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은
"숙제 검사하자. 노트 갖고 오너라." 제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께 들었던 말들 중 가장 무서웠던 말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교육열이 높으셨거든요.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저녁 식사 중에 아버지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숙제를 가져 오라고 하셨지요. 집안을 빨리 건사하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던 당신은 그 아쉬움을 장남인 저를 통해 해소하려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께서 시킨 영어 단어와 한자어 숙제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아버지께서도 부지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업에 종사한다고 정신이 없으셨겠죠.) 숙제만 내주시고 검사를 매일 하지는 않으셨거든요. 어쩌다 한 번씩 숙제 생각이 불현듯 나셨을 때마다 검사를 하셨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숙제를 내주었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렸고, 하지 못한 분량만큼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매를 맞은 그날과 그다음 날, 그리고 세 번째 날까지는 종아리의 아픔을 기억하며 억지로 숙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흘이 되는 날, 매를 맞은 흔적이 내 종아리에서 사라진 것처럼 숙제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제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음에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시 아버지의 호통과 회초리였죠.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저에게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자주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고요, 수업 시간 중에 교과서에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그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는데도 못 들은 적도 있으니깐요. 집에서도 부모님 눈을 속이기 위해 억지로 책상에 앉아 참고서 사이에 만화책을 넣어 몰래 보던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공부하기 참 싫어했던 저는 중학생이 되었죠. 영천이라는 촌구석이기도 하지만 운이 좋게도 중학교 첫 시험에서 학급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시험은 천운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진 아버지께서는 당시 유행하던 희대의 사기 물건이었던 'MC스퀘어'라는 학습 보조기까지 구입해 주시며 저의 학업을 독려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도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일은 참 힘겨웠습니다. 부모님 몰래 다른 짓을 하기도 쉽지 않았고, 부모님의 눈을 속이며 공부하는 척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부모님 눈을 피해 놀기 위해 독서실에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조금은 질이 나쁜 고등학생 형들과 어울리며 일찍 음주의 세계를 알게 되었거든요. 매번 독서실에 가면 가방만 던진 후에 당구장에 있는 형들을 찾아 갔습니다. 한번은 아무도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독서실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타이밍 좋게 그 때 제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독서실로 들이닥쳤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던 제 모습을 본 아버지는 기쁨에 감격하셨지요. 거짓된 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저는 미친 척하고 제 인생 처음으로 아버지께 반항을 했습니다.
"아빠~ 고등학교 졸업까지 앞으로 6년이란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6년이나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어요? 아버지라면 가능하시겠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불가능해요. 저는 아버지 생각만큼 비범하지 않아요. 저 진짜 공부하기 싫어요. 공부 재미없어요."
격렬하게 공부를 거부하던 저의 의사 표현에 아버지께서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저에게 말씀하셨죠.
"지금은 네가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공부와 성적이 필요하다. 네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이 사회는 성적으로 확인한단다. 이루고 싶은 네 꿈의 발목을 입시 성적이 잡는 것만큼은 아버지로서 막고 싶다. 사회에서 아빠가 느낀 좌절을 아들인 너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구나. 뒤늦게 고등학교에 가서 진심으로 네가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을 때, 중학교 내용이 제대로 학습되어 있지 않으면 고교 과정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단다. 하지만 네가 너무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니 아버지랑 타협을 하자.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 수학 두 과목만큼은 열심히 해줬으면 한다. 영어와 수학은 중학교 때 기초가 워낙 중요하다. 중학교 과정을 마스터하지 못하면 고등학교 과정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앞으로 영어, 수학 점수만큼은 90점 이상을 획득하겠다고 약속하면 더는 공부를 갖고 너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마."
당시 아버지의 말씀은 저에게 희열을 주었습니다. 공부하기 싫다는 저의 의사를 아버지께서 들으신 후 크게 저를 꾸지람 하거나 회초리를 들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하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한 반항은 성공적인 협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버지와의 협상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다행히 학교 시험은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와 수학 수업은 중학교 3년 내내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라 매일 영어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셨는데요. 당시 담임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영어 일기를 정말 열심히 썼고, 교내 영어 일기 작성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미인이셨습니다.) 운 좋게도 수학 선생님에게도 사랑을 받아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은 이해가 될 때까지 선생님께 어떻게든 물어 해결을 하고는 했습니다. (당시 교감 승진을 앞두고 계셨던 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선생님이셨는데 유난히도 저를 예뻐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때 저의 생활은 단순했습니다. 영어 수학 수업 때 열심히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짧은 쉬는 시간에도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죠. 학교 마친 후에 축구도 하고 오락실도 가려면 공부는 무조건 학교 수업 시간에 마쳐야 했습니다. 그날 배운 영어, 수학 수업을 복습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학교 마친 후 20~30분 정도만 교실에 남아 시간을 할애해도 어느 정도 완전 학습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마친 후 반 대항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갔고, 축구 이벤트가 없는 날은 학교 근처 중앙오락실에 진출해 제가 좋아하는 킹오프파이터즈 게임 실력을 실컷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여하튼 아버지와의 타협으로 중학교 시절의 저는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버지 역시 제가 약속했던 점수를 늘 받아오자 별말이 없으셨고요.
매일 재미난 일이 넘쳤던 중학교 시절은 가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영천소년인 저는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습니다.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게 목표였기에 외지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과 생이별을 하며 당신들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된 저는 조금 더 성숙해졌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제대로 공부라는 것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거든요. 부모님께 저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늘 제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공부 역시 노력만 하면 잘 할 수 있는 아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늘 잘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만 듣고 자란 저는 정말 제가 공부를 잘할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매일 가던 오락실도 스스로 끊었습니다. (실제로 고등학생 시절 저는 수능을 치른 후에야 오락실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3년이란 시간 동안 오락실 출입을 끊은 것이지요. 문제는 그 사이에 PC방이란 더 큰 유혹에 빠졌다는 것이지만요.)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촌에서 학원이나 과외도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무작정 막무가내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무식한 공부 방법이 내신 시험 때는 통했습니다. 내신 시험을 준비할 때는 교과서 본문 전체를 외우겠다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으니깐요. 그러고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이제는 리즈 시절을 더 이상 열일곱 살이 아닌 마흔 살 올해로 만들고 싶네요,) 당시의 저는 형설지공을 몸소 실천했으니깐요. 심지어 성적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었던 저는 학급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내신 성적은 잘 나왔습니다. 1학기 기말고사 때 전교 10등 안에 들어갔으니깐요.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달랐습니다. 전교 100등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3월 모의고사는 전교 200등 밖이었습니다. 시험 범위가 딱 정해져 있던 학교 내신 시험과 달리 모의고사 시험 범위는 너무 넓었습니다. 그나마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압박 덕분에 해두었던 영어와 수학은 100점 만점에 70점 수준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시험 범위 위주로 출제되던 국어, 사회, 과학은 절반 이상을 틀렸습니다.
절치부심한 마음으로 교과서부터 다시 구입해 중학교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했던 저는 1학년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마침내 전교 10등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 일정 궤도 점수로 올려놓고 나니 조금 농땡이를 피우더라도 쉽게 점수가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고1 때만큼의 열정은 아니지만 고2 때도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며 문과에서 제법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어느덧 영천소년은 고3이 되었습니다. 이제 스무 살이 코앞이었습니다. 고3 담임선생님께서는 첫 상담 시간부터 저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국어 성적만 조금만 올리면 충분히 SKY 대학에 합격하겠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참 기뻤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제 목표가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것이었거든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남들에게 고대에 다닌다고 하면 뽀대가 났기 때문이었고, 당시 전희철, 김병철 등의 고려대 출신의 농구선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었고요. 학과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기에 무난한 경영학과로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국어 성적만 올리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참 부담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언어영역(지금의 국어)에서 절반 이상의 점수를 깎아 먹었거든요.
내년 이맘때 제가 서울에서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용기를 내 작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작년 담임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었습니다. 숫기가 없던 제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당시 1학년 담임으로 배정받은 작년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모의고사에서도 언어 영역 점수가 가장 낮게 나왔으며, 어떻게 해야 국어 실력을 키우고 수능 언어 영역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국어선생님께서도 수능 언어 영역 성적을 어떻게 해야 올릴 수 있을지 잘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수능이라는 제도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국어선생님들께서 학력고사 스타일로 수업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업무로 치이는 바쁜 학교 일정에서 수능 유형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수업을 구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확한 분석과 방법 제시 대신 선생님께서는 두루뭉술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언어 영역 문제집을 저에게 한 아름 주시며 좋은 입시 결과를 기대하겠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는 당시 특설반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10명의 학생들을 따로 관리했습니다. 저도 그 10명에 속해 있었고, 특설반의 혜택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문제집과 참고서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1년 동안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언어 영역 문제집을 풀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믿고 열심히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출판사 별로 언어영역 모의고사 문제지를 미친 듯이 풀고 매겼습니다. 사실상 고등학교 3학년 1년 동안 투자했던 공부 시간의 절반 이상을 언어 영역 공부에 쏟았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수능 당일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1교시는 언어 영역이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감은 있었지만 제시간 안에 끝까지 모든 문제를 풀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내심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고요. 1년 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언어 영역 문제집을 열심히 풀었을 만큼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했죠. 하지만 결과는 언어 영역에서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 역대 최악의 점수가 나왔습니다. 다시 고1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평소 저보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제가 목표로 했던 대학에 합격한 것을 지켜보며 저는 더욱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고3 1년 내내 시험이 끝나면 늘 저에게 먼저 다가와서 제 점수를 물었거든요. 항상 제 점수를 듣고 난 후 이번에도 못 이겼다면서 분해하던 그 친구에게 너랑 나는 같은 레벨이 아니니깐 아쉬워하지 말라면서 장난을 쳤었죠. 사실 그 말은 진심이었고요. 게다가 제가 그 친구를 낮게 평가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그 친구는 그렇게 독하게 공부를 하지 않았거든요. 주말마다 오락실에 갔고, 수업 시간에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다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야자 시간에도 몰래 책을 읽다가 감독 선생님께 걸려 얻어 맞고는 했지요. 중학교 때까지는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었을 만큼 독서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그 친구는 항상 언어영역에서 계열 1위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영어로 된 책까지도 섭렵할 정도로 책을 좋아해 영어 성적 역시 계열에서 늘 1등이었습니다. 다만 수학을 치명적으로 못했기에 항상 총점에서 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었죠. 하지만 제가 치른 당시 수능에서 수학은 어느 해보다 쉽게 나왔고 저와 그는 같은 점수(80점)를 받게 됩니다. 늘 수학에서 20점 가까이 점수를 깎아 먹었던 그 친구는 특차로 웬만한 서울의 명문 대학에 갈 수 있는 수능 점수를 받게 되었죠.
당당히 서울에 입성하게 된 그 친구를 바라보며 저는 재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재수를 하려니 언어 영역을 어떻게 다시 공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과목의 성적이 저조했더라면 재수를 통해 성적을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의 재수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한들 국어 성적을 올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1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무식하게 문제집만 푸는 방식은 국어 실력을 키우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렇다고 재수를 하는 주제에 독해력을 키우겠다고 한가로이 책을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결국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저의 고민을 들은 아버지께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습니다. 저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담임선생님과 상담 후에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원서를 넣으신 거죠. 국어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에서 국어 공부 방법을 배워 오자는 게 아버지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저나 아버지나 대학 커리큘럼에 대한 상식이 없었죠. 촌구석에서 물어볼 곳도 없었고요. 저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대학에서 입시에 맞춘 국어 수업을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교양과목을 배웠고, 2학년부터 시작한 전공 과목 역시 수능 국어와는 큰 관련이 없었습니다. 완벽한 작전 실패였죠.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라는 저의 목표가 간절하지도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던 제가 남들과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서 무난하게 만들어 낸 목표였거든요. 뜨거웠던 이천년 여름 농활을 다녀온 후 아버지께 재수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고, 이후에는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저의 삶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수학을 포기했던 경험이 오랜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국어를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한 것이 오랜 트라우마였습니다. 대학 입학 이후에도 화법이나 작문과 같은 실습수업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늘 입시에 실패한 내가 국어 과목을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갖고 있었고요. 입시 실패를 넘어 저는 국어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면에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최소한 학창 시절 국어 과목을 좋아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국어는 더 이상 저의 트라우마가 아닙니다. 고교 시절 국어로 인해 목표했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 첫 쓰라린 실패를 맛본 것이지요. 그러나 그때는 국어공부의 방법을 몰랐을 뿐입니다. 저에게 제대로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사람으로서 다시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저는 대학 입시에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왜 당시의 저는 좋은 국어 성적을 받을 수 없었을까요? 현직 국어교사이기도 한 제가 학창 시절 국어를 못했던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국어를 못한 이유는 소통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국어는 말과 글을 통해 소통을 가르치는 과목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듣기 말하기가 더 중요하지만 국어 시험에서는 글 지문을 갖고 작가 또는 출제자와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확인합니다. 누군가와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엇일까요? 바로 경청능력입니다. 상대가 하는 말을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반응하는 능력이지요. 저는 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일단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었어요. 제 공부와 성적만 생각했지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친구가 이야기 할 때 딴 생각을 하거나 다음에 제가 말할 내용을 생각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글에서 필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 역시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국어 시험을 출제한 자의 의도를 파악할 리도 없었지요.
또한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들어줘야 합니다. 일단은 가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설득하거나 강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대화라고 볼 수 없겠지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수용할 줄 알게 되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가치 판단 없이 상대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닌 학생은 화자와 등장인물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가 있지요. 쉽게 말해 저는 소통 능력이 부족했던 학생이었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인성이 부족한 학생이었던 것이죠.
즉, 국어 시험은 소통을 잘해야만 좋은 점수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오직 지문 속 내용을 통해서만 판단해야 합니다. 문제 앞에서 지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정답이 아닌 오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죠. 특히 국어 과목은 매력적인 오답이 많기 때문에 출제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저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거나 고집이 센 학생은 국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죠. 오직 출제자의 의도 또는 필자의 생각에 기대어 적절한 것과 적절하지 않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자꾸 저의 생각을 개입하는 것입니다. 국어 시험에 임할 때는 대화할 때처럼 오직 상대의 의도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인드로 임해야 합니다.
제가 고3 때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언어 영역 문제집을 풀었다고 했죠? 문제집을 풀다 보면 정답이 납득이 되지 않을 때가 간혹 있었습니다. 뒤에 나와 있는 풀이를 읽고, 지문을 다시 읽어봐도 제가 생각한 그 보기가 정답이라는 고집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뒤에 나와 있는 정답을 제가 생각하는 정답으로 수정했습니다. 학생 주제에 그 문제를 출제한 교사 또는 집필진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죠. 그런 식으로 정답을 저 스스로 수정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의견을 구했어야 했는데 빨리 다음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정답을 자체적으로 수정해버렸습니다. 당시 저의 공부 방식을 돌이켜 보니 왜 제가 국어 성적을 잘 받을 수 없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출제자의 의도나 화자와 필자의 메시지보다 제 생각과 판단을 더 중요시 여겼던 실수를 범했습니다.
게다가 소통 능력이 떨어지면 공감 능력도 떨어집니다. 가령 비가 와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향이 그리워진다고 시 속 화자의 이야기를 지문을 통해 접했습니다. 그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 이 시의 화자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떠난 고향이 생각나는구나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비가 오면 신발도 젖고, 버스 타기도 힘들고, 우산도 챙겨야 해서 얼마나 힘든데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떠올렸습니다. 화자의 생각에 반박을 하는 것이지요. 정말 고집불통이지요. 그런데 국어 영역 중 문학 파트에서는 화자나 인물의 심리, 감정을 묻는 문제가 꽤 많이 나옵니다. 나의 감정에만 함몰되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섬세함이 부족했던 저는 국어 시험을 잘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앞서 국어는 소통의 과목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잘 해야 하지요. 글을 읽고 필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다른 말로는 '독해력' 또는 '문해력'이라고 합니다. 국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문해력을 키워야 합니다.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은 어휘에 있습니다. 문해력은 글을 해석하는 능력이지요. 글은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단은 다시 문장으로, 문장은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요. 우리는 다른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단어장까지 만들어서 어휘 공부를 하지만, 국어의 어휘 공부는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기본입니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도 사전을 통해 뜻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특히 국어에서는 한자어 공부가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군 생활하는 동안 한자급수 2급을 획득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교양한문이란 과목에서 D-를 받았기에 재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교양한문 재이수를 위해 준비했던 한자급수 능력 시험이 저의 국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거든요. 당시 2급 한자급수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제가 했던 공부 방식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들을 한자로 바꾸는 연습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글자들 중에 한자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 때의 공부법이 국어 실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죠. 지금부터라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애매하게 아는 단어가 나오면 정확한 뜻을 찾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어휘력을 키우면 독해력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한자를 많이 아는 만큼 글이 잘 읽힙니다.
다음으로 국어 개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사실 국어는 암기과목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어 역시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기본 개념은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국어에서 꼭 알아야 할 개념은 적어도 입시가 끝나기 전까지 툭 치면 언제든지 입 밖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숙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령 시의 표현과 관련된 문제가 나왔는데 설의, 문답, 반어, 역설, 점층, 풍유, 돈호, 도치, 억양 등의 개념을 모르고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국어 개념은 교과서를 통한 정규 수업을 활용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국어의 각 영역에서 기초 개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해당 영역의 EBS 강의를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문제를 풀기 전에 국어 개념을 먼저 충분히 숙지하십시오. 국어 개념이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상태로 문제를 푸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저의 경우 학생들이 문제집을 들고 와서 질문을 할 때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제가 지문을 읽고, 지문의 내용을 파악해 문제를 풀어주는 행위 자체가 학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 친절하게 학생이 요구하는 질문에 충분한 설명과 답변을 해 준다면, 그 순간만큼은 학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 덕분에 이해했다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비슷한 수준의 지문이 등장했을 경우 글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서 문제를 푸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실력이 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거든요. 반면에 특정 개념이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줍니다. 가령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는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까지 학생의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요.
어휘력, 국어 개념에 이어 마지막으로 국어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의 내용과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 최근에 학생들에게 공지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따로 아침 독서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앞으로 국어 수업 시간 중에 책을 읽겠다고요. 수업 시작 후 10분 동안 독서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7분 동안 각자의 독해력에 맞도록 책을 읽은 후, 3분 동안은 오늘 읽은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노트에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학교 일과 중에 따로 책을 읽힐 시간이 없으니 국어 수업 시간을 통해서라도 한 학기에 한 권 정도의 책은 읽혀야겠다는 계획입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왜 읽게 된 이유,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나의 경험과 세상의 이야기,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변화한 모습 또는 앞으로의 각오 등을 글로 작성해 본다면 완벽한 국어 공부가 되겠네요. 적고 보니 현재 제가 자기계발의 이름 아래 하고 있는 활동들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방식은 입시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니깐 가능합니다.
그럼 당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이 없으니 무작정 문제집부터 풀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문제집을 풀더라도 수능 시험에서는 내가 풀었던 것과 같은 지문과 문제는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 접하는 문제를 제시간 안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해력이 중요합니다. 수험생의 경우 역대 수능이나 모의평가 지문들을 출력해서 책으로 만들기를 권합니다. 지문을 읽고 문단 별로 내용을 파악하고, 저자의 의도를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지문을 읽고 요약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연습은 독해력을 키워줄 것입니다. 한 번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자신의 읽기 실력의 부족함을 인정한 후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반복해서 읽어도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다면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소리입니다. 지문 속 어휘들의 뜻부터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정도를 가야 실력을 쌓을 수가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역대 수능 기출 지문을 5분 안에 요약하고,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해서 자기고백적인 글을 한번 써봤습니다. 사실 저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라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국어 공부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작성해 봤습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고 저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라 막히지 않고 한 번에 쑬쑬 잘 써 내려갔네요. 이상 국어교사가 국어를 못했던 이유와 국어를 할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도서
완전학습 바이블, 임 작가