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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Dec 09. 2020

문학과 건축, 그 동상이몽



 


 

“ 그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저 사는 대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폴 발레리)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행복과 불행, 화해와 갈등이 모두 집이라는 건축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렇게 일상의 삶과 건축공간은 불가분의 유대관계를 갖는다.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 그에 대응하는 공간도 변화될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공간의 변화가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현실적인 삶으로부터 괴리된 건축은 유희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만큼 건축공간은 실존적이며, 구체성을 띄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삶과 집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주거현상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문학에 주목했던 것은 집이라는 장소와 더불어 복잡하게 야기되는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질을 근본부터 되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속의 집을 순례하면서 그 안에 기거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기뻐했으며 슬퍼했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어렸을 적 행복해했던 추억의 집에서부터 찌들려 소외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고통의 집에 이르기까지 어디든 함께 하고자 했다. 그들은 눈만 뜨면 마주쳐야 하는 정겨운 우리 이웃이었으며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삶의 진실이 몸에 밴 그들에게서 집이 무엇인 지를 배우려 했으며 좋은 집은 어떠해야 하는 지 대놓고 물어보려 했다. 그들은 집에 대한 꿈과 그리움, 절망 또는 억압과 상처를 어떻게 느끼고 견디어 내는 지를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집과 더불어 야기되는 일상의 풍경들이 그들의 삶 속에 커다란 감동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가슴 속 깊이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문학 속의 집은 겉모습이 아름다운 집보다 내실이 건강한 집이 얼마나 더 소중한 지를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만난 문학 속의 집들은 저마다 세상과 삶에 대한 사연 하나씩은 지닌 채, 단편적이나마 무언가 진실을 말하려 하고 있었다. 때로는 집과 관련된 사람에 대하여, 때로는 대지와 환경에 대하여, 때로는 미학에 대하여 가차 없이 주장을 하기도 했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문학 속에 비쳐진 집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문학이라는 명경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진실들,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 바라다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들, 그리고 세태의 흐름을 쫓다가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본래의 의미들을 다시 살펴보려 했었다. 그 속에는 집에 대한 이해, 가치와 사고방식이 리트머스 시험지에 묻힌 시약처럼 정직하게 녹아들어 있었으니, 문학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집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문학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교훈들은 내 가슴 어느 한 군데 발아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흩뿌려졌다가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부름을 받아 인연이 닿는 집안 어느 한 구석에 제법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설계를 하면서 나는 '이 방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벽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매번 묻곤 하지만 대뜸 답할 만큼 쉬운 질문들이 아니다. 하늘에 묻고, 땅에 묻고 사람에 묻다보면, 그 틈새마다 수많은 시인들이 내 가슴 속에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저마다 움트느라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수런거림이 굳건한 동기가 되고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어느새 건강한 집 한 채를 떠받치는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된다.

 

늘 다짐하는 말이지만, 현실에 뿌리내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어찌 방다운 방 하나를 제대로 구축해낼 수 있겠는가? 모양이야 그럴 듯하게 꾸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모순으로 그득한 현실을 비판하고, 성찰하며 전망하여, 마침내 '삶의 형식과 내용'까지 재구성해 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문학과 건축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동무가 되어주고 깊이를 더해가며 교제할만한 맞상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겐 건축과 함께 할 만 한 문학이 있어 괴롭고, 슬프고, 고맙고, 행복하기만 하다. 그 우여곡절의 한 복판에서, 내 딴엔 집다운 집의 진면목을 살펴보느라  늘 여념이 없다. 그 둘 사이야말로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 부박하기 그지없는 세태를 거스르며 삶의 지표를 부단히 증거 해야 하는 공동운명체가 아니겠는가? 문학과 건축의 동상이몽(同床異夢)! 그 둘을 곱게 접어, ‘그 자리, 그런 집’이 뚜렷이 찍힌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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