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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Feb 27. 2021

언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언니.




언니와는 5살 차이가 난다.


한살이 되었을때, 생각나지 않는 얘기를 엄마는 하신다. 


"언니가 동생 생겼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줄 아니? 누가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니가 대, 소변을 보면 지가 한다고..." 

5살 터울이지만 그만큼 나이차이 나는 동생을 이뻐했다고 하신다. 

언니의 사랑은 커서도 계속됐다.

물건 하나를 사도 내것도 같이 샀다. 


"이봐. 이쁘지? 니것도 샀어."


항상 그렇게 동생과 나눔을 했던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하고서 일본에 살고 있다.

영상통화가 싶지 않았던 시절은 국제 전화로 간간히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다 영상통화가 쉬워지면서 같은 국내서 통화하는 것처럼 자주 연락을 한다.


언니는 엄마와 같았다. 


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했고, 내 아픔을 같이 아파했으며, 나를 지켜 주기도 했다.

눈물도 많아 남이울면 같이울던 언니다. 

겉으론 센척하고 강한척 해도 '엄마, 아빠'란 단어에 눈물부터 흘린다.

별 얘기하지 않아도 영상에 보이는 언니는 벌써부터 코가 빨개지고 연신 눈물을 훔친다. 


"떨어져 살아 그래" 


변명을 해도 언니 맘을 잘 알고 있다.


1남 2녀.

오빠 밑으로 언니가 있다.

얼릴적부터 오빠와의 차별을 느끼며 컸던 언니는 반발심도 있었다. 

엄마는 세상이 오빠 위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빠만 바라보고 사셨던 분이다.

그런 차별에 언니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가끔 푸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엄마의 몇 마디에 눈물을 보이고 만다. 

언니는 중간에서 위로는 오빠에 치이고, 아래로는 동생에게 치이며 그렇게 컸을 것을 알고 있다. 


"니 오빠한테 양보해라."


"동생인데 니가 이해해라."


아마 가슴 한쪽이 허전했을 것이다. 


"그럼 나는!!"이라고...


그렇게 컸던 언니는 지금 20년이 넘도록 형부랑 일본에서 살고 있다. 

후쿠시마 쓰나미가 몰려왔을 때, tv를 보고 살고 있는 곳이 그쪽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온 나라가 지진으로 흔들렸다 하니 걱정이 되는건 어쩔수 없다. 

국제전화를 해도 전화가 되지않고, 온식구가 걱정하고 있을 때, 영상이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통화가 됐다. 

무사한 얼굴을 보고서야 안심할수 있었다.


"여기 너무 무서워. 니 형부랑 밤새 무서워서 혼났어."


여진은 계속되고 한번씩 흔들릴때마다 심장이 떨렸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도, 차로 갈수 있는 곳이라면...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해도 형부 일 때문에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잠깐의 해외생활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20년이 되어가니, 


"거기서 아주 살 생각이야?"

"한국 가야지. 한국 가고싶어."


이 말이면 족하다. 언니가 얼마나 한국을 오고 싶어 하는지...


직장생활로 힘들어 퇴근하면 집으로 소주 한병씩 사와 부모님 걱정할까, 불을 끄고 조용히 먹고 침대 밑에 술병을 숨겨 놓았던 적이 있었다. 

가끔 내 방을 정리해 주던 언니는 침대 밑에 몇병의 병을 발견하고는 저녁에 퇴근하는 내게 


"야. 니 엄마한테 걸리면 죽어." 

그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 부모님 잠드시길 기다렸다 엄마가 담근 돼지감자 술을 국자에 퍼서 밤새 마셨다. 

'왜, 무슨 일이냐'라고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음악을 조용히 틀고 한국자, 한국자 흘릴까 조용히 언니와 밤새 그 한병을 다 마셨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사이가 좋지 않다. 

일본 우익들의 시위를 보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럴때 통화하면 통화 너머에 확성기 소리도 가끔 난다. 


"한국 사람인거 티내지마." 

이렇게 밖에 얘기 할수없다. 


그리고 지금은 대지진의 전조라고 흔들어대는 땅이 무섭다.


바다 건너 바라볼수 밖에 없는 언니의 현실이 무섭다.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언니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가끔 댓글에 일본을 비방하는 말들이 나온다. 

같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안되지' 한다. 언니가 살고 있는 곳이 일본이기에...

생활의 전선이 그곳이기에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심정이 가슴 아프다. 

그저 하루하루 무사하길 기도할수밖에...


누군가는 그랬다. 

'내가 자식을 낳아 잘 살수 있을까?'해 자식 낳는걸 미뤘다고. 

하지만 자식이 태어나 커가는걸 보니 부모가 죽으면 저 아이는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에 하나를 더 낳을 생각이라고...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만으로 무섭다. 

하지만 '물 보다 진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있다. 

시기도 하고, 싸움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귀한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한 존재이다.  


오늘은 언니가 무척이나 보고싶다. 

내 나라에서 언니와 함께 살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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