린것도 많다.

나 태어나는 날 하루하루 세어가며 10달 채워 힘겹게 낳아, 이 험한 세상에 키워주신 그공을 어디에다 비할까... 부모님 돌아가는 날 몰라 내일의 시간이 있을거란 생각에 효도는 뒤로 뒤로 밀다 이렇게 가시는 부모님 허망하기 그지없다. 아버지...




4제 (28일)

정 없다. 정 없다. 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그 세월이 온전히 미운정만 있었겠나.

그렇게 그와 반백년을 같이 살아온 세월에 이별이 고작 한달이다.

발자국 소리만 나도, 문 소리만 나도, 그인가? 돌아보게되는 그의 흔적이다.

병원에 있을때는 가족 힘들게 하지말고, 편히 가야지... 했건만 막상 그를 보낸 자리가 이리도 넓고, 아픈지 몰랐다.  


“영가님이 말심이 너무 좋으신 분이세요.”

“네 맞아요.”

스님말에 맞장구를 치듯이 손뼉을 쳤다.

“얼마나 말심이 좋고 웃긴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네, 돌아가시면 빨리 깨달아 저승으로갈 준비를 하시는데 할아버지 영가님은 그 깨달음이 좀 빠르세요. 내가 왜 죽어! 하면서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영가도 많은데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잘알고 계시네요.”

스님의 말씀이 칭찬으로 들렸다.

“다음에 오실때는 무슨 젓인지 모르겠는데 자주 드시는 젓이 있다고 하세요. 부인이 거기에 고추썰어 무쳐주면 그렇게 맛있다고 자랑자랑을 하십니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 맞아요. 그 양반이 황석어젓에 풋고추를 썰어주면 그걸로 밥 몇공기를 먹었어요.”

“네 그건가 보네요. 보살님이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고 그렇게 칭찬을 하세요.”

스님말에 기분 좋아진 엄마보살은

“근데 스님, 절에 젓갈을 갖고와도 될까요? 냄새 날텐데요.”

“영가전에 기도할때 잠깐 놓아두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5제 (35일)

'죽어서도 어찌 그 젓갈 생각이 나...'

절에 가기전 아침에 황석어젓을 무칠 때 눈물이났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도 병원밥 맛없다며 걸어 근처 시장에서 젓을사다 먹었던 사람이다. 살아서는 그렇게 미운 짓거리 많이 하고 다니더니 이제 죽어서는 마누라가 무친 젓갈이 맛나다고 스님께 칭찬까지할 정도로 먹고 싶었나 했다.  

평소 좋아하는 젓에 풋고추를 썰어 무치고, 수육도 준비했다. 수육에 소주한잔 그리도 맛나게 드시던 양반이었다. 전날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아침에 시작한 음식에 김이 모락모락 났다. 

맛나게 자셨음.


부처님 기도를 하고 영가 사진에 기도할 때 잠깐 젓갈을 올려둔다.

"고작 마누라 두고가는 사람이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죽어서도 일을 시키는군요."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역시 이 맛은 당신 따라올 사람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6제 (42일)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절에 나와 ‘극락왕생’을 빌고, 현생의 인연이 마지막을 빌며, 그저 좋은 곳으로 편안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에 정성껏 빌었다.


초여름이라 그런지 법당안은 더웠고, 혹시 몰라 기도 시작할때 선풍기를 틀지 않았다면 땀이 많이 났을 것이다.

기도에 집중하고 있을때, 갑자기 딸이 뒤를 돌아다본다.

“왜?”

“아니 누가 내등을 ‘휙’하고 친거 같아서.”

“무슨... 누가? 법당에 우리밖에 없는데, 선풍기 바람 아냐?”

엄마는 딸의 말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정좌를 하고 다시 기도에 들어갔다.

그때 엄마의 등을 누가 쓱~하고 치는 느낌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는데…

“왜?”

갑작스러운 엄마의 행동에 딸이 묻는다.

“나도 지금 누가 등을 친거 같아서.”

내말에 딸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치 엄마. 바람이 아니고, 누가 내등을 획~하고 스치듯, 스치는 느낌"

"맞아."


기도가 끝나고,

“스님, 아까 기도하는데 딸등을 누가 ‘쏵’하고 친거 같다고해서 선풍기 바람인줄 알았는데요, 바로 내등도 누가 ‘쏵’하고 친거같은 느낌이 확 느껴지는거예요. 근데 그게 살짝이 아니라 크게 확!친거 같다고 할까요?”

웃으시는 스님은

“영가님이와서 기도하는게 고맙다고 쓰다듬고 가셨나 봅니다.”

“만지면 그런 느낌이 오나요?”

“영가는 형체가없어 산 사람에게 자신을 보일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더운데 보살님들이 기도하는게 고마워서 살짝 만진다는게 그렇게 보일수 있을겁니다. 영가는 바람과 같고, 공기와 같습니다.”

"뭐라고 설명할수 없는 느낌이였는데..."


“엄마 아까 등치고 간거 진짜 아빠일까? 느낌에 바람이 아니라 진짜 누가 치구간거 같다니깐.”

“맞아 나도 그랬다. 니 애비가 왔다갔나?”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느낌에 엄마와 딸은 이게뭘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7제 (49일)

온 식구가 총출동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의 시간.

스님은 아침부터 더 분주하시게 움직였다.


“영가님이 생전 식혜를 좋아하셨나 봅니다.”

“네! 명절이면 꼭 식혜를 해야 한다고 할정도로... 스님 왜요?” 

혹시나하는 생각에 스님께 물었다.

“식혜를 찾으셔서 다른 보살님들이 새벽부터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전화하시죠. 그럼 제가 해올텐데… 수고스러워서 어떡하죠?”

“아닙니다. 다른 영가들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제를 순서대로 진행할때까지 식구들은 모두 경건하게 기도를했다.

남편을, 아버지를, 아버님을, 할아버지를 보내는 각자의 마음에서 영가는 어떤 존재로 이생에 왔다가는지... 다음생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나게 될까? 아니면 이번생이 마지막 만남이었을까? 짧다면 짧은생을 살아가면서 온갖 죄를 저지르지만,

죽음에 이르러 죄를 짓지않게 된다면 그것또한 다른 삶이라 할수 있을까?


부부의 인연에, 쓰고달고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50년을 매일 얼굴을 보며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미워하는게 부부 아니겠나

이리 보내는 마음, 심장 한쪽이 쪼개지는 아픔이지만 이제는 놓아줘야지…


여보 잘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이세상에 태어났을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했다.”

-티벳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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