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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Oct 19. 2020

상처




아이가 첫걸음마를 시작하고,

아장아장 불안한 걸음으로 걷다가 넘어지고 무릎에 상처를 내며 커다란 울음을 낸다.


그때 부르는 이름은

“엄마! 엄마!”


우린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고, 그렇게 시키지 않았는데, 

우린 놀라거나, 

무섭거나, 

슬플 때

“엄마”를 찾는다.


그럼 우리가 찾는 엄마는 놀라거나 무섭거나 슬플 때 누굴 찾으며 울까?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는가?

우린 상처를 받을 때 위로를 해 줄 사람이 엄마라는 걸 안다.

그래서 엄마를 찾는다.

하지만 엄마는 치료를 해줘야 하는 사람인지라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다.

엄마가 힘들다고 목놓아 “엄마!”하고 큰소리로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우린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만들며 찾지만,

엄마는 우리가 커가면서 자신의 엄마를 잃어가고 있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자리는 시작되고

그 시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 것이다.




상처는 치유가 돼야 그게 상처인 줄 안다.



종이에 살짝 스치는 상처도 몇 시간은 아리고 쓰리다.

상처가 되는 건 아프다...

자식은 커오면서 부모님의 많은 잔소리를  밥 먹듯이 듣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잔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잔소리는 간섭이 되어 버린다.


그 간섭을 받는 자식은 나이가 들며 되려 부모님께 잔소리를 한다.

자리가 바뀐 것처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차 조심해라.

다치니 조심해라….


다른 맥락이지만 듣는이에, 말하는이에  다르게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말들을 내가 부모님께 하고 있다.

부모님께 상처되는 말..


어릴 적 우린 부모님한테 상처되는 말을 들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거나 혼자 방에서 화를 삭이거나 말대꾸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소견으로 한 행동에 나무라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린 부모님께 잔소리를 한다.

넓은 아량은 우리의 잔소리를 묵묵하게 견디신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자식이라는 말...


나이가 먹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다리가 힘이 없어,

예전 같지 않은 몸이 한 행동들을 우린 이해하는 걸까?

내가 내뱉는 말들 중

수많은 단어가 나올 것이고 많은 행동이 있을 것이다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자꾸 넘어진다. 다리에 힘이 없어, 걷는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서…

우린 아이의 걸음을 연습시키고, 기다리고, 안아준다.


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부모님의 말을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안아준다면...


내게 엄마의 자리가 되어주기 위해 자신의 엄마를 버리고 내게 온 엄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모든 시간들이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만든 것이라는 걸... 우린 언제쯤 깨닫게 될까?










부모님은 나이가 드시는 만큼, 그 세월의 시간만큼 상처 받는 부위도 크다.

나는 그런 분에게 상처를 줄 건지

담아온 상처를 치료할 건지 돌아봐야 할것이다.


상처는 치유가 돼야 그게 상처인 줄 안다.

상처의 자리가 있어 상처라는 걸 깨닫는다.










나를 고스란히 내어주는 그런 사람. 엄마입니다.

늙어가 필요 없다 생각하는 몸에 그동안의 수많은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

이 험한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나아가 울타리가 되어야 할 나를 위해 걸어오신 그 길에

무한의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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