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나 '코로나 블루'?, 나의 코로나 극복기

전염병 시대에도 행복하게 사는 법

by 영천소년
%EC%A0%9C%EB%AA%A9_%EC%97%86%EC%9D%8C.png?type=w966 출처: 픽사베이


'코로나 블루'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코로나 우울'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답답하고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모든 공간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매년 한두 번은 갔던 해외 및 제주 여행은 지난 여행의 책자나 사진들을 보면서 그리워해야 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올해 코로나로 인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 장소였던 사우나, 노래방, 만화카페에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코로나 19라는 위기는 위기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를 더 드러나게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던 차별이나 혐오의 정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죠. 올해 2월 말에 발생한 신천지 발 대구 집단 감염 때 잠재되어 있던 TK(대구 경북지역)에 대한 혐오 감정이 세상에 발현되었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 포털사이트를 도배했습니다. 대구에 살고 있던 저는 하필 그때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로 인해 아내와 아이가 잠시 친척 집에 머물 일이 있었는데요,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저의 가족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는 혹시 피치 못할 용무가 있어 타 지역에 가게 되었을 경우 대구 사투리를 쓰지 말라는 지침까지 떠돌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제 아들은 몸이 아팠음에도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고요.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대구 시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몰려온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바라보며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는 따뜻함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구에 봉사활동을 하러 오신 타 지역 간호사와의 인터뷰를 담은 유퀴즈라는 예능 프로를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감동에 그치지 않고 짠돌이인 저는 곧바로 대구 동산병원에 작은 물품들을 기부하였습니다.

또한 코로나는 기존에도 심각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였던 양극화를 더 부추길 전망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중산층은 더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현재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 가격의 상승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할 때마다 힘없는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합니다. 교육도 양극화의 시대가 열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시장 양극화로 인해 학군마다 학력 격차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본격화되면서 학생의 가정 및 교육 환경에 따라 학업 성취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내 삶의 변화

앞서 언급했던 코로나로 인한 부정적 변화에도 제 나름대로는 대구 집단 감염 사태 이후 지금까지 스스로 코로나 블루를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현재 저의 생활이 조금 불편해지고 답답해졌다고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렸습니다. 게다가 위기는 기회라고 코로나로 인한 격리 생활 중 지금까지의 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타인과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고, 나의 내면의 욕망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래를 막연하게 불안해 하기보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덕분에 '영천소년의 자기혁명'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매일 제 생각과 제가 공부한 분야에 대해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되었고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줄었지만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선한 영향도 받을 수 있었고요. 저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저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부터 조금씩 한계가 왔습니다. 주말 내내 아이와 바깥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 시간에 말을 하다 보니 늘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수시로 마스크를 교환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연강을 하게 되면 계속되는 마스크 착용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어지러웠죠. 게다가 시시각각 들려오는 저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은 저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음성으로 판명이 났지만 직장 내 구성원 중에 측근 중 확진자가 있어 자가격리가 된 상황도 최근에 있었습니다. 나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기침과 같은 작은 증상에도 나도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타자에 대한 경계심도 커져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쁜 상상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19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앗아 갔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지금까지 송구영신을 핑계로 연말에 다양한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누구 하나 선뜻 먼저 모임을 갖자고 하는 사람도 없고, 기존에 잡혔던 약속도 취소되었습니다. 올해 제 일상의 큰 활력소가 되어준 독서 모임조차도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어졌습니다. 올해 가을에 읽은 '행복의 기원'이란 책에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가 참 어려워졌습니다. 최근 3단계 격상까지 논의가 되면서 직장에서의 방역 수칙도 더 엄격해졌습니다. 직장 내에서 음식물 섭취는 불가능하고, 점심시간에 직장 밖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적으로 꼭 해야 할 이야기를 제외하고 소통하기가 쉽지 않아 졌습니다. 원래 교직 문화가 폐쇄적인 경향이 있어 수업이나 학생 지도에 대해 터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습니다. 반면에 위기의 시대라는 핑계로 철저한 보고와 윗선의 통제를 강조하며 수직적인 위계 문화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가족이 있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저는 주말부부입니다. 게다가 어제저녁에는 밥이 없어서 라면을 먹었는데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원래 라면 먹는 거 참 좋아하는데, 그날따라 식탁에서 같이 식사했던 아내와 아이가 더 그리워졌습니다. 이번 주 부쩍 커진 우울한 감정들을 덜어내기 위해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집 주변을 짧게라도 달렸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더 추워진 날씨에 운동하러 나갈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평소보다 늦게 퇴근해 밖은 이미 깜깜해졌습니다. 날씨는 더 추워지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기는 어렵고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저는 예전의 나쁜 습관을 가진 저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한 주를 반성하며

월요일은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다 출제했다는 기념으로 혼자 집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괜히 술 마시고 싶으니깐 이유를 갖다 부쳤죠. 물론 저도 혼자 술 마시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술자리를 갖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1천 명이 넘은 상황에서 선뜻 누군가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수요일에 잡혀 있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취소되었고요. 게다가 혼술을 하며 책도 읽고, 가족앨범도 만들며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와인이나 맥주와 같은 가벼운 술이 아닌 소주를 마시면서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더라고요. 결국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한 시답잖은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올해 자기혁명의 원년으로 삼으면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원치 않던 행동으로 보낸 시간들은 하루면 충분하다고요. 나태하게 하루를 보냈더라도 그다음 날은 다시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나로 돌아오려고 노력했고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원래 제 루틴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늘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화요일이 되어도 저의 퇴근 이후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NBA 2K 게임에 손을 댔습니다. 바탕화면에서 아이콘을 삭제한 후 이 게임을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한데 게임이나 오랜만에 해볼까 하는 생각이 싹트자 기어코 외장하드를 뒤져 게임 실행 아이콘을 찾아냈습니다. 밥 먹고 난 후에 딱 한 게임만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콤비의 2000년대 초반 레이커스를 선택했고, 한 게임이 아닌 한 시즌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렸습니다. 중요한 경기는 적절히 개입해 조절하면서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고 나니 어느덧 하루가 다 지나갔더라고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누웠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퇴근 후에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저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영천소년의 자기혁명 좋아하시네. 결국 1년도 유지하지 못할 거면서.'라는 마음이 제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동시에 이번 주는 코로나로 스트레스가 너무 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다독거렸습니다.

수요일인 어제는 만 보 걷기와 달리기조차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월요일과 화요일은 퇴근 후 매일 습관으로 하고 있던 루틴들(외국어 공부, 일기 쓰기, 책 읽기, 1일 1포스팅하기, 만 보 걷기, 달리기 등)을 서둘러하고 난 뒤에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은 늦게 퇴근했다는 핑계로 기존의 루틴조차 잊었습니다. 어제는 올해 자기혁명을 선언한 이후 가장 나태했던 하루를 보냈습니다. 혼자 라면을 먹으면서 적적한 마음이 들어 아내에게 넷플릭스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전에 아내가 넷플릭스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거든요. 퇴근 후에 해야 할 일이 많아 TV 볼 시간이 없다면서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딱 1시간만 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재미있다고 소문이 난 '경이로운 소문'이라는 OCN 드라마 1회를 재생시켰습니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저의 의지와는 달리 저는 최근에 방영된 6회까지 한꺼번에 다 보고 말았습니다. 퇴근 후 드라마 여섯 회 분량을 보았으니 얼마나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결국 오늘 늦잠까지 자게 되었고, 미라클모닝 루틴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목요일입니다. 1주일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전의 저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코로나 블루와 부쩍 추워진 날씨로 인해 생긴 저의 나태함을 좀 더 너그럽게 받아 줘야 할까요? 어쨌든 저는 약속을 어겼습니다. 올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겠다는 약속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3일 연속으로 깨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제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제 자존감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낮은 자존감은 '내가 그렇지 뭐.'라는 마음과 함께 또다시 저를 나태하게 만들 것입니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 법칙입니다만 우리들의 삶에도 쉽게 적용이 됩니다. 보통 오늘 하루만 푹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킵니다. 하지만 한번 휴식을 맛본 우리의 뇌와 몸뚱어리는 그다음 날 더 강력하게 휴식을 원합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버스는 멈추기보다 달리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처럼 우리의 나쁜 행동은 쉽게 반복되고 습관이 됩니다. 다행히 저에게는 올해 두 가지 무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글쓰기'와 '달리기'입니다. 악순환을 깨고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퇴근 후 바로 신천으로 달려갔고, 오늘 하루는 경제 공부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를 블로그와 브런치에 쓰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시대에도 행복하기

처음 소제목을 '코로나 블루 극복하기'라고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극복'이란 단어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코로나가 힘겹게 끝이 나더라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은 또다시 제 삶을 위협할 것이니깐요.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해볼까 합니다. 일단 지난 3일에 대한 후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니깐요.


첫 번째로 코로나 시대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무료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때마다 스마트폰을 켜서 새로운 정보들을 확인하죠. 포털사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 뉴스를 최대한 자극적인 표제로 포장해 메인으로 걸어 놓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확진자 숫자를 체크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코로나 시대에 스스로를 무료하게 두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찾은 놀이가 바로 '글쓰기'고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즐기는 놀이는 저를 작게 만듭니다. 실컷 감탄하며 즐겼지만 저에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고 내 삶의 주인이라는 의식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행위가 바로 '글쓰기'이고요. 무엇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불안함, 짜증,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제 마음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힘이 들 때는 술을 마시지 말고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하라는 김민식 피디의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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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코로나 시대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기'입니다. 퇴근 후 스키장 갈 때 사용했던 방한장비를 챙겨 신천으로 갔습니다. 달리기에 방해가 되지 않게 외투는 평소 입는 것보다 좀 더 가볍게 입었고요.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 장비 착용 없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손이랑 귀가 따뜻하니깐 뛸 만하더라고요. 심지어 10분 정도 지나니 덥기까지 했습니다. 몸이 예열되면서 제 기분은 훨씬 더 가벼워졌습니다.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방한장비로 인해 제 거친 숨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제 숨소리를 들으며 해 질 무렵 강변을 달리고 있는 제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역시 달리기는 강변에서 제대로 달려줘야 합니다. 집 근처에서 자동차를 피해 가며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집에 와서 땀이 묻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하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추운 날씨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땀 흘리는 거 생각보다 기분이 좋습니다. 샤워를 하며 저는 제 몸뚱어리에 준엄한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앞으로 안 달릴 줄 알았지? 아니야! 추운 겨울날에도 이 정도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앞으로도 계속 달릴 거니깐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지? 사랑하는 나의 몸뚱어리야.'


세 번째로 코로나 시대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규칙적인 생활 유지하기'입니다. 앞서 코로나 핑계를 댔지만 결국 잠이 문제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잠드는 게 더 괴롭더라고요. 수면이 부족해지면 면역 체계가 깨지면서 정서적으로도 문제가 생깁니다. 쉽게 피곤해지고 짜증이 나게 되죠. 문제는 휴대폰에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휴대폰을 하는 나쁜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밤 10시에 알람을 맞춰 두었습니다. 알람 제목은 '아내에게 전화한 후 휴대폰 비행기 모드'입니다. 말 그대로 아내에게 오늘 하루도 고생했고 잘 자라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후에 더 이상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침대에서는 수면 외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침대에서는 책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확실하게 저의 뇌에 침대에 눕는다는 행위는 잠을 잘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일찍 잠이 들면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이번 주 취침 시간이 불규칙했기에 미라클모닝도 엉망이었습니다. 월요일 시작은 좋았습니다만 화요일부터 점점 기상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알람 소리에 깨더라도 따뜻한 이불속이 좋아 더 잠을 청했습니다. 날마다 기상 시간이 다르니 제 신체 리듬이 깨졌습니다. 내일 아침은 환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저의 루틴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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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코로나 시대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집안 환경을 변화시키기'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천안 집에 도착한 직후 깜짝 놀랐습니다. 장모님께서 집 가구 배치를 조금 바꾸셨는데 집이 훨씬 더 넓어진 것입니다. 특히 우리 가족이 잠자는 방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였는데요. 그전의 방보다 훨씬 아늑하고 편하더라고요. 거실과 부엌 공간도 더 쓸모가 있어졌고요, 노트북이 있는 책상은 바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어 더 운치 있게 바뀌었습니다. 주말에만 오는 저보다 매일 그 집에서 지내야 하는 아내의 반응은 더 뜨거웠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집안 환경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저도 저의 아지트인 대구 자취방 구조를 조금 바꾸어 보았습니다. 거실에 있던 큰 탁자를 안방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원래 컴퓨터 책상과 탁자를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블로그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식사도 했죠. 하지만 블로그 글을 쓰는 공간과 책을 읽는 공간을 분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컴퓨터라는 강력한 도구 앞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안방은 오직 책만 읽는 공간으로 바꾸었고, 거실은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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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로 코로나 시대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계획 짜기'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2021년에 대한 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마스크 없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내년의 플랜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던 이번 주에도 꼭 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로 2021년 버킷리스트 작성입니다. 세 줄 일기 앱을 이용해서 매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루 5분의 시간을 투자해서 매일 하나씩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나가는 활동이지요. 똘똘한 온달 님을 통해 다 같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라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하나씩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자꾸 제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해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입니다. 코로나 블루를 조금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2021년 버킷리스트 작성하는 활동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밖에 햇볕을 맞으며 산책하기, 매일 감사 일기 작성하기, 시도해 봤는데 재미없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하기 등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을 마무리하며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심각한 병으로 꼽히는 '코로나 블루'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짧게라도 코로나로 인해 제가 바라던 것들이 좌절되면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저의 생활을 어떻게 망가뜨렸고, 망가진 저의 일상은 스스로를 더 우울한 감정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었습니다. 가혹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떤 환경에서든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더라고 배우자와 이별하더라도 큰 사고를 당하더라도 나의 행복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불행한 이유를 남과 환경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어떤 것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원인을 나에게로 돌리고 나로부터 개선점을 찾는다면 코로나로 인한 우울한 감정도 더 빨리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법입니다. 또한 글쓰기와 달리기 같은 기존의 루틴과 수면 습관 개선, 집안 환경 변화, 내년도 계획 세우기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해 보려는 저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다소 나태해진 모습을 보였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평소보다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감싸주는 것도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백신이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쩌면 코로나 19를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공통점으로 희망을 가지더라도 현실을 자각하고 최적의 대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언젠가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제약 없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더 급격히 변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명심하며 전염병의 세상에서도 즐겁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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