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성종의 다른 후궁들을 질투했다.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1476년 공혜왕후가 죽은뒤 중전으로 봉해진다.
그해 연산군 융을 낳고 승승장구를 달리던 윤씨는 성종의 후궁들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질투는 도를 넘어 모함까지 했고, 독살하려 비상까지 궁으로 들여온 것을 안 인수대비는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며 싸운 윤씨를 1479년 폐위시킨다.
그리고 1482년 사약을 내려 사사시킨다.
궁 생활 9년.
연산군 나이 7세였다.
숙빈 윤씨는 대왕대비 정희왕후와 왕대비 인수대비의 이쁨을 받아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가 된다.
성종보다 10살정도 위인 윤씨의 뱃속엔 아들 연산군이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윤씨는 왕비가 되고서부터 온갖 나쁜짓을 한다.
숙빈으로 있을때는 하지 않던 일들을 왕비에 오른 후 그 3년동안 악행을 한다.
점점 두고 볼수 없던 인수대비는 그런 윤씨가 못마땅했을 것이고, 다른 후궁들의 모함이 한 몫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들의 얼굴, 용안에 손을 댔다는 것은 아마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세자의 모후인 윤씨를 폐비 시키는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궁에 들어와 3년만에 왕비가 되고 3년만에 폐위가 됐다. 그리고 또 3년만에 사사됐다.
구중궁궐이란 얘기가 있다.
아홉번을 쌓고 쌓아 그 안에 자리한 궁궐...
그곳에서 왕에게 자신을 어필하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은 다툼을하고 쫓겨나기를 반복했겠나.
조선 시대의 질투는 칠거지악 중 하나다.
가벼운 질투는 웃고 넘길수 있다.
'저 사람이 나를 많이 사랑해서 그렇구나.'
하지만, 질투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집착에 가까운 스토커 기질이 나오기 시작하면 상대는 질려버린다는 말을 쓴다.
그럼 질투는 증오가 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만큼 널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폐비 윤씨는 궁에 들어와 연상의 여인으로써 불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후궁들이 젊고 이쁜데 자신은 아들 하나 낳고서 왕이 찾질 않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나. 우리가 조선사를 보면 왕이 이뻐하는 후궁은 왕비의 자리까지 노리기 마련이고, 왕비를 아래로 보는 경우도 있다. 저 유명한 '장희빈'처럼...
역사에 러브스토리를 붙이면 상상의 나래를 펼수밖에 없는데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사랑은 지금까지도 몇번의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해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린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했지만, 윤씨는 졌고, 아들을 남기고 그렇게 죽었다.
장희빈이라고 다를까. 왕비까지 올라갔다 아들을 남기고 죽는다.
그 여인들은 정말 왕을 사랑해서 그런 악행을 저질렀을까? 아님 왕비의 자리를 지키고 세자의 모후로 남기위해 그런 독한 짓을 했을까?
사랑에 독을 타면 그 독이 타다 증오만이 남는다.
너무 많은 사랑과 그만큼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왕의 사랑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왕의 사랑을 얻으니 이제 왕비의 자리가 탐이 나는 것이다.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자신이 왕비가 되는게 당연하다고, 거기에 아들까지 낳으니 세상 누굴 부러워하겠나.
왕비가 되니 왕의 사랑이 전같지 않고, 자신이 그렇게 차지한 왕비의 자리를 자신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결국 왕의 사랑이 아니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악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사랑이 증오를 데리고 왔다.
그 증오의 끝은 죽음이였다.
지금이야 생각도 못하겠지만, 조선시대 아닌가.
아들을 두고서 아들이 왕이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또 그녀의 자식들은 어떤가. 어머니의 죽음에 분노한 조선 제10대왕 연산군은 희대의 폭군이 되고, 제20대왕 경종은 재위 4년만에 자식도 없이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죽음을 맞는다.
영원한 자리는 없다.
그저 그 자리에 내가 잠깐 있을 뿐이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잠깐 왔다 가는 인생이다.
그 인생의 스토리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야 대통령도 있고 큰 기업 회장도 있을 것이고 유명한 연예인도 있다.
그들의 인생 스토리는 지금껏 회자되지만, 내 스토리는 나를 기억하는 가족 정도 일것이다.
인생사 많으면 100년이다.
그 100년의 삶 동안 해야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폐비윤씨처럼 모든걸 다 가진것처럼 행동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장희빈처럼 숙종의 사랑은 영원할것이라 믿지만, 영원한 사랑은 없다.
질투에 눈이멀어 하지 말아야할 일을 저지르고서 사랑이 떠나니 증오만 남아 원망을 해서 무엇하겠나.
자리란 누구나 앉을수 있다.
버스, 전철의 의자는 수 많은 사람이 들고 난다.
하지만 높은 자리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한번 내게 온 자리를 잘 닦고 조심스러워하고, 다음 사람에게 잘 물려줘야 한다.
빼앗기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 자리와는 더 멀어지게 되어 있다.
질투는 잠깐의 생각으로 멈춰야 한다.
질투가 쌓이면 나중엔 증오로 변할수밖에 없다.
상대의 질투를 즐기는 이와는 거리를 둬 만남을 피해야 한다.
그건 상대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즐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가족만이 아는 인생 스토리라 해도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웃으며 나를 회상하고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 인생 족히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