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간을 보낸 만큼,
감정을 주고받은 만큼,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은 생긴다.
많던 적든 간에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보고 싶으면 그립다.
그 그리움의 해소는 만남이 될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한다.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으로 향한다.
보고 싶은 마음, 같이 있고 싶은 생각...
그리움으로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이다.
'지귀 설화'는
어느날 지귀라는 청년이 우연히 선덕여왕을 보게 되고서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밥도 먹지 않고 상사병으로 여왕을 그리워했다.
여왕이 '영묘사'로 기도를 온다는 정보를 들은 지귀는 탑에서 여왕을 기다렸다.
여왕을 볼수 있다는 생각에 지귀는 얼마나 기쁘고, 들떠 있었겠는가...
그런 그가 기다리다 잠이 들어 버렸다.
지귀가 자신을 사랑한 상사병에 걸린걸 안 여왕은 자는 지귀에게 자신의 팔찌를 살며시 놓고 영묘사를 떠난다. 잠에선 깬 지귀는 여왕의 팔찌를 보고 여왕을 보지 못해 한탄스러워 자신의 가슴을 친다.
잠이든 자신에게 화가나 온 몸이 불탔는지, 아님 여왕의 팔찌를 보고 심장이 뛰어 기쁨의 감정으로 인해 몸에 불이 붙었는지,
그는 온몸이 불이 붙어 화신이 되었다.
지귀는 영묘사를 태우고, 서라벌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불길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여왕은 주술사의 묘책으로
"지귀의 가슴에서 일어난 불,
몸을 태워 불의 신어 되었네
푸른 바다 너머로 내보내어
보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으리"
란 글귀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 대문에 붙이게 했는데,
그 글귀를 읽은 지귀는 불을 지르지 않고 잠잠해졌다고 한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에, 자신의 몸을 태울 정도의 그리움으로 지귀는 온 나라를 태우는 화신이 되었다.
황진이 15세무렵
담 넘어 황진이를 사모하던 양반가 총각은 그 그리움이 병이 이 되어 상사병으로 죽고 만다.
백상여가 출발해 황진이 집 앞에 다 다르자 상여가 옴짝달싹 움직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해도 도저히 상여가 움직이지 않자 상여꾼들이 어찌할줄 몰랐다. 그때 상여 인도꾼 종구잽이가 죽은 총각의 혼을 달래려 '만가'를 구슬프게 불렀다.
애달프게 사랑한번 하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병이 되어 죽음까지 가게 된 총각의 삶이 어찌 안쓰럽지 않겠나...
만가는 담을 넘어 황진이에게 들렸고, 그 소리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상여 소식을 듣고 황진이 자신의 치마를 상여 위에 덮었다.
그러자 아무리 움직이려 애써도 움직이지 않던 상여가 움직이지 시작했다.
죽어서도 황진이를 잊지 못하는 총각의 그리움이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보고팠던 여인의 집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어느 사랑이든 외 사랑의 종말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한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묻히고 마는 것이다. 지귀는 화신이 되어 온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고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 않는가...
상사병으로 죽음까지 갔던 총각은 그저 여인의 치맛자락만큼의 기억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은 죽음을 불사하게 만든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가슴 벅차고 두근거림을 만든다.
첫사랑은 죽어서도 못 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첫 감정에 깊은 사랑을 주었기에 그러할 것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한다는 말이 있듯이, 헤어짐은 그렇게 다른 사랑으로 다간 온다.
'사람이 일생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
는 이제껏 많은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정을 줄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수 있는데 어찌 100여 년의 시간 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사랑할수 있다고 하는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책임 없는 말이다.
사랑은...
살다 보니 사라지는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다.
살다 보니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 천지라 사랑이 제1순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향한 감정이 소홀해지고 '저 사람이 나에 대한 감정이 식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니 당연히 '나만의 외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서서히 든다.
그것이 권태다.
권태는 처절히 사랑했던 상대가 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 또한 체념이 되기에 권태란 말을 쓴다.
예전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대의 배신...
언제까지 서로가 바라만 봐도 찌릿찌릿을 원하고 눈만 마주쳐도 사랑한다를 외쳐야 하는가...
살다 보면, 정으로 산다는 말이 나온다.
살다 온갖 일을 같이 겪으며 그 풍파를 이겨내고, 희로애락을 같이한 반려자에 대한 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감이 자리메김하여 이뤄져온 가정이, 내 '사랑'을 '정'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움으로 '얼굴 한번 봤으면'하는 소망이 내 사람이 됐을때, 그 소홀함으로 다시 잃을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상대에 대해 살피고 살아야 한다.
내 사람이 됐다고 정해진 행동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권태라는 명목으로 다시 돌아올수 없는 강이 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의 사랑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야 하는데 외면의 그림자로 인해 권태를 낳게 된다면 그 사람의 '사랑의 기억'은 어찌할까...
지귀는 선덕여왕을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에 절로 가서 기다렸고,
황진이를 짝사랑한 총각은 그저 한번 보는게 좋았고, 대화 한번 하는게 작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다.
처음은 그저 대화 한번이고,
손 한번이고,
결혼이 소망이었을 것이다.
점차 소망은 늘어가고 그 소망이 다 이뤄지니, 권태라는 그늘을 씌워 서로가 서로에게 외면하는걸 정당화시키려 한다.
사랑은 반짝반짝하는 감정만 있는게 아니다.
책임질수 있는 행동이 동반돼야 하는 감정이다.
그저 내 기분만으로, 내 감정만으로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든다면 그게 어디 사랑이겠나.
호기심에서 그리움으로 시작된 내 사랑이 식었다며 권태기를 말한다면 너무나 처량하지 않을까...
선덕여왕과 황진희를 사랑한 그 남자들 못지않는 열정이 어디 그들만 있겠나.
그 열정 뒤에 감춰진 시간이 있을 것이고, 정이란게 있을 것이다.
처음 감정 그대로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건 어렵고 드물 것이다.
많은 유혹도 있을 것이고, 포기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음식이 아니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손을 내 젖는 음식이 아니다.
사랑이 식었다 하지 말자.
권태는 누구에게 올수 있는 감정이다.
그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문제가 뭔지를 알아야 치료할수 있는 감정이다.
잠깐의 스치는 바람을 큰 폭풍으로 만들어 내 삶을 우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리움으로 시작된 사랑은
책임과 믿음이 받침 되어야 참된 사랑이 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