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미소는 세상의 모든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엄마는 평소에도 웃음이 많지는 않다.
작은 일에도 깔깔거리며 웃는 십대소녀가 아니더라도 잔잔한 웃음이 전부였던 분이시다.
내가 소리내어 웃으면 '실없다. 그렇게 웃으면 실없는 사람이다.'라던 엄마는 다른 웃음코드에 숨넘어가게 웃으신다.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시고 웃음도 잃어버리신 듯 잘웃지 않으셨다.
스치는 웃음에도 남들 손가락질 받는다며 조심하시는 엄마가 어쩔 땐 답답할 때도 있었다.
인간생을 누가 알수나 있었겠나.
어쩔수없는 일인데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을 혼자 이겨내시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혼자 소파에 앉아 낮게 그리고 오래 웃으시는 모습을 보게됐다. 뭘 보시기에 저렇게 웃지? 궁금해 다가가니 엄마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져 있었다.
유튜브 방송을 보시며 눈물까지 찔끔 흘리시며 계속 웃고 계셨다.
적적하실까 바꿔드린 핸드폰.
처음엔 할줄 모르신다며 몇번의 거절 끝에 스마트폰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엄마는 기기를 3번이나 교체할 정도로 프로급은 아니지만 사진찍기, 인터넷 보기, 카카 00, 틱 0 보기 등...
주무시기 전까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틀어놓고 주무시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느낀게 많다.
나이 드신 모습에 점점 마음이 아려 오면서도, 웃음코드가 맞지 않아 엇박자를 내기도 하지만,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고 해도, 피곤하다, 아프다고 손사례를 치며 손바닥 안의 세계를 자식보다 더 들여다보신다.
핸드폰은 뭐든지 척척 해주는 친구였나 보다.
'나는 웃긴데, 너는 왜 웃질않냐'며 서로 얘기할 필요도 없다.
듣고 싶은 음악을 기다리지 않아도, tv 채널을 어디에 맞게 틀어놔야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맞춤 친구가 있는것이다.
아무리 자식이 잘한다 해도 365일 24시간 수발만 드는것도 아니고 같이 있어주는것도 아닌데, 엄마는
핸드폰으로 보고 싶을때, 듣고 싶을때 찾아볼 수 있어 적적함을 달래주신다 하신다.
요즘은 틱0을 보시며 '드럼신동' 영상을 보시다 내게 메신저로 영상을 보내신다.
"좀 봐봐. 너무 이쁘다." 하신다.
아침마다 오는 동생들의 안부 단체톡도 그냥 넘기질 않으신다.
"나도 이런 걸 보내고 싶은데 어디서 찾아 보내냐."며 배움의 열정을 태우신다.
예전 같음 3번이면 배우시는분이 5번 알려드려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도 느끼시는지 묻지 않은 말을 하신다.
"너도 내나이 되봐라."
엄마 집에 있으면 어떨 땐 나보다 엄마 카톡이 더 많이 올때도있다. 그 소리에 핸드폰을 열기전 미소가 번지신다.
가끔 광고를 잘못 클릭해 친구추가가 되면
"앤 누군데 자꾸 카톡을 보내니. 난 친구 한적 없는데..."
하실 때도있다.
핸드폰이 아무리 좋다한들 보는 자식이 좋고, 손주의 재롱이 좋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껏 가족 위해 참고 살았던 생에 하고싶은것, 보고싶은것 맘껏 하고 계신 엄마를 보니 나또한 기쁘다.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릴 때 손가락 잘못 누르면 화면이 바뀌는게 겁나서 싫다 하신 엄마.
예전 돌아가신 할머니 핸드폰해 드린다 했을때, 90살이 다되신 할머니가 그핸드폰이 뭐 필요하겠냐 하시는 엄마, 할머니께 뜻을 물어보자며 전화했을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네 개나 소나 목에 하나씩 다 차고 다니더라. 그 핸드폰"
개나 소나 다 차고 다니는 핸드폰 나만없다 하신 말씀을 애둘러하실 때, 아차 싶었다. 나이가 드셨다고, 귀찮아하실지도 모른다고... 유쾌하게 말씀하신 할머니께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벨소리로 만들어 시원하게 동네회관으로 택배 보내,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게끔 했던 일화가 있다.
엄마의 '괜찮다. 필요 없다.'의 말씀은
'그 일로 인해서 너 피곤하게 하면 어쩌니. 나는 괜찮다.'였다.
자식의 수고스러움이 부담 된 엄마의 거절이었다.
엄마의 웃음은 동백꽃과 닮았다.
환하게 웃지는 않으시지만 그 미소만이 모든걸 알고 있고,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것만 같다.
모든걸 포용하고 감내하는 우리내 엄마들의 미소와 같다.
엄마,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겐 엄마가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