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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Dec 28. 2020

도스토예프스키가 전하는 사랑 이야기, 백야

아름다운 이별에 대하여


지난 주말 미라클모닝 시간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라는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 직장에서 함께 하는 독서모임에서 1월의 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감히 제가 거장의 책을 쉽게 들 수 있었을까요? 자칫하면 독서도 편식하기가 쉬운데 독서모임을 하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백야'는 '죄와 벌', '가난한 사람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대작은 아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하는 단편으로 굴지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몽상가이자 가난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해 질 무렵 몽상에 잠겨 거리를 걷고 또 걷을 때입니다. '나'는 밤늦은 시간까지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가 거주하는 도시는 제정 러시아의 중심도시였던 페테르부르크로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있는 곳입니다.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다 보니 '나'의 생각과 상상들이 여과 없이 글로써 독자들에게 드러납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깁니다. 저 역시 걸으면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주인공의 행동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나'도 자신의 공상이 별 의미 없음을 아는 듯합니다. '나'의 넋두리에서 그의 심정이 느껴졌거든요.


 소설 속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외톨이었던 '나'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왜 울고 있는지, 무엇이 그녀를 슬프게 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녀와 친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자는커녕 남자와도 대화 없이 살아가던 숙맥이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염없이 그녀를 따라갑니다. 때마침 곤경에 처한 그녀를 구해주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스첸카'였습니다. 그리고 짧은 대화 속에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만남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와 만나는 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제 말을 새겨들으셔야 해요. 보세요. 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당신은 저를 사랑해서는 안 돼요. 이건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친구라면 언제나 좋아요. 사랑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건 제 부탁이기도 해요."


32쪽, 백야, 인디북



 어째 느낌이 싸하네요.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진행이 될까요? 두 사람은 다음 날도 만나기로 합니다. '나'는 내일을 기대하며 행복에 겨워 밤새도록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 데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은 하늘을 날 수 있을 듯한 들뜬 기분이지요.


 몇 차례 만남 속에서 '나'의 간접적인 고백을 받은 그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년 전에 미래를 약속했던 한 남자가 있다고요. 모스크바로 떠난 그 남자는 1년 뒤 꼭 돌아오겠다고 나스첸카에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1년 후 돌아왔음에도 나스첸카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재회의 장소로 약속한 다리 위에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도와줍니다. 본인도 사랑 한 번 못해 본 숙맥이면서 그녀에게 어설픈 멘토가 되어주죠.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재회할 기쁨을 '나'와 나누고 싶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하지만 모스크바로 떠난 그 남자는 '나'의 도움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나'를 가엾게 생각합니다.



그렇다. 

우리들은 자신의 불행을 느낄 때 비로소 타인의 불행을 보다 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집중되는 것이다.


81쪽, 백야, 인디북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희망고문을 합니다. 1년 전 모스크바로 떠난 그 남자를 향했던 감정이 한낱 공상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급기야 과거의 사랑을 놓을 수 있을 때 자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이때 '나'가 느낀 희열은 얼마나 컸을까요? 사랑이라는 신비로운 감정을 마음껏 느낀 후 그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둘이서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내일이라도 당장 자기 집으로 이사 오라고 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그녀와 함께 할 내일을 꿈꾸며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모스크바로 떠났던 그 남자가 나타난 것이죠. 그리고 그녀는 '나'의 손을 떨쳐 버리고 빛의 속도로 그 남자에게 달려가버렸습니다. 이윽고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다시 돌아와 격정적인 키스를 퍼붓고는 다시 그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며칠 밤을 지새운 '나'에게 그녀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통해 그녀는 다음 주에 그분과 결혼한다는 이야기와 나를 사랑해 주었고 아껴주었던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앞으로 친구와 오빠처럼 지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나'는 15년 뒤에도 혼자 쓸쓸히 살고 있을 거라고 자신의 미래를 예단하면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사랑은 인간의 기나긴 삶에 있어서 결코 부족함이 없는 한순간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이여!

나의 마음을 의심하지 말라.

당신 마음의 하늘이 

언제까지나 높고 푸르기를

당신의 아름다운 미소가 

언제까지나 아늑하게 지속되기를

그리고 더없는 기쁨과 행복이 

언제까지나 영원하기를


118쪽, 백야, 인디북


 저는 이별을 고할 때 '친구처럼 지내자'라는 말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깐요. 차라리 '영원히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줄래.'라는 잔인한 말이 이별을 통보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꼭 쟁취해야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기적 같은 시간을 나에게 주었던 상대에게 감사하고,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사랑입니다. 


© kyllik, 출처 Unsplash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라는 소설은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녀 역시 '나'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불안했을 것입니다. 모스크바로 간 '그'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깐요.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빨리 자신의 집으로 이사 오기를 요청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 돌아와 버렸습니다. 만약 '그'가 '나'와 '그녀'가 함께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그녀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왜 이제야 왔냐고, 너무 늦었다며 그를 거절하지 않았을까요?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랑을 정의해보자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사랑은 타이밍이다.'라고 사랑을 정의했죠. 잠시였지만 여자 동료분들의 눈빛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거장 도스토예프스키가 '백야'라는 이야기를 통해 고작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주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죠? 


 소설을 읽으며 10년 전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나'처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렸죠. 그리고 1년 후 우연히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문의 글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사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제가 다가서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대였습니다. (유부녀거나 남친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밝힙니다.ㅋㅋ) 이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제 걱정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네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을 때 네가 잃게 되는 게 많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친구의 그 말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제 감정을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감정이 만들어 낼 앞으로의 상황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아프고 쪽팔리더라도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덜 후회될 거라 확신했습니다.


 아마 소설 속 '나'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요? 사랑의 시작과 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사랑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고요.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질수록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도 더 커집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는 것이고요.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 앞에서 용기를 갖고 움직입니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앞으로 우리의 관계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 이 행복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불안감 등을 감당하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합니다.


 용기를 내 그녀에게 다가갔던 '나'에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별의 순간에서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습니다. 앞으로 행복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약속을 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나'를 배신했던 그녀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더없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원하지 않던 순간에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녀를 축복하며 떠나보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그의 행동을 보며 '대인배다 또는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 그 상황을 겪는다면 나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면서 분노를 했을 것이니깐요. 적어도 그녀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주는 행위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예전에 근무했던 남녀공학 학교가 생각났습니다. 남녀 합반이다 보니 학급 안에서 연인 관계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담임교사의 입장에서는 요주의 학생들입니다. 잘 사귀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헤어지고 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별이란 경험도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이별'의 경험을 성숙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헤어지더라도 같은 교실에서 매일 봐야 합니다. 자칫하면 이별을 통보받은 아이가 '복수'를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이별을 통보받은 남학생이 다소 거친 행동으로 여학생을 위협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어떤 방식이든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분명히 전달한 후 아이들을 중재했습니다. 유리조각처럼 멘탈이 부서졌던 남학생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후 수업 시간에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수업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시의 화자'를 다룬 단원이었습니다. 다양한 시와 노래를 통해 이별의 상황에서 화자들이 각각 어떤 태도로 이별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아무리 찬란했고 빛이 났던 사랑에도 끝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시작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사실도요. '데이트 폭력'이 빈번히 일어나고 헤어지자는 통보에 살해 협박을 가하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제가 만난 아이들만이라도 사랑했던 사람과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사랑의 완성임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나를 떠나시는 당신의 그 길 위에 꽃을 뿌려 당신의 앞날을 축복하겠다'라는 소월의 마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별에 대한 저의 수업 자료들 속에 한 편의 소설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이별 앞에서도 그녀와 보낸 행복했던 하얀 밤을 떠올리며 '사랑은 인간의 기나긴 삶에 있어서 결코 부족함이 없는 한순간이 아니겠는가!'라고 외치는 주인공이 있는 '백야'입니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헤어짐으로 끝이 났습니다. 저는 남자이다 보니 '나'의 이후가 궁금했습니다. '나'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났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스첸카'는 '나'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지만 '나'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도 주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그런 행복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알았고요. 끝으로 인연의 끝에서 아름답게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몽상가인 '나'는 여전히 늦은 밤까지 거리를 헤맬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세포와 마음은 '나스첸카와의 만남' 이후에 달라졌습니다. '나'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통해 버킷리스트 하나가 더 추가되었네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강변에서 이 소설을 다시 읽는 것입니다. 아! 또 하나, 백야 시기에 맞춰 그곳을 방문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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