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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맘 은지 Sep 13. 2024

다온아, 지금 엄마 참 좋아^^

8월의 끝자락, 고향 제주에서

“ 다온아, 제주 할머니댁 오니깐 좋지? 해가 살짝 저물어서 선선해진 거 같은데 엄마랑 같이 산책할까?”


아기와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과 풍경.

이제 갓 4개월이 넘은 딸아이를 앞으로 안아, 아기띠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

해님이 퇴근하고 달님이 출근하기 전에 얼른 나와 아기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주 고향에 올 때마다 꼭 한 번 걸었던 동네 한 바퀴.


제주도 신촌. 서울 신촌을 연상하면 안 된다.

말 그대로 新村이다.

새로 만들어진 마을. 개발이 덜 된 ‘촌’이다.

집 앞에는 과수원과 채소밭이 오솔길을 따라 펼쳐져 있고, 제주의 시그니처인 현무암 돌담이 골목골목 마을길을 안내해 준다.

서울살이를 하다가 집에 내려오면 어찌나 편한지, 마음 둘 곳 없이 바삐 살다가 마음 둘 곳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기에 툇마루 같은 공간이 고향 아닐까.


해질 무렵, 저 멀리서 바다를 건너온 제주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며 피부를 어루만져 준다.

결혼하기 전에는 올레길 같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미래의 신랑감과 손을 잡고 함께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무슨 대화를 나눌까.

이 길을 어떻게 소개해 줄까.

그 사람도 이 길을 좋아할까.'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곳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

그게 언제일지 미지수였는데...

어느덧 결혼을 하고, 결혼 1년 만에 귀여운 딸을 안았다.

남편과 함께 이 길을 걸을 땐 깍지 낀 두 손이 참으로 포근하고, 반짝이는 햇살에 우리의 웃음은 빛이 났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출장에 가 있어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대신 사랑하는 딸과 함께여서 설렌다.

 

아이와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눈에 '하나 하나' 담아가는 풍경들.

과수원에 열린 귤나무의 귤이 익으려면 아직 멀었다.

이 더운 여름에도 초록색 귤들은 방울방울 모여 있다.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구멍 뽕뽕 돌멩이들도 한 데 모여 담을 이루며 길을 안내해 준다.

길 옆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풀잎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다 보고 있다.

이 가운데에 어렸을 적 손에 물들이며 놀았던 봉숭아 꽃이 ‘짜잔’ 하면 나타난다.

어찌나 반가운지.  손톱 주변까지 같이 주황빛으로 봉숭아 물들이던 그때로 스며 들어간다.

몇 걸음 더 걸으니 귀걸이를 만들며 놀았던 진분홍 분꽃이 우리를 반기며 손짓을 한다.


“다아 이 꽃 이쁘지? 보여? 이 꽃은 엄마가 어렸을 때 꺾어다가 귀걸이처럼 달랑달랑 귀에 걸며 놀았던 꽃이야. 엄마가 참 좋아했던 꽃이지! 근데 지금은 마음 아파서 꽃을 못 꺾겠다. 보기만 해도 좋다. 그치?”

아이는 분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제주바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마음길을 놓아본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집마다 개줄로 묶인 진돗개들이 멍멍 짖어대기도 하고, 간을 보며 우리를 살핀다.

아기는 개 짖는 소리에도 꿈적하지 않고,

눈만 꿈뻑꿈벅한다,

나는 아기가 놀랄까 봐 더 꽉 안아준다.


다온이 너는 내 품에 안겼지만, 엄마는 지금 고향품에 안겼어.

다 좋아. 지금 부는 바람도, 돌담도, 풀잎도, 마당개도, 귤밭도, 저 멀리 펼쳐진 바다도.

올 때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거만, 참 좋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다온아, 지금 엄마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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