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by 영천소년


오늘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은 사실 불편한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틀을 깨기 때문입니다. 사실 행복을 주제로 한 책은 많았습니다. 대부분 행복의 조건에 맞추어져 있었죠. 예를 들어 행복하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다 등등. 반면에 이 책은 제목처럼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철학적 사유로서의 행복에 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왜 인간은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지 접근해 나갑니다.


올해를 자기혁명의 원년으로 삼은 저는 한 번뿐인 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그 과정을 통해 행복한 삶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180cm 이상으로 키가 클 수 없었던 것과 같이 행복 역시 유전자의 힘으로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타고난 자질이 있다는 말이죠. 게다가 그동안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저의 행위들이 사실 알고 보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동이라 합니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제가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글을 쓰는 이유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고 궁극적으로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저의 불편함이 조금은 느껴지시나요? 지금까지 많은 행복과 관련된 책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왜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가'에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인간은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다윈



인간은 왜 행복을 느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무려 아리스토텔레스와 다윈이라는 두 명의 거물을 소환합니다.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는 생각, 이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관점으로 행복은 최고의 선이며,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갇혀 행복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저자인 서은국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온 이성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성보다는 본능에 눈을 돌리자고 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심을 둔 것은 가치 있는 삶이지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슈퍼 엘리트였던 그의 행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가치있는 삶과 행복한 삶을 혼동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화론의 다윈을 불러냈습니다. 동물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요? 행복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상대적으로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은 것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큰부리새가 살아남은 이유 역시 생존에 유리해서입니다. 그 와중에 다윈을 매우 힘들게 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수컷 공작새의 화려하고 큰 꼬리였죠. 큰 꼬리는 포식자들의 눈에 띄기 좋아 아무리 봐도 생존에 불리하거든요. 그럼에도 화려하고 큰 꼬리를 지닌 수컷 공작새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암컷 공작새에게 자신을 더 어필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100% 동물로 봅니다. 진화의 산물인 인간 역시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라고 그는 역설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습니다. 인류 문명을 365일로 가정했을 때 인간이 문명 생활을 한 시간은 365일 중 고작 2시간 정도라고요. 364일 22시간 동안 인간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사냥 그리고 짝짓기에 전념하며 살아왔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는 먼 옛날 선조들의 기억을 잊은지 오래지만, 600만 년간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버릇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 동물의 번식을 위한 생존 전략을 인간에게 적용해 볼까요?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고 바흐가 작곡을 하고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한 이유의 상당 부분은 짝짓기를 위한 것입니다. 예전에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세상에 여자가 없고 남자들만 존재한 경우를 말입니다. 과연 남자들이 지금처럼 열심히 살까요? 자아실현과 나의 성장을 위해 매일 해나가던 습관들도 의욕을 잃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자아 성취조차도 인간의 본질적 욕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이성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칭기즈칸,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대단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였다고 하고요. 피카소 역시 새로운 여인이 삶에 나타날 때마다 폭발적으로 작품을 그렸습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기기 위해 산 것도 아니고요. 그는 본인도 모르게 그저 번식이라는 본질적인 목적을 위해 창의력이란 도구를 사용한 것뿐이죠. 공작새의 큰 꼬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창의력입니다.




peacock-1055790_960_720.jpg 출처: 픽사베이



인간은 100% 동물임을 보여주는 사례

다시 동물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정말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마을 전체 침팬지 새끼들 중 약 86%가 힘을 지닌 몇몇 수컷들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소수의 수컷들이 대부분의 암컷들을 독차지하는 구조입니다.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해보고 죽는 수컷들이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문득 인간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워낙 강해서이죠. 그러다 보니 여성은 안정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수컷은 최고가 아니면 짝짓기에서 낙오됩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모 아니면 도' 같은 극단적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최상류층을 보면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각 나라의 대통령, 수상들이나 세계적 기업의 CEO를 떠올려 보면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대신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의 비중을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런 현상 또한 남자들의 생존 방식이 반영된 것 아닐까요?


또한 근친관계끼리의 성관계를 왜 금기시하는지도 사례로 가져옵니다. 근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유전자는 돌연 변인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식 능력을 잃을 확률도 높고요. 그래서 근친관계끼리 이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도록 우리의 뇌가 설계돼 온 것입니다. 실제로 책에서는 충격적인 사례를 하나 듭니다. 가임기가 가까워질수록 여대생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는 것입니다. 가임기에 가까워지면 아버지를 경계하라는 경고 시스템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것이죠. 또한 우리의 뇌는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이성을 근친관계로 여깁니다. 그래서 유아기 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이성에게도 성적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내린 행동들이 알고 보니 본능에 의한 것들이었습니다. 인정하기에 괴로운 마음이 들지만, 인간은 100% 동물입니다.


인간은 왜 행복을 느낄까요?


이제 서론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회수할 차례입니다. 그럼 동물인 인간은 왜 행복을 느낄까요? 혹시 서핑 묘기를 하는 개 사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개는 서핑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개의 주인이 과자를 갖고 개가 서핑을 하도록 꾀었죠. 개에게 사용된 과자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중 어떤 유형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목숨을 걸고 사냥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냥을 하고 짝짓기를 한 것은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고기를 씹고 이성과 살이 닿을 때 느낌이 꽤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강렬한 느낌을 계속 느끼기 위해 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고요. 만일 사냥을 해 고기를 씹고 짝짓기를 할 때 괴로운 감정이 든다면 그 행위들을 기피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 행복한 감정을 느끼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행복한 감정을 느껴야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하게 되고 그렇게 해야 인간의 생존과 번식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복의 감정을 금방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새 집에 입주하던 날, 처음 내 차를 운전한 날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볼까요? 그때의 행복한 감정을 혹시 지금도 갖고 계시나요?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거나 원했던 국가고시에 합격하던 날의 행복조차도 6개월을 버티지 못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고통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첫사랑과 이별 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몇 개월 후 너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사냥을 해야 합니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은 곧 사라집니다. 다음을 위해서 우리의 쾌감 전구는 단기적인 목적 달성 후 꺼집니다. 생존을 위해 행복감은 곧 초기화됩니다. 그래서 삶에서 한 번의 커다란 기쁨을 추구하는 것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며 사는 것이 행복에 있어 훨씬 유리합니다. 저자의 지도 교수는 이런 제목의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다.'


여기에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판검사를 꿈꾸었던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고생 끝에 검사가 된 그는 매일매일이 행복합니다. 그의 경우 저자에게 반문할 수 있겠죠? 자신이 검사가 되어서 느끼는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또한 검사가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때의 쾌감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행복하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어떤 말을 해줄까요? 진화심리학자인 저자와 다윈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검사가 되겠다는 꿈속에 자신도 모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DNA가 작용했을 거라고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 속에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거라고요. 정의 사회 구현에 힘쓰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줄 것이니깐요. 게다가 검사로 임명된 날 느꼈던 행복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 검사라서 행복한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라고 설명하겠죠? 검사가 되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사건들(가령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대접을 받는다거나,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해하거나 등의 사례가 있겠죠.)로 행복이 지속되는 것이지 검사로 임명받던 날의 행복은 대부분 소진되고 없을 거라고 확신할 것입니다.


hands-2847508_960_720.jpg 출처: 픽사베이


사람이 행복이다


처음으로 이성을 사귀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고요? 그럼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의 감정은 어떠셨어요? 첫사랑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합니다. 제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에 외면받았다는 느낌이 들어도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적색신호가 보일 때 우리가 아픈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는 우리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 있기 때문이죠.



원시 사회 때 인간은 함께 모여서 살았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집단에서 버림받아 혼자서 지내게 된다면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어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집단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생존의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등이 보일 때 인간의 뇌는 아프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은 다리가 잘렸을 때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아프다는 감정은 우리의 뇌가 느낍니다. 다리가 잘렸을 때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우리의 뇌가 아픈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진통제는 아픈 부위를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뇌가 아픈 것을 덜 느끼게 해주는 용도로 쓰입니다. 다리가 잘린다는 것은 생존에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다리가 잘리는 것만큼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행복도 유전적인 요인이 결정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더 쉽게 행복을 느낍니다. 물론 내향적인 사람들도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만 그들은 새로운 만남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기에 외향적 사람들보다 사람들을 만날 기회 자체가 적습니다. 기회가 적으니 행복을 느낄 빈도도 낮아지겠죠.



이렇게 우리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입니다. 일상 대화에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려면 사람들을 만나면 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경험'을 사는데 지출을 아끼지 않습니다. 공연이나 여행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제 아내와 같은 사람이 떠오릅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를 훨씬 더 많이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행복의 원천이니 나보다는 남들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행복해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끊임없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남들보다 더 위대한 영혼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사용함으로써 더 높은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뇌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행복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회식 때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적당히 핑계를 만드는 예의는 갖춥니다. 분명히 인간은 다른 인간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왜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회식을 기피할까요?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은 저 같은 사람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위기와 어려움에 대처하기에는 집단주의 사회가 적합합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서구 사회보다 비교적 빨리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집단주의 문화는 수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타인의 눈치를 봐야하고 그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긴장감과 피곤함을 불러 일으킵니다.


정답이 정해져있는 집단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타인은 불행으로 다가오기 쉽습니다. 명절 때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야 할 친척에게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만나는 사람은 있고?"라는 질문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또한 정답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결혼 적령기를 놓쳤을 때 제 인생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남에게 좋은 평가를 위해 살게 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 타인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자세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매사 타인의 시각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본인의 행복을 저하시킵니다. 행복은 어떤 잣대를 갖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게 되면 결국 돈이 필요해집니다. 남들에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구체적인 증거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돈에 집착하게 됩니다. 예전에 생존 보호 장치가 사람뿐이었다면 이제는 돈이 그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너희가 없어도 혼자 살 수 있어"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원시적인 뇌의 행복 시스템은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며 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오직 남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은 오히려 행복을 저해합니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타인과 진정으로 함께 사는 모습'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SE-52640b6c-2afe-11eb-a530-bd1d4289dab8.jpg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글을 마무리하며


책의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의 이 행위 또한 혹시 책의 내용이 저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본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꼭 명심하고 싶은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바로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경험은 뇌에서 발생하기에 철학적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실수로 칼날에 손가락을 베인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제 주변에 불행해하는 사람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와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 바로 먹을 때와 대화할 때입니다. 제 삶에 즐거운 시간들이 고통스러운 시간들보다 더 많으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저의 하루에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자주 경험하는 것이 저를 더욱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행복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여러 번 자주 경험해야 합니다. 행복의 세계에는 냉장고가 없습니다. 행복을 뒤로 미루어 놓으면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주 행복한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1편의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눈곱만큼이라도 성장하는 저의 글을 보며 매일 기쁨의 경험을 누립니다. 점심시간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맛있게 음식을 먹습니다. (실제로 학교 급식이 꽤 훌륭합니다. 사실 저 밥 먹으러 학교 가요.)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요즘 대화를 하며 식사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블로그 이웃들의 글을 보며 대화를 나눕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꼭 지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오후 일과 전까지 산책을 합니다. 오늘은 자연의 어떤 모습을 느끼며 걸을 수 있을까, 오늘은 지인과 어떤 대화를 나눌까 하는 설렘이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과 산책을 하는 즐거움도 있지요. 다행히도 저는 비교적 외향적인 사람이라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입니다. 퇴근 후에는 두 번 이상 아내와 아들 그리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요. 매일 책을 통해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도 저에게 기쁨을 줍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유튜브 MR 영상을 이용해 집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는 합니다. 언젠가 노래방 무대에 복귀해 락커가 될 날을 꿈꾸면서요.


이제는 로또 1등과 같은 대박 인생을 꿈꾸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꾸준히 오랫동안 누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사소한 저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친구와 만나서 그냥 같이 식사하며 수다 떨던 자리로 데이트로 명명하는 것이죠. 퇴근 후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립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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