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얼마 전 아파트 독서 모임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임 멤버 중에 신문 기자분이 계셔서 상세히 현재 상황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는 팔레스타인보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내는 기존 언론을 비판했다. 이에 다른 독서 모임 멤버는 그래도 예전에 비해 언론이 굉장히 객관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무래도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한국인은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문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한편 '하마스', '가자 지구' 등의 단어들이 오고 간 두 분의 토론을 통해 내가 중동 분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 모임 이후 관련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강경파인 하마스로부터 테러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하마스로 간주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그 어떤 전쟁에서도 사람을 동물로 취급하겠다는 선전포고를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이 문장만 보더라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미국은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항공모함을 지중해로 보냈다. 현지 시간 31일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을 명분으로 가자 지구에 무차별 공습을 가했다. 본격적으로 지상전에 돌입할 경우 민간인 사상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예정이다. 유엔은 인도적 차원에서 일시적인 휴전을 제안했으나 휴전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지금 젖과 꿀 대신 피가 흐르고 있다.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끝이 나지 않을까?
나는 82년생이다.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독일의 통일, 걸프전 등 역사적 사건의 증인으로 지금까지 자라왔다. 19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통한 전쟁이 있어 왔다. 어떤 방식이든 갈등은 해결되었고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중동 분쟁만큼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 존재했다. 중동은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 (중동 이전에는 발칸반도가 그 오명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중동 문제와 관련된 테러와 무력 충돌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팔레스타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지리의 힘'이란 책을 읽으며 중동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 사태를 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유튜브 영상이나 팟캐스트로는 부족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수업이나 글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 역사 공부 또한 내가 선호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내가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한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로 정리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공부 방법이다.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적절한 교재가 필요했다. 운이 좋게도 우연히 당진도서관 북 카트에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개정판을 만났다. 혹시나 싶어 목차를 살펴보니 저자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한 꼭지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운명이다 싶어 바로 책을 빌렸다.
책은 '드레퓌스 사건,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대장정, 히틀러의 출연, 팔레스타인의 비극, 베트남 전쟁, 맬컴 엑스, 핵무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까지 저자가 생각하기에 20세기 세계 역사에서 가장 굵직하고 중요한 11개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당연히 나는 7번째 장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눈물 마르지 않는 참극의 땅'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가는 주제였기에 집중해서 읽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그 파트를 읽었을 때 마음이 무척 울적해졌다. 다른 주제와 다르게 팔레스타인 분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책을 읽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스스로를 지식 도매상으로 지칭하는 유시민 작가 덕분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침공과 관련된 뉴스나 각종 콘텐츠를 읽더라도 큰 맥락에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지식 소매상으로서 내가 공부한 바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이곳에 정리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은 국명인 동시에 지명이다. 20세기 초에 팔레스타인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땅이었다. 그 땅에는 오랜 세월 팔레스타인 인들이 살고 있었다. 자본주의에 촉이 좋았던 유대인들은 금융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시온주의(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 이름이며 이스라엘의 백성과 천국을 가리키는 말)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성서에 나와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향이라 믿었다. 그곳에 팔레스타인 인이 2천 년 넘도록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무너졌다. 시온주의 무장 단체는 여러 차례 전투 끝에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그들이 끔찍한 살육을 자행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랍 인들을 한군데 모아 사살했고, 강간했고, 시신을 훼손했다. 독일 나치가 동유럽을 점령하면서 유대인 마을을 학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에는 영국이 큰 몫을 했다. (세계사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영국은 신사가 아닌 양아치 국가이다.) 영국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이중 외교를 펼쳤다.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모두 팔레스타인 땅에 독립국가가 설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군사 지원을 받은 것이다. 쉽게 표현하다면 한 테이블에 두 팀을 예약받은 것이다. 영국은 본인들의 잘못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유엔에 중재를 떠넘겼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구역과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분할한다는 방안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결국 유엔의 결정 이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 건국을 문명 전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아랍 해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 직후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다섯 개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지난 75년 동안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전의 결과 팔레스타인 인들을 더욱 핍박을 받게 되었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2천 년 가까이 살았던 본인들 땅에서 떠날 이유도 없고 그들을 받아줄 새로운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의 이집트나 요르단 같은 아랍 국가들은 명분과 실리 모든 점에서 팔레스타인 인을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한편 2천 년 넘게 유럽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은 유대인의 역사 또한 사실이다. 홀로코스트의 비극 또한 가슴이 아프다. 유대인의 국가를 세워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동기 또한 정당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누군가에게 비극이었다.
그 비극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했던 헤르츨은 모든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목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유럽에서 유대인은 유럽인과 공존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유대 국가'라는 책을 통해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역시 유대인이기 이전에 유럽인이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술탄 폐하께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오스만 제국의 재정을 자청해서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위해 우리는 거기서 아시아에 대항하는 장벽의 한 부분을 형성할 것이며, 야만에 대항하는 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215쪽
헤르츨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후보로 선정했다.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 침략을 동반했다. 그들의 명분은 단순하다. 기원전 1000년경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있었다는 이유다. 그런 명분만을 갖고 2천 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을 내쫓을 자격이 있을까? 만약 대한민국이 천오백 년 전에 요동 땅이 우리 것이었으니 내놓으라고 중국에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수천 년 전 우리 조상이 살았다는 이유로 아랍인들을 내쫓을 권리가 이스라엘에게 있지 않다. 결국 팔레스타인인은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로 밀려나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이스라엘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
물론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했다. 하지만 강경파의 반대로 인해 평화 협정을 이끌던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당했다. 제대로 된 국가 형태를 지니지 못했던 팔레스타인은 테러와 암살 형태로 이스라엘에 저항하고 있다. 테러는 테러로 끝나지 않는다. 테러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보복이 뒤따른다. 계속해서 '테러 - 보복 - 테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악순환의 고리가 너무 견고하다. 같은 땅을 사용하는 서로 다른 두 집단의 화해와 타협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과연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 논리에 의해 역사를 만들어 왔다. 전쟁을 통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며 그들의 것을 빼앗아 왔던 것이 인류의 역사다.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수많은 원주민들이 유럽인에 의해 보금자리를 빼앗겼고, 최근에는 나토에 가입한다는 이유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역사적 위기 속에서 열강에 의해 분단되는 선에서 겨우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삼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진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쉽게 병탄할 수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과정이 역사적 진보라고 믿는다.
유시민 작가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폭력으로 점령한 유대인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예전에 우리 땅이었으니 나가 달라는 유대인의 요구를 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저자는 명백히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을 비극의 시작이자 가해자로 여겼다. 나 역시 역사적 팩트를 통해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유대인은 대화와 협력으로 팔레스타인인과 팔레스타인 땅에서 공존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을 폭력으로 짓밟은 것처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인을 몰아내거나 멸절할 생각이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비극이 끝난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똑같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육을 저질렀다. 평화와 안전을 찾아 팔레스타인 땅까지 가게 된 유대인들이 나치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지금까지도 그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물론 이스라엘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하마스가 벌인 테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인종을 가리지 않고 테러 짓을 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행하는 보복은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상 규모가 크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없애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제2의 하마스는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홀로코스트를 뛰어넘는 살육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평화로운 공존을 원한다면 가해자인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풀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럽에서 수천 년 동안 당했던 박해와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고스란히 떠안겼다. 그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공존에 관한 합의를 얻어내지 않는 한, 유대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와 안전을 누리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237쪽
저자의 의견은 너무나도 옳다. 하지만 국력이 우선인 외교 관계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피해자로 인정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테러와 전쟁의 무한 반복 속에서 그들의 갈등의 골은 너무도 깊어졌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세계의 화약고이자 석유 산유 지역인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세계 경제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고금리, 고물가에 이어 고유가까지 겹친다면 중산층의 삶은 무너질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승리할 경우 아랍 국가들은 본인들이 지닌 석유라는 무기로 어떻게든 경제 보복을 할 것이다. 혹시라도 팔레스타인이 멸망한다면 이슬람 전체가 하나로 뭉쳐 이스라엘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 어쩌면 앙숙이던 이란과 사우디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외부의 적 앞에 내부의 적과 손을 잡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흔하게 있던 일이었다.
전쟁이 장기화가 될 경우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은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하기에 중동 전쟁의 규모가 커지기를 원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동 전쟁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동에 정신이 팔려 있을 시기를 기회로 여기고 대만을 합병하려 할 수도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고 쾌재를 부르며 군비를 증강할 것이다. 20세기 이후 일본은 전쟁을 통해 성장해 왔기에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전쟁은 기회이다.
물론 핵무기를 보유한 현대 시대에 전쟁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큰 위기 없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대전이란 극단적인 상황은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인물로 인해 역사가 바뀔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읽으며 한 명의 인물이 인류 전체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때로는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쉽게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각 나라는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기에 앞으로의 중동 정세에 계속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테러 단체인 하마스와 별개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스라엘 국민들의 일상 또한 안전하지 않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11개의 사건 중 21세기에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핵무기의 위협을 제외하면 팔레스타인 분쟁뿐이다. 100년 뒤에 팔레스타인 분쟁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과연 100년 후에는 해결이 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땅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테러나 침공으로 인해 매달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이 일상인 곳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지역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