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를 앞둔 너희들에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방의 의무는 몇몇 비겁한 이탈자들에 의해 그 신성함이 더럽혀졌지만,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중 하나이다. 오늘은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후배님들에게 군대 선배로서 조언 몇 마디를 하고자 한다.
아무리 세상이 민주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군대는 군대다. 전쟁이 났을 때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상관이 "돌격 앞으로!"를 외쳤는데 모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군대는 이성이 아닌 명령이 지배하는 조직이다. 군 생활의 시작은 훈련소에서부터 비롯된다. 당연히 훈련소 생활은 힘들다. 민간인을 군인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조교도 힘들고 훈련병도 힘들다. 훈련소 첫날에는 사회에서 가지고 온 모든 물품들을 반납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몸을 가려주었던 팬티까지 벗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나의 물품들은 종이 박스에 넣어 집으로 보내진다. 그 날 점호 때 같은 소대원 중에 한 명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몰라도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반납하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교관에게 발각되었다. 교관은 책을 바닥으로 집어던지면서 "좋은 생각은 제대하고 해. 이 XXX야!"라고 욕을 하며 얼차려를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여기가 군대가 맞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은 통하지 않겠는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2년 6개월 동안 나의 목표도 명확해졌다. 그저 나의 몸과 영혼 모두 다치지 말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제대해야겠다는 목표에 집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거나 공부하기 싫어질 때면 새벽 일찍 일어나 포항 죽도 시장에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새벽 일찍부터 시장에 나와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으라는 말이었다. 또한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가치 없이 느껴질 때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과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직시하라는 뜻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자신의 경험보다 더 큰 타인의 비극을 통해 자신의 힘듦을 위로받고 극복하기도 한다.
군입대를 앞둔 너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래서 군생활을 앞두고 있는 너희들에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추천한다. 지금 삶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사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새삼스럽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고 감사한지 빠른 시간 안에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막연하게 무섭고 두려울 군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빅터 프랭클이 겪은 시련과 고통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과 의사였고 유대인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고,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아내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은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 역시 매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까이에 두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무려 3년이나 그곳에서 살아남았고, 생존자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극강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빅터 프랭클의 감동적인 실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첫 날로 시작된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 내고 싶다는 듯이.
그는 좁은 기차 속에서 몇 날 며칠을 달려 공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첫 관문이 주어졌다. 독일 장교가 가리키는 손가락 위치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다. 수용소에 함께 들어온 사람들의 90퍼센트는 왼쪽으로 갔고 첫날부터 하늘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받은 단 10프로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10퍼센트의 확률로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잔혹하고 비참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수감자들은 첫날 저녁 가지고 온 모든 물건들을 빼앗겼다. 그는 선임 수감자에게 평생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논문만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가 린치를 당했다. 그는 첫날부터 그의 평생을 부정당하는 모멸을 겪었다.
나의 훈련소 동료가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빼앗기며 모욕을 당한 것 이상으로 그는 평생을 부정당했다. 군대에서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통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배웠던 청소나 설거지조차도 군대에서는 새롭게 다시 배워야 한다. 내 가슴에 박혀 있는 계급장만이 통용되고 짠밥만이 경험으로 대우를 받는다.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수용소 생활에서도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알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기억했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곳에서의 생활과 당시의 감정을 글로 남기고자 했다. 또한 수용소에 갇힌 보통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관찰해 훗날 자기만의 정신과 치료법을 만들고자 했다.
비인간적인 행태가 만연하는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매일 주어진 하루를 가장 나답게 살고자 노력했다.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는 의사로서 동료들을 돕다가 명예롭게 죽는 것을 선택했다. 생산적이지 못한 노동 일을 하다가 죽는 것보다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험한 길을 선택한 그는 살아남았고, 그곳에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자신에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며 스스로를 방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다. 훗날 저자는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도 환자들의 곁에 남기로 결심했다. 그 선택을 통해 죽음의 위기에는 가까워졌지만 오히려 내적인 평화는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가장 나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나다운 모습으로 명예롭게 죽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기에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태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운명의 신은 그를 비롯한 동료들을 우롱했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고 탈출했던 동료들이 간 곳에는 오히려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군대는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한다면 개인의 차이는 모호해지고 배고픔의 욕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나타날 거라 주장했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활했던 아우슈비츠에서 '개인의 차이'가 모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가면 속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그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 환경의 노리개가 되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서 늘 고민했듯이 우리도 군대에서 갈림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어쭙잖은 권력을 이용해 후임을 가혹하게 괴롭히는 군인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동료들을 챙기며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지닌 군인의 모습을 선택할 것이다. 군대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라. 나에게 가치 있는 삶과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해서도 숙고해 보고, 그곳에서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라.
특히 10대를 학교에서 무기력하게 보냈다면 군대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고,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게 반드시 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매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목소리들이 있다. 인터넷, SNS와 같은 곳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쏟아내기에 정작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군생활은 너희들에게 그런 시간을 줄 것이다. 늦은 밤 해안선을 바라보며 경계 근무를 서며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군생활 동안 나를 돌아볼 기회는 많이 주어질 것이다. 인생이란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찾고, 내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하루하루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자세를 군 생활을 통해 배워 온다면 너희들의 군 생활은 대성공이다.
나 역시 삶의 의미와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찾기 위해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최근에 2021년 버킷리스트 30개 정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 해내야만 하는 일,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아들의 존재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 누구도 아이의 아버지 역할을 나 대신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나에게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남기 위해 버틸 것이다. 절대로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아버지 역할을 대신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깐.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 군대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남은 군생활을 훨씬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그럼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는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비결은 없을까? 저자에 의하면 삶의 의미를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사실 1번과 2번은 군대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군대는 명령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키는 것만 해야 한다. 물론 업무 속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고 유의미한 것들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게다가 군 생활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 나 역시 칼날처럼 매서웠던 진해 앞바다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부모님을 비롯해 나를 아껴주었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용소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몸이 젖어가며 비틀거리며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던 찰나에 한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순간 저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아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생사 여부는 그들에게 상관없었다. 그 어떤 시련도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군생활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나 깨나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힘든 군생활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방법과 두 번째 방법 모두 쉽지 않은 강제수용소에서 저자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 바로 세 번째이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스스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입대라는 큰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 너희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수용소에서도 일찍부터 부당한 권력에 복종한 사람들은 알량한 혜택을 얻으며 독일 군인보다 더 가혹하게 유대인들을 대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중을 가장 괴롭혔던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라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 환경의 노리개가 되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서 늘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강제수용소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모든 사람이 짐승이 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돼지가 되었고 누군가는 성인이 되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길을 정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찢어질 듯한 가난함과 박복한 환경이라고 모두 소설 감자의 주인공 '복녀'와 같은 삶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지킬 수 있다는 거룩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왜 이 책의 부제가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감명 깊었던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죽음을 앞둔 한 젊은이가 자신이 본 영화 이야기를 덤덤히 했다. 그는 그 영화를 보며 죽음을 의연하게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위대한 성취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앞둔 그는 말했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영화 속 주인공인 그와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고. 나 역시 시련 앞에서 울기보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시련을 통해 나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나를 괴롭히는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생각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군대 생활이 떠올랐다. 훈련소 생활을 하며 스스로 힘을 내기 위해 수양록에 자주 썼던 문장이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말이다. 훈련소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었다. 지금 주어진 훈련소라는 어려움은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난 후에도 같은 마인드로 군 생활에 임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작업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이곳에서도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로는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카리스마 있게 수업 주제의 핵심을 설명하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모습을. 그 이후로 일과 후 자유 시간에 텔레비전 앞이 아닌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그 결과 군 생활 동안 200권의 책을 읽었고, 한자 1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틈나는 대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으며, 내무반 별 농구대회도 자체적으로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군 생활이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군 생활 동안 목표했던 것을 모두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을 느꼈을 정도였다. 부대 안에서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생활했던 말년 병장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은 나의 밖에 있기에 쉽게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내 안에 있기에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물론 그 시련을 피할 수 있거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면 그 원인을 없애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자기 학대일 뿐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군생활이 시련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그곳에서도 내 삶의 의미를 찾는 지름길이다. 20대 초반의 빛나는 나의 시간들을 군대에서 버린다고 생각하지 마라. 군대에서의 나의 시간들도 내 인생의 일부이고,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제대 그 이후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꿈꾸었던 자유를 누리게 된 그는 얼마나 미칠 듯이 기뻤을까. 수용소 밖으로 나섰음에도 그 누구도 그에게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주변 풍경을 살필 수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수용소에서 나온 첫날 동안 기쁘지 않았다.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의 너절한 군대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나 역시 제대하는 날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사실 2년 6개월 동안 제대하는 그 날만을 꿈꾸며 생활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그 날이 되어 위병소를 자유롭게 통과했는데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제대한 친구들은 나의 전역을 그저 무덤덤하게 축하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누군가의 전역이었다. 게다가 군인이란 신분에서 복학생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2002년 2월 이후 나의 세상은 2002년에 멈추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과 다른 이들은 이미 2004년에 맞춰 잘 살고 있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너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군대에서의 시련보다 더 혹독한 세상이라는 시련이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너는 군 생활을 통해 나에게는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지닌 삶의 태도로 나치와 죽음의 수용소조차 이겨내지 않았는가. 극한의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처럼 앞으로 너는 주어진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고, 사람을 만나며,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시련과 고난이 오더라도 잘 이겨낼 것이다. 그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련을 나의 성장의 디딤돌로 만들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할 것이다. 군 생활을 통해 너는 분명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건투를 빈다!
참고문헌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