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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Jan 28. 2021

로프트하우스(Loft house)

손때보다 더 아름다운 장식은 없다


오래된 창고나 공장 건물의 본래 모습을 잘 살리면서도 창작과 거주를 겸한 공간이나 전시, 공연 등의 이벤트 공간으로 새롭게 고쳐 쓰는 집을 로프트하우스라 한다. 새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존 건물을 무조건 부셔야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는 이에게는 다소 생소한 집의 형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물도 일생을 살아가는 존재로 본다면 세월과 더불어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아름답게 변신해가는 모습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을 터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프트하우스다. 멀고 먼 나라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20여 년 전부터 로프트하우스로 개조해 쓰고 있는 필자의 작업장 사례를 통해 그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새로운 주거형식의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모양이었다. 계룡산 자락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친 단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보자마자, “이건 운명이다”라고 되뇌며 끝내 일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그 건물은 원래 단무지 공장이었으나 문을 닫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폐허 직전의 상태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사방에 쓰레기가 덮여있고 썩는 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나는 물 고인 웅덩이 속에서 빛을 발하는 보석을 발견했던 셈인데, 남아 있던 골조가 워낙 건실하고, 가격도 그만 하면 저렴한 편이었으니 리모델링만 잘 하면 그만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단층 구조물을 잘만 감싸면 전체 볼륨 안에 늘 꿈꾸어 오던 아틀리에와 다목적 공간을 만들고 아울러 단열과 방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갔다. 


동네에서 좀 떨어져 있는데다 바로 옆집도 공장이어서, 증축 부분도 주변과 어울리도록 공장 스타일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른바 단무지 공장을 건축설계 공장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마치 어떤 기계를 만들려면 그것을 깎는 기계가 있어야 하듯이, 이 집이야말로 ‘생각의 집’을 짓는 공장이었으면 했다. 그 안에서 설계하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겠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렇게 겉으로 보아서는 공장이지만, 집안으로 들어오면 작은 동네처럼 곳곳에 길이 있고 마당이 펼쳐지도록 구성하였다. 그 덕분에 부모님 결혼 70주년 행사를 이 집에서 멋지게 치룬 바 있다. 그 당시 로프트하우스 안에 새로 만들어진 길과 마당이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띄우는데 크게 한 몫을 했었다.



11월 초여서 다소 싸늘한 날씨였지만 바깥마당에서는 쩌렁쩌렁 지축을 흔들어대는 사물 놀이패와 걸쭉한 농지거리가 곁들여진 외줄타기 공연이 있었고, 이어 모두가 춥고 배가 고플 즈음 집안으로 들어온 손님들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장터국밥 거리로 변신한 로프트 안마당에서 요기는 물론 뒤풀이까지 한껏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융통성 또한 로프트하우스의 빼어 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런가 하면 가능한 한 값싼 재료, 소박한 재료들을 쓰되 기존 건물의 마감 재료와 소통을 이루어 모두가 제 몫을 다하는 고귀한 존재로 등극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1층 구조물 기둥 사이를 구멍이 숭숭 난 콘크리트 블록으로 채웠고, 각 아틀리에 사이의 칸막이벽은 거친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백색 수성페인트를 칠해 기존의 노출 콘크리트 천장과 대비를 이루었다. 


그저 공장스타일에 충실했을 뿐 그리 값비싼 재료들이 아니지만 모두가 '그 자리, 그런 모습'으로 손색없이 옛것과 새것 사이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기존 건물을 감싸는 철골 구조물도 솔직하게 노출하였고, 외관을 샌드위치 판넬로 마감을 하여 기존구조물의 육중함과 철골구조물의 경쾌함의 대비를 꾀했다. 그 대비에 힘입어 시꺼먼 전선줄이 벽면을 가로질러도 전혀 흠집처럼 보이지 않을만한 구성(構成)의 힘을 얻었다.


 


흔히들 경량철골 구조에 샌드위치판넬로 집을 지으면 값 싸게 보인다는 편견도 여기서는 괜한 우려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재료에 귀천이 있을 까닭이 없을 뿐더러, 무슨 재료든 쓰는 이의 솜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작 비싼 것은 재료가 아니라 생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값싼 재료조차 그 매력을 맘껏 발산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로프트하우스에서 맘껏 펼칠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이다. 


그러고 보면 로프트하우스의 최고 덕목은 아무래도 "손때보다 더 아름다운 장식은 없다"는 미학적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새로운 기능을 담기위해 첨가해야할 모던(modern)한 것과 상생하되, 옛것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지속가능한 가치로 되살린다는 점이야말로 로프트하우스의 진정한 매력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어찌 헌 집을 그리도 쉽게 부셔버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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