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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Dec 11. 2023

초보의 자세

중요한 것은 꺾여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매주 월요일마다 친구와 같이 배드민턴을 치러 갑니다.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회원 중에 제가 제일 못 칩니다. 코치님께서 처음 배울 때는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셔서 거울을 보며 허공을 향해 열심히 스윙 연습을 합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저의 스윙 폼이 예쁘게 느껴질 때까지 허공을 가르며 채를 휘두릅니다.


© framemily, 출처 Unsplash


 수요일 레슨의 경우 친구 없이 혼자 차를 몰고 강당으로 향합니다. 배드민턴 입문 3주 차이지만 친구 없이 운동하러 갈 때마다 떨립니다. 아무도 나랑 연습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니 하는 걱정이 듭니다. 처음 배드민턴을 치러 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구릿빛 피부에 짐승 같은 몸놀림까지 누가 봐도 고수처럼 보였던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처음 몇 달 동안은 외로울 겁니다. 혼자서 빈 스윙 연습만 하다가 가야 할 날도 있을 겁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초보에게 마냥 친절하지 않아요. 하지만 몇 달 동안의 외로움을 잘 버티시면 더욱 재미있고 즐겁게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새로운 곳의 텃새(?)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내가 멋진 사람이라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죠. 다행히 저는 기존 회원이었던 친구의 소개로 들어왔기에 그렇게까지 심한 냉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꾸준히 스윙 연습을 하는 모습이 대견해서인지 많은 분들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십니다. 귀한 시간을 내서 운동하러 온 이분들의 입장에서 초보인 저와 공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입니다. 말 그대로 재능 기부인 셈이지요. 그래서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누가 저에게 "같이 난타하거나 연습하실래요?"라고 물으면 재빠르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며 뛰쳐나갑니다.



 이곳에서 가장 배드민턴을 못 치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에 모든 분들이 저의 배드미턴 선생님입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지만 가르쳐 주시는 것을 진지하게 듣고 배우려고 애씁니다. (물론 기본자세는 헷갈리지 않도록 코치님이 알려주신 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호의가 늘 감사하기에 잘못 친 셔틀콕이 네트 중간에 떨어지면 무조건 제가 달려나가 주우려고 합니다. 나와 셔틀콕을 주고받는 모든 분들은 저의 배드민턴 선생님입니다. 제자가 공을 주우러 잽싸게 가는 것은 당연하고요. 스파링이 끝나면 반드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대부분의 선배님들은 제가 충분히 스윙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셔틀콕을 높게 보내주십니다. 때로는 실전 경기처럼 앞뒤 좌우의 여러 방향으로 공을 보내며 혹독하게 저를 다루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끔은 사정 없이 초보인 저에게 진심으로 스매싱을 때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나를 농락하려고 그러시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배드민턴 연습 중에 가장 속상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입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민망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아무리 힘차게 때려도 공이 뻗지 못하고 뚝 떨어지는 속상한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운동에도 능한 가수 성시경 씨가 배드민턴을 치면 자신의 신체를 저주하게 될 거다는 말을 했지요. 10대 때부터 농구, 축구 등의 운동 종목에서 반 대표 정도 수준까지는 운동을 했던 제가 배드민턴 분야에서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께도 농락 당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아무리 제가 초보라고 하지만 어르신께 한 점도 못 빼앗을 정도로 상대와의 실력 차이가 느껴지면 약이 바짝 오릅니다. 삐딱한 승부욕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쉽게 포기했던 취미 생활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시작은 초등학생 때부터였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동생과 같이 피아노를 배웠는데요, 동생이 저보다 먼저 체르니에 입문하자 자존심이 상했던 저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몇 년 후 함께 유도를 시작했던 친구가 저보다 먼저 파란 띠를 따자 바로 다음 달에 유도 학원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진입한다는 것은 언제나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작 단계에서 제가 남들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포기했습니다. 쪽팔리면서 꾸역꾸역 한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훨씬 쿨하고 쉬우니깐요. 



 수영도 골프도 생각했던 것보다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을 때 그만두었습니다. 수영 강사로부터 수영할 수 없는 신체 구조라는 말을 듣고 그다음 날부터 수영장에 나가지 않았고요, 저보다 늦게 골프를 시작했던 형이 석 달 만에 저보다 더 잘 치게 되었을 때 골프채를 창고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아무도 제게 관심을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민망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40대부터 입문하게 된 배드민턴 분야만큼은 지난번에 반복했던 우를 버리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그릇된 에고부터 버려야 합니다. '빨리 잘하고 싶다, 남들보다 잘 치고 싶다, 실력자가 될 것이다, 지금 체육관에 있는 선배들을 한 명씩 격파할 것이다' 등의 경쟁적인 목표보다는 그저 2~3시간씩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체육관에 들어설 때마다 2시간 넘게 코트 위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는 게 배드민턴의 목표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킵니다.



 그럼에도 매번 배드민턴 연습을 하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제 의지와 다르게 공이 희한하게 날아갈 때마다 같이 연습해 주는 선배들에게 미안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금방 그만둘까봐 처음 배우는 것치고는 너무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 주는 선배들의 조언에 민망해 합니다. 그래도 1주일에 두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체육관에서 3시간 가까이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매주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1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때도 오겠지요. 일단은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댔으니 사람 구실을 할 때까지 배드민턴에 재미를 붙여 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고3 담임이라 동아리 수업을 맡지 않았는데요. 예전에는 동아리 시간에 담임 업무를 처리했다면 요즘은 동아리 시간마다 강당으로 올라갑니다. 배드민턴 동아리 지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대회에 나갔던 학생들과 같이 어울려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습니다. 아직 학생들에게 한 번도 이기지는 못했지만 매주 경기를 할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 게임을 즐기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거울 보고 연습 스윙만 할 때보다 직접 복식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더라고요. 한 세트를 따내고 난 뒤에 함께 복식을 쳤던 학생과 감격의 포옹을 할 뻔했습니다. (하이파이브 정도로 승리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어떤 분야든 새로운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물론 젊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예외입니다. 어디를 가든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때로는 부끄럽고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꺾여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약간의 철판을 깔고 꾸준히 들이댄다면 새로운 영역이 친숙하고 재미있는 영역으로 바뀌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자기혁명을 결심하고 꾸준히 걷기, 달리기, 헬스를 실천했습니다. 혼자 하는 운동만 하다가 배드민턴과 같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운동을 하는 것도 꽤나 즐겁습니다. 배드민턴 덕분에 출근으로 부담스러웠던 월요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남은 2023년 동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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