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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Dec 20. 2020

창작, 영혼의 디자인과정

나를 바라다 보는  나는 누구인가


일러스트 김억중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아파트에 사는 무명 여류화가 존시가 심한 폐렴에 걸려,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이라 생각한다. 그의 친구 수가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달래보아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날 그녀 아파트 아래층에 그저 그렇게 사는 노화가(老畵家) 베어먼은 우연치 않게 그녀의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는 그녀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그녀를 위해 밤새도록 비바람 맞으며 혼신을 다해 마지막 잎사귀를 그린다. 결국 그의 그림의 힘으로 심약했던 그녀는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학창시절 요점 정리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오 헨리의 단편소설 줄거리 아닌가. 그 때는 그가 화가였다는 사실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한 영혼을 구할 수 있었던 화가의 직능만큼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해본 기억은 또렷하다. 훗날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다시 묻고 싶은 물음 중의 하나는 마지막 잎사귀로 존시를 살려낸 베어먼 또한 지지부진 했던 화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를 맞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커다란 수혜자는 되레 화가 베어먼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누가 부탁하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그토록 베어먼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일까 하는 물음이다. 아마도 그것은 베어먼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구체적인 동기가 먼저 있었고, 그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직능을 이미 갖추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자존감 있는 화가로서 한 때는 비록 나태했었을 지도 모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저력이 남아있었기에 담벼락에 붙어 기꺼이 밤샘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직능에 관한 한 가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자신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내공의 소유자가 곧 베어먼이었던 셈.


또 다른 일화 하나. 평생 산을 주제로 작업을 했던 사진작가가 오랜만에 작품전을 열었다 한다. 우연치 않게 작품을 보러 온 이가 유독 그의 작품 한 점 앞에 서서 한참동안이나 발을 띠지 못하더란다. 이를 본 사진작가는 그 사연이 하도 궁금하여 그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는데,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길 내심 기대했지만 뜻밖의 답변이 되돌아왔다 한다. 자신은 평생을 심마니로 살아왔는데 이렇게 실한 산삼은 처음 본다며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느냐며 어서 자기에게 그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더란다. 물론 산삼을 찍었던 곳이 어딘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있어도 선뜻 대답해주기가 꺼려졌단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을 뿐 설마 산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아쉬움이 큰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란다. 그날 이후로 사진작가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과감히 사진을 접고, 눈만 뜨면 배낭을 메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때 그 산 언저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한다. 세월이 흘렀어도 산행을 멈추지 못했던 것은 꿈속에서 하도 생생하게 본 것처럼 산삼이 아른거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산삼인지도 몰랐던 사진작가는 나는 누구이며, 더 나아가 나를 바라다보는 나는 또한 누구인가 되묻지 못하면서부터 스스로 작가이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정작 사진으로 심봤다며 외쳐야 할 사진작가가 속절없이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그림일수도 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디자인하지 않으면 나부터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란 남이 청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고,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이른바 작가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꾸준히 갈고 닦는 이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며 자신을 디자인하는 운명을 지닌 이들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의 희곡 속에 나오는 건축가 왜팔리노스(Eupalinos)나 조정래의 소설‘대장경’에 나오는 도목수 근필이 그런 경우다.   


페드라 : ... 그는 건설현장에서 내가 본 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네. ... 나는 그에게서 오르페우스의 힘을 보았지. 그는 주변에 넘어져 있는 무형의 돌 더미와 인방에다 기념비적인 장래를 예견하였고  .... 밤새 겪었던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는 인부들에게 거침없이 주범(ordres) 과 수치(nombres)를 지시하였다네.
소크라테스 : 신의 방법과 다르지 않은 셈이로군.
페드라 : 왜팔리노스는 스스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었다네. ... 그에게서 건물이란 곧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것이라고 얘기하곤 하였지. 그는 집이 지어지는 동안 현장을 거의 떠나지 않았고, 크기에 맞게 정확히 재단되도록 지켜보았다네.
... 그는 또 말하기를 “내 예술에 대해 내가 명상하는 만큼 나는 그것을 반드시 실행에 옮기고야 말지. 그래서 나는 건축가로서 생각하고 행할수록 사실은 더 괴롭다네.  ... 나는 내 스스로 저지른 놀라움으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바라다보고 침묵의 정도에 따라 스스로 건축을 하면서 나 자신을 키운다네. ... 나는 건축을 통해 나 자신을 건축한다고 믿는다.”고 그는 웃으며 내게 얘기하였지.
(뽈 발레리의 “건축가 또는 왜팔리노스”) 


Ferdinand Springer, Eupalinos ou l'Architecte IV, Engraving, 1947


건축가 왜팔리노스는 친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친구 페드라는 그를 “놀랄만한 정신의 소유자”라 치켜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페드라는 왜팔리노스를 문화, 예술을 다스리는 9여신의 수에 맞춰 치타를 만들어낸 음영시인 오르페우스에 은유한 이미지로 소크라테스에게 소개하고 있으니 대단한 찬사가 아닌가. 페드라가 왜팔리노스로부터 듣고 이해했던 건축은 감동이 전제된 것이었다.


건축가가 빚어낸 형태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과 움직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내장하고 있어, 침묵 속에서도 기쁨에 찬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왜팔리노스가 무형의 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보고, 신(神)의 방법에 비견했던 것도 그리 과장된 표현이 아닌 듯하다. 쎙텍쥐페리(Saint-Exupéry, 1900-1945)가 ‘성채’에서 "돌을 침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건축가인 나 혼자일 뿐이다.  단지 재료에 지나지 않는 흙을 ... 창조자의 영상에 따라 내가 반죽하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건축현장에서도 왜팔리노스는 즉흥적인 감정이나 인상에 의존하여 인부들을 지휘했던 것이 아니라, 스프링거의 그림과 같이 논리 정연한 규범(ordre)과 수치비율(nombre)에 근거하여 설득했다. 그의 건축행위는 탄탄한 사유와 논리에 근거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는 건축을 ‘개념-형태-미학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쉽게 설명하고 소통시킬 수 있는 지식체계로 보았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왜팔리노스가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서 몸소 보고, 느끼고, 행하는 가운데 건축 과정을 자기 영혼의 완성과정으로 수렴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그에게 참다운 건축가의 길은 앎과 삶과 일을 일치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왜팔리노스는 건축가이기 전에 진정한 구도자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리 친구 사이지만 페드라나 소크라테스가 왜팔리노스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기대사는 절을 나서서 근필에게로 향했다. 근필이를 생각할 때마다 수기대사는 마음이 안스러웠다. 뛰어난 재주가 칼날처럼 번뜩이는 위에 신경은 바늘 끝처럼 예민하게 움직이고 또 그 위에 올려진 것은 바윗덩이 무게의 원죄의식 - 그 혼의 외로운 절규를 수기대사는 차마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근필의 눈을 대할 때마다 그 절규를 듣는 것이다. 판전을 혼자 지어나가는 것은 객기도 만용도 자만도 아니었다. 그건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자학이며 한풀이였다. 수기대사는 근필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마다 차가운 전율을 느끼곤 했다. 그건 인간의 고뇌가 승려적 수행이나 고행만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동반하고 있었다. 생명의 업을 인식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생명을 불살라가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할 때 또 하나 새로운 신앙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싶었다. 근필에게 있어 판전은 단순한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그의 생명의 전부이거나 절대한 신앙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근필에게서 섬뜩섬뜩 끼쳐오는 광기를 느끼며 수기대사는 그렇게 밖에 여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시대에 이루어진 여러 사찰이나 석탑에 얽혀있는 초인적 전설이 결코 허망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조정래, '대장경')


수기대사가 보기에, 도목수 근필도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자학이며 한풀이라 할 만큼 어찌나 치열하게 건축에 임하는지, 왜팔리노스처럼 건축 자체를 구도(求道)와 신앙의 과정으로 여기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다보는 진정한 모습의 나는 누구인가? 건축가, 그는 누구인가? 그 답은 롤 모델(role model)처럼 살펴보았던 다에달로스나 왜팔리노스, 근필을 통해 그 윤곽이 거의 다 드러난 셈이다.


내가 바라다보는 나는 누구인가를 굳이 물어보지 않고도 잘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가볍기 그지없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나부터 당장 이들의 반만이라도 따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컴퓨터 화면 속의 데 키리코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나를 응시하고 있다. 끊임없이 커서가 깜박이듯 나를 따라다니는 그의 시선이 괴롭기만 하다. 왜 너 자신부터 디자인하려 하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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