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나 있잖아. 모든 것에 의욕이 점점 사라져 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실은 이 감정은 초등학교 때도 느꼈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도 그랬어.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해.
어떻게 놀아야 재밌게 노는 건지,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난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야.
타인을 만나는 일도 이제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여느 때처럼, 도서관을 다녀와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내 앞에 아버지 또래의 한 남성이 눈에 밟혔다.
뒷모습만 보았을 뿐인데 단숨에 알아차렸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짚으며 걸어가셨다.
나는 그저 저만치 뒤에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지하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 나도 지친 대로 지친 터라 같이 타게 되었다.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뒤이어 뛰어 오는 사람들과,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한 승객과의 약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 순간 나는 아저씨와 몸이 부딪친 사람의 표정을 봐버리고 말았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짧은 순간의 일그러짐.
그리고 한 없이 당황한 아저씨의 표정도 보였다. 적막한 공기 속에서 내가 대신 사과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는 순간까지도 계속 벽에 부딪쳤다.
어깨를, 지팡이를, 수차례.
일부러 횟수를 센 건 아니지만, 6번 정도 부딪치고 나서야 그는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졌고,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조금은 불편한 신체를 가진 분도 이렇게나 살아가는 데,
내가 이렇게 아파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는 어쩌면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세상의 모서리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매 순간 자신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도 붙잡고 여쭤보고 싶은 오늘이다. 어떻게 살면 살아지나요?
아니, 어떻게 그 긴 세월들을 견디셨나요.
당신의 지혜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